어느 시대에나 라이벌이 있다. 사람사이에 라이벌이 존재하며, 제품 간에도 라이벌이 있다. 라이벌은 자신을 발전시키며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하지만 경쟁하는 그 순간에는 피를 말리는 전쟁이다.

60~70년대 남자의 향수를 강하게 자극하는 것이 있다. ‘라이터’다. 당시 남자들의 흡연이 일상화됐던 시절. 라이터는 최고의 액세서리 품목 중 하나다. 이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Zippo’와 ‘Dupont’ 라이터다. 서민들에게는 지포가 가장 많이 알려진 라이터였겠지만 상류층에게는 듀퐁이 최고였다.

라이터의 라이벌이 지포와 듀퐁은 탄생시기가 비슷하다. 지포가 1937년이고 듀퐁은 그로부터 5년 후인 1942년이다.(듀퐁의 브랜드가 시작된 것은 이 보다 훨씬 전이다. 하지만 최초는 가방전문업체였고, 라이터가 만들어진 것은 1942년으로 알려지고 있다.)
두 라이터가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한 때는 제2차 세계대전 때다.

Zippo는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 등 치열한 전장에서 피흘리며 쓰러져간 젊은 병사들의 가슴에는 퇴색한 애인사진과 반질반질 손때가 묻은 Zippo가 들어있었다.
전장에서의 Zippo는 죽음의 공포를 없애기 위해 피워 무는 담배를 위한 필수품이었지만 극한 상황에서는 더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됐다. 거센 바람 속에서도 잘 꺼지지 않는 불꽃은 장병들에게 야전식량을 데워 먹을 때도 따뜻함과 편안함을 주기 때문이다.

또 고립된 상황에서 구조 헬리콥터에 자신의 위치를 나타내는 신호로 쓰이기도 했다.
이 외에도 전쟁 중 “To Zippo”라는 동사가 만들어졌는데, 이는 영국군 장갑차에서 화염을 방사하는 모습을 본 따 “화염을 방사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가솔린으로 젖은 지붕이나 탱크를 향해 Zippo를 던지는 병사의 모습은 영화나 자료화면을 통해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장면이다.
이들의 마케팅전략은 주 타깃 층에 따라 구사되었다. 지포의 사용 층은 대부분이 병사, 노동자 등 주로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반면, 듀퐁은 의사, 변호사, 비즈니스맨 등 상류 지식층 사람들이 가지고 다니는 액세서리였다.

듀퐁의 제작과정은 상당히 복잡한 절차를 거친다. 60년대 기존 라이터 위에 자연산 옻칠로 마감하면서 듀퐁의 라이터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됐는데, 최고급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자연산 옻칠 제조 공정은 492단계에 검수 횟수가 무려 640회에 이른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듀퐁의 라이터 가격은 일반인이 상상하지 조차 힘든 가격이 정해진다. 지포라이터가 4만~10만원의 가격을 형성한 반면, 듀퐁은 100만원에서 많게는 금장·다이아몬드 세공까지 더해 1억원에 가까운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지금은 흡연인구가 많이 줄었다. 88서울올림픽 전에만 해도 실내·외 가리지 않고(심지어 버스 안에서까지) 아무데서나 흡연을 즐길 수 있었지만 지금은 개방된 장소, 많은 사람이 드문 장소 외에는 흡연의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는 것이 알려지기 전 대부분 남자의 호주머니에는 라이터가 있었다. 이젠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만 남성의 상징인 이런 라이터 하나쯤은 집안에 소장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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