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변화 ⑤3D 프린팅 편

[뉴스워커_신지영 기자] 내가 생각하는 대로 직접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3D 프린팅 기술이 있다면 가능하다. 전용 카메라로 물체를 찍거나 설계도를 입력하면 프린터가 플라스틱이나 금속 같은 고분자 물질을 층층이 쌓아 올려, 종이에 그림을 인쇄하듯 삼차원 공간에 물체를 찍어 낸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Gartner)는 2016년 1월 9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폐막한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16’을 결산하면서 3D 프린터에 대한 수요가 2013년 6만1661대에서 2020년 241만7000대로 약 39배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CES 2016에서는 3D 프린터 신제품이 대거 나왔는데, 사무자동화기기 전문 제조업체 신도리코는 장소에 상관없이 조형물의 출력 명령을 내릴 수 있는 ‘클라우드 프린팅’, CAD 파일의 자동 3D모형 형상화 기능 등을 갖춘 3D 프린터를 공개해 관심을 끌었다.

▲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중 하나인 3D프린팅의 세계

◆ 3D프린팅이 뭐길래

3D 프린팅(Three-Dimensional Printing)은 프린터로 물체를 뽑아내는 기술을 말한다. 종이에 글자를 인쇄하는 기존 프린터와 비슷한 방식으로, 다만 3차원의 공간적 부피를 가진 입체 모형을 만드는 기술이라고 하여 3D프린팅이라고 부른다.

보통 프린터는 잉크를 사용하지만, 3D프린터는 플라스틱을 비롯한 경화성 소재를 쓴다. 기존 프린터가 문서나 그림파일 등 2차원 자료를 인쇄하지만, 3D프린터는 3차원 모델링 파일을 출력 소스로 활용한다는 점도 차이점이다. 설계도에 따라 가루로 분쇄되었거나 액체 형태로 녹아 있는 프린팅 원료를 일정한 틀에 따라 평면에 단단하게 응고시키면, 이것이 여러 차례 번갈아 반복되어 층층이 쌓여 3차원의 물건이 만들어지는 원리다.

3D프린팅 기술은 30여 년 전인 1983년 시작됐다. 지금도 3D프린팅 시장에서 선도적 위치에 있는 3D프린팅 기술 전문 업체 ‘3D시스템스(3D Systems)’의 공동 창업자 찰스 헐이 주인공이다. 디자인 엔지니어로 일했던 그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물체를 더 빨리 제작할 수 있을 것인가’였다. 헐은 시제품 제작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3D프린팅 기술을 고안했다.

헐은 물체를 밑동부터 얇게 쌓아 올리면, 벽돌을 쌓아 탑을 올리는 것처럼 물체를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이전까지는 원료가 되는 덩어리를 깎아서 물체를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헐의 아이디어로 인해 적층형 방식으로도 3차원 물체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제조업의 기술 방식에 있어 큰 변화를 맞이한 혁신적 사건이었다.

헐이 처음으로 고안한 방식은 ‘스테레오리소그래피(SLA, Streolithography Apparatus)’라고 불린다. SLA 방식은 캐드(CAD) 등 3D모델링 소프트웨어로 설계한 입체 모형을 여러 개의 얇은 층으로 나누는 기술을 말하며, 지금도 3D프린팅 산업 현장에서 자주 쓰인다.

1986년 자신이 등록한 특허가 발효되자 헐은 더그 네커스(Doug Neckers)와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3D시스템스(3DSystems)”라는 업체를 설립했고, 창업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 3D프린팅 기술 시장에서 스트라타시스와 양대 산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미국 미네소타주에 살던 스콧 크럼프는 어린 딸을 위해 개구리 장난감을 만들다가 3D프린팅 기술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당시 그는 장난감을 만들기 위해 원통형 고체 접착제를 녹여 물체를 붙이는 글루건(glue gun)을 사용했는데, 접착 원료로 폴리에틸렌과 양초용 왁스를 혼합해 이용했다. 혼합한 고체형 원료가 글루건의 뜨거운 노즐을 통과해 액체로 변하고, 이것을 공기 중에서 굳도록 해 모형을 만드는 원리였다.

크럼프는 글루건으로 층을 만들고, 이를 쌓아 올리면 물체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고, 오늘날 FDM(Fused Deposition Modeling, 용융 적층 모델링) 방식 3D프린터의 시초가 됐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1989년 ‘3차원 물체를 만들기 위한 방법 및 장치(Apparatus and method for creating three-dimensional objects)’라는 이름의 특허로 구체화된다.

특허를 등록한 그해, 크럼프는 아내 리사 크럼프(Lisa Crump)와 함께 “스트라타시스(Stratasys)”라는 3D프린팅 기술 업체를 창업했고, 지금도 여전히 사외이사이자 회장으로 스트라타시스를 이끌고 있다.

3D프린팅 기술 대중화의 중심에는 오픈소스 프로젝트가 있다. 2005년 영국 배스대학교 기계공학과의 에이드리언 보이어(Adrian Bowyer) 교수가 시작한 ‘렙랩(RepRap)’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렙랩은 ‘빠른 프로토타입 장비 복제(Replicating Rapid Prototyper)’를 줄인 말이다. 개방형 디자인으로, 자가 복제를 통해 누구나 3D프린터를 개발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렙랩 프로젝트에서는 지난 2008년 오픈소스 3D프린터 ‘다윈(Darwin)’을 내놓은 이후 ‘멘델(Mendel)’과 ‘헉슬리(Huxley)’ 등 기능을 개선한 오픈소스 3D프린터를 꾸준히 내놓고 있다.

또한 2014년을 기준으로 대형 3D프린터 기술업체인 3D시스템스와 스트라타시스 등이 보유한 핵심특허 90여 건이 만료되고, 이를 중심으로 전 세계 각지에서 이른바 ‘메이커 운동(Maker Movement)’이 시작되면서 일부 대형 업체가 주도하는 형국이던 3D프린팅 기술을 대중이 주도할 수 있게 됐다.

◆ 3D Printing,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

3D프린터는 필요한 물건을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생산의 경계를 허물고, 3D로 설계된 도면과 재료만 있으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상상력의 영역도 넓힌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의 닐 거센펠드(Neil Gershenfeld) 교수는 2006년 펴낸 저서 『팹(FAB)』에서 개인용컴퓨터(PC) 시대 이후 개인용 제작기(PF, Personal Fabrication)의 시대를 예견한 바 있다.

3D프린팅 기술은 특히 제조업 현장에서 매우 유용하다. 3D프린팅 기술은 실제 제품을 완성하기 전 디자인을 미리 보기 위한 ‘목업(mock-up, 실물 크기 모형)’ 제작 단계를 혁신한다. 3D프린팅 기술을 활용하지 않는다면, 시제품 제작에 걸리는 시간은 일반적으로 수 주에서 한 달이 넘는다. 3D모델링 소프트웨어로 설계한 제품 디자인을 목업 제작 전문가에게 전달한 후에도, 최종 결과물을 받아 보기까지는 디자인이나 세밀한 부분을 수정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한 탓이다.

이 길고 지루한 과정을 3D프린팅 기술은 단 몇 시간 안에 끝낼 수 있게 해준다. 시제품 제작에 드는 비용을 절감할 뿐만 아니라 제품의 완성된 디자인이 외부로 유출되는 사고도 방지할 수 있다. 3D프린팅 기술로 얻을 수 있는 부가가치인 셈이다.

음식과 인쇄를 합한 푸드 프린팅 개념은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가장 기초적인 푸드 프린팅은 2차원 평면에 식용색소를 이용해 이미지를 프린트하는 것이다. 기념일에 주문 제작하는 ‘포토 케이크’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2차원에서 좀 더 발전한 형태로는 일정한 두께와 원하는 모양대로 음식 이미지를 프린트해 2.5차원의 푸드 프린팅을 한 것이다. 완전 평면 형태의 2차원보다는 두께감이 있긴 했지만, 이를 입체적이라고 표현하기엔 많이 부족했다.

◆ 3D프린팅, 산업의 발전만 있는 것은 아니다

3D프린팅 기술과 3D프린터의 보급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3D프린터용 모델 도면을 공유하는 서비스도 덩달아 확산하는 중이다. ‘싱기버스(Thingiverse)’, ‘셰이프웨이스(Shapeways)’와 같은 웹사이트가 대표적이다. 3D 모델 자료를 등록하면, 누구나 쉽게 도면을 내려받아 자신이 갖고 있는 3D프린터로 모형을 출력할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다.

그런데 지적재산권이 미국 만화 업체에 있는 만화 캐릭터를 누군가 3D 모델로 만들어 도면 공유 서비스에 유료로 업로드하면 어떻게 될까. 3D프린터용 3D 도면을 디자인한 것은 디자이너 본인이지만, 애당초 만화 캐릭터의 지적재산권은 만화 업체가 갖고 있다. 때문에 이 같은 행위는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 불법이다.

3D 도면에 ‘디지털 저작권 관리(DRM, Digital Rights Management)’ 기술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3D프린터용 도면을 구입한 사용자가 한 번 출력하면 더 이상 도면을 쓸 수 없도록 하거나, 도면을 별도로 관리해 지적재산권 침해를 막는 방법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DRM 기술은 언제든지 우회하는 방법이 마련될 수 있어 실효성이 낮은 편이다. 또, 과도한 제한은 3D프린팅 산업의 발전과 대중화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지적재산권 문제를 풀어 줄 효과적인 방법은 아직 뚜렷하게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의 장난감 업체 해즈브로(Hasbro)와 3D프린터 출력용 도면 공유 서비스 셰이프웨이스의 협력을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해즈브로는 셰이프웨이스와 협력해 자사 소유의 ‘마이리틀포니(My Little Pony)’ 캐릭터를 누구나 독창적으로 재창조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뒀다. 3D모델링 디자이너나 3D프린터 사용자가 마이리틀포니 캐릭터를 마음대로 활용해 해당 도면을 셰이프웨이스로 공유해 판매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해즈브로는 셰이프웨이스와 라이선스를 맺어 도면 판매 수익의 일부를 매출로 챙길 수 있고, 셰이프웨이스는 판매된 도면 수익의 일부를 도면 창작자와 나누는 구조다. 3D프린팅 산업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지적재산권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3D프린터는 제조업의 민주화에 기여한다. 자본이 제조업 시설을 독점하고, 이를 통해 얻는 잉여생산물로 자본을 증식하게 된 산업혁명 이후 처음으로 자본가가 아닌 보통 사람들도 제조업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3D프린터를 통해 누구나 낮은 가격에 간단하고 빠르게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제조업에 종사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설 자리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이에 대해 미국의 비즈니스 전문 온라인 잡지 ‘아비트리지매거진(Arbitrage Magazine)’은 다음과 같이 논평하기도 했다. “3D프린팅 공정은 의심의 여지없이 저임금 일자리를 위협한다.”

이처럼 3D프린팅의 미래에는 제조업의 민주화라는 긍정적 측면과, 일자리 감소라는 어두운 문제가 공존하고 있다.

2013년 5월 4일 미국에서는 디펜스 디스트리뷰티드라는 회사가 세계 최초로 3D 프린터로 제작한 권총의 시험 발사를 성공시켜 주목받았다. 이 회사는 3D 프린터 권총의 설계도면을 온라인에 공개했고, 이것이 논란이 되자 미국 국무부는 설계도면의 공개를 금지했다. 그러나 이미 다운로드 횟수는 10만건을 돌파한 후였다.

2014년 일본에서는 3D 프린터로 찍어낸 권총을 5정 제조하여 소지하고 있던 대학 직원이 경찰에 체포되는 사건이 있었다. 일본은 총기 소유가 불법이기 때문에 사회에 미친 충격은 더 컸다.

3D 프린팅 기술이 대중화되면서 총기류 복제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다양한 무기의 설계도만 입수하면 손쉽게 복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기 설계 도면에 대하여 총기류 관리와 동일한 정도의 규제를 하는 등 설계 도면의 유통을 차단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조치가 필요하다.

◆ 국내 최초 3D 프린팅 패션쇼 열리기도

아시아 최대의 3D프린팅 유저콘퍼런스 & 전시회인 ‘3DPIA 2017’이 25일부터 3일간 경북 구미시 구미코에서 개최된다. ‘4차 산업혁명, 3D프린팅이 주도하다’를 슬로건으로 하는 이번 행사는 산업통상자원부 및 3D프린팅 관련 유관 산학연관 단체 37개 기관들이 후원하며, 71개사 121개 부스 규모로 약 1만여명의 관람객을 예상하고 있다.

개막식의 하이라이트는 국내 처음 선보이는 3D 프린팅 신소재 패션쇼다. 3D 프린팅으로 만든 패션 소품을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옷 한 벌을 한 번의 3D 프린팅으로 만들어내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마지막 날 열리는 ‘3D 프린팅 BIZ콘테스트’에서는 '전기·전자 3D 프린팅'을 주제로 한 일반인과 학생들의 3D 프린팅 작품을 볼 수 있다.

남유진 구미시장은 "3D 프린팅은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신기술 중 하나이고 정보통신기술(ICT)융합 기반 핵심기술이란 점에서 구미에 필요한 인프라다"며 "이번 행사는 아시아 각국 역량과 관심을 하나로 모으고 확산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로봇, 3D 프린터, 드론 분야의 국가기술자격을 신설해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기술 인력 양성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한편, 산업 현장에서 수요가 많지 않은 국가기술자격은 장기적으로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국가기술자격 제도는 그동안 산업 현장에 필요한 기술 인력 육성을 유도해 산업 발전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현장에선 기술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지적도 없지 않았다. 정부가 이런 산업·교육계의 의견을 받아들여 국가기술자격 제도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에 나선 것이다.

올해 신설될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 자격은 로봇기구개발기사, 로봇소프트웨어개발기사, 로봇제어기하드웨어개발기사, 3D프린터개발산업기사, 3D프린팅전문운용사, 의료정보분석사 6개다. 이 가운데 로봇기구개발기사는 차세대 제조·의료·안전 로봇 등 로봇 기구와 관련한 부품 개발 능력을 평가하는 자격이며, 3D프린터개발산업기사는 3D프린터를 설계하는 능력을 평가하는 자격이다.

올해 관련 법령 개정으로 자격이 신설·개편되면, 시험 출제 등 준비 과정을 거쳐 내년 하반기에는 4차 산업 국가기술자격증이 발급될 전망이다. 정부는 대신 산업 현장의 수요가 줄어든 석공예기능사, 원형기능사 자격을 없애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4차 산업혁명에 대처하기 위해 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친환경 신산업 분야의 자격 개편에 공을 들이고 있다"며 "미래 유망 분야의 국가기술자격 신설은 새로운 직업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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