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돌
리얼돌은 사람의 모양, 촉감을 흉내내 만든 인형 자위도구다. 한국에서는 주로 리얼돌이라고 부르지만, 그 외에도 러브돌, 섹스돌, 실리콘 인형 등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중 특히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본딴 ‘전신 리얼돌’ 수입이 최근 문제가 됐다.
리얼돌, 수입 허용?
지난해 1월, 김포공항 세관에서는 ‘풍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리얼돌을 압류했다. 해당 리얼돌 판매 성인용품 업체는 세관에 대해 소송을 진행했고, 지난 25일 그 판결이 내려졌다. 1심, 서울행정법원은 김포공항 세관의 결정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지난 2019년 2월의 인천세관 리얼돌 처분에 관한 판례를 인용하기도 했는데, 이 물품이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성적 부위나 행위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없다고 전했다.
그에 더해 자위기구가 사적인 공간에서 이용되는 점을 강조하며, 은밀한 영역에서의 개인 활동에는 국가가 되도록 간섭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실현하는 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피고인 김포세관 측에서는 물품이 지나치게 정교하다고 주장했지만, ‘특수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실제 사람과 혼동할 여지가 거의 없고, 여성의 모습을 한 전신 인형일 뿐’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리얼돌 수입 반대 청와대 국민청원
2019년 7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리얼돌 수입 및 판매를 금지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해당 청원에 참여한 인원은 26만여 명. 그들은 무엇을 우려해 리얼돌 수입을 반대했을까. 다음은 청원 내용 일부를 인용한 것이다.
“리얼돌은 다른 성인기구와 다르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여성의 신체적 특징을 그대로 떠와 만든 마네킹과 비슷한 성인기구입니다. 머리 스타일뿐만 아니라 점의 위치, 심지어 원하는 얼굴로 커스텀 제작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한국에선 실제로 연예인이나 지인의 얼굴과 음란 사진을 합성해 인터넷에 게시하는 행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리얼돌도 안 그러란 보장은 없겠지요. (중략) 리얼돌을 사용해서 욕구를 풀면 성범죄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오히려 움직임 없는 리얼돌에 만족하지 못한 사람들은 살아있는 여성에게 성범죄를 행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리얼돌 사용으로 성범죄는 오히려 증가할 것입니다.”(청와대 국민청원,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81300)
‘특수’
많은 네티즌이 지난 25일의 판결 중 ‘특수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실제 사람과 혼동할 여지가 거의 없고’라는 구절에 분노했다. 여기서 특수한 상황이란 ‘리얼돌과 연관된 각종 성범죄와 살인, 시체 유기 등’을 말할 것이라는 점이 그 이유였다.
리얼돌의 수준이 지금보다 훨씬 조악했던 2014년에도 리얼돌을 시체로 오인하는 사건이 있었고, 반대로 그해 겨울에는 시체를 리얼돌로 오인해 수사가 지연된 일도 있었다. 이 상황은 모두 ‘특수’하다. 언제는 범죄가 일반적인 행위였던가. 범죄는 늘 특수했다.
그러나 그 특수한 상황으로부터, 약자가 제대로 보호받은 일은 얼마나 있었나.
익숙해지는 일에 익숙해지지 않기 위해서
익숙해지는 것은, 생각보다 그 힘이 강하다. 인지행동치료 중 ‘노출 치료’에 대해 들어본 일이 있는가. 이는 어떤 위험도 유발하지 않고 불안의 근원이 되는 대상이나 환경에 환자를 노출시켜 환자의 불안이나 고통을 없애는 기술이다.(위키백과)
불안의 근원이 되는 대상이나 환경에 처음부터 노출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점진적으로’ 노출되기는 비교적 쉽다. 리얼돌을 반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슷한 것에 익숙해지면 원래의 것을 함부로 하기는 쉽다.
우리 사회는 강한 사람 위주로 흘러가는 일에 너무 익숙해졌다. 그러니 리얼돌을 반대하는 이들은 힘들게 버틴다. 이미 약자이기에, 더 이상 사람답지 않아지는 것에 ‘익숙해지는 일에 익숙해지지 않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