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반발...신재생에너지산업 위축, 석탄・석유 수요 늘어 가격 상승 우려

[뉴스워커_박경희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1일(현지시간) 수일 안에 오바마 전임 행정부가 서명한 파리기후협약 탈퇴여부를 발표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나는 수일 내에 파리 기후변화협약에 대한 결정을 발표할 것(I will be announcing my decision on the Paris Accord over the next few days)”이라는 글을 올렸다. 이어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자”고 덧붙였다.

트럼프는 사실상 탈퇴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는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 환경보호청의 스콧 프루잇 청장 등이 탈퇴 방식 등 세부 내용을 검토 중이라며 이같이 보도했다.

▲ 지구를 위한, 인류를 위한 '파리 협정' 타결이라는 큰 의미를 가졌던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도널드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탈퇴를 선언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와 미국은 물론 세계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그래픽_진우현 기자>

◆트럼프의 파리기후협약 탈퇴는 이미 예견된 일?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행보는 예견된 일이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기간에 파리기후변화 협약은 중국의 날조극이고 과도한 환경규제가 경제성장을 가로막는다며 미국에 불리한 조항들을 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파리협정에서 탈퇴 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3월 28일에는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친환경 정책을 폐기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함으로써 탄소배출을 제한하는 규제를 재검토하고 석탄화력발전소의 배출을 제한하는 ‘청정발전계획(Clean Power Plan)’을 연기하도록 했다. 이는 파리기후변화협약 철회를 암시하는 것이었다.

지난달 27일 이탈리아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미국을 제외한 6개국 정상은 트럼프에게 파리협정을 유지해달라고 설득했으나 결국 미국을 제외한 6개국만 이행을 약속한다는 최종성명을 발표했다.

◆ 트럼프는 왜 파리협정에서 탈퇴하나?

트럼프 대통령의 파리협정 탈퇴 의도에는 자국 우선주의(아메리카 퍼스트)에 따른 에너지 독립국이라는 목표가 숨어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취임부터 미국 우선 에너지 정책(America First Energy Plan)을 공식 발표했다. 미국 내 셰일가스 및 오일 시추를 통해 외부 국가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는 것은 물론 연료 가격을 낮춰 1인당 에너지 부담 비용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를 통해 경기 부양에 도움을 주겠다는 의지다. 셰일가스 및 오일에는 메탄가스가 들어있으므로 파리협정이 걸림돌이었다.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스캔들’ 확대로 흔들리는 정권 기반을 다잡기 위해 공약을 실천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CNN은 보도를 통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6개국 정상들은 파리협정 지지를 결정했지만 미국은 끝까지 지지 여부를 밝히지 않았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협약을 지지율 확대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미국 내에서도 비판 목소리 커져

트럼프가 파리 협정 탈퇴 쪽으로 가닥을 잡은 가운데 EU와 중국은 파리 기후변화협약을 준수할 것을 촉구하는 공동 성명서를 채택하기로 했다. 오는 2일(현지시간) 발표될 공동 성명서 초안은 “파리 기후변화 협정을 수행하는 것은 가장 우선되는 정치적 과제”라는 문구가 포함되며, 파리 협정 철수를 고려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반대가 포함돼 있다.

미국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낸시 펠로시 미국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는 31(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트럼프 대통령이 과학적인 진실을 외면한 채 우리의 건강과 환경을 보호할 안전장치를 제거하고 있다”며 비판했으며 “공해 유발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의 국가, 글로벌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애플을 비롯해 구글, 페이스북, 인텔, 모건스탠리, 마이크로소프트, 스타벅스, 나이키, 아디다스 등 미국 대기업 수장들은 미국의 파리협정 유지를 촉구하는 서한에 서명했다. 정유사 액손모빌은 이미 지난 5월 22일 백악관에 서한을 보내 “파리기후협약은 미래 기후 변화에 대처하는 효과적인 체제”라며 “미국이 파리기후협약의 일원으로 남아 공평한 경쟁의 장을 유지하길 바란다”고 했다. 액손 모빌 주주들도 트럼프가 파리협정에서 탈퇴하더라도 액손모빌이 미국기업으로서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도록 요구했다.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앨론 머스크 최고 경영자는 트위터를 통해 “미국이 파리협정에서 탈퇴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자문위원직에서 사퇴할 것”이라고 밝혔다.

◆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로 인해 신재생 에너지 산업 위축, 석탄과 석유 가격 상승 가능성 커져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2위이자 전 세계 탄소배출량의 약 15%를 차지하는 미국이 탈퇴할 경우 파리협정 자체가 무효화될 수 있다. 미국이 개발도상국의 온난화 대책 추진을 지원하기 위해 내기로 했던 각출금을 삭감할 가능성이 있어 파리 협정을 이행하는데 어려움도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100달러 규모로 조성키로 한 ‘녹색기후기금’에 회원국 중 가장 많은 30달러를 내기로 돼 있다.

한편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신재생에너지산업이 위축되고, 석탄과 석유의 사용이 늘면서 가격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 파리기후변화협정은=국제사회가 기후변화 대응에 나서기 시작한 것은 1992년 ‘유엔 기후협약’부터다. 이후 교토의정서가 1997년 12월 채택, 2005년 발효돼 1차 공약기간인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90년대 대비 5.2% 감축하는 목표를 세웠다. 실제 그 기간 동안 평균 22.6% 감축 효과가 있었다. 이때는 미국과 중국 등 온실가스 배출 1, 2위인 주요 국가들이 참여하지 않았다.

2011년 더반에서 열린 기후변화 협상에서는 1차 공약 기간을 2015년까지 연장하기로 하고 2020년 이후 적용될 새로운 체제를 설립하기로 했다.

이후 15차례에 걸쳐 진행된 협상을 통해 2015년 12월 12일 파리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본회의에서 ‘파리 협정’을 채택했다. 이때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하였으며 중국도 참여했다.

파리협정은 195개국 당사국이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 온도 상승폭을 2도 보다 훨씬 작게 제한하며 1.5도까지 제한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합의 내용을 담고 있다. 교토의정서는 선진국만 감축 의무가 있었지만 파리협정은 195개국이 자율적으로 감축 규모를 정하고 5년마다 상향된 목표를 제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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