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필수노동자 보호책 마련”…비도덕적 사고 재발 막아야

코로나19로 시장의 급성장을 이룬 배달업계가 또 한번의 논란을 일으켰다. 한 오피스텔 엘리베이터에서 여성이 보는 상황에서 배달원이 자신의 성기를 노출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로 인해 배달원에 대한 인권 보호 목소리가 힘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 뉴스워커_황성환 그래픽1팀 팀장>
코로나19로 시장의 급성장을 이룬 배달업계가 또 한번의 논란을 일으켰다. 한 오피스텔 엘리베이터에서 여성이 보는 상황에서 배달원이 자신의 성기를 노출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로 인해 배달원에 대한 인권 보호 목소리가 힘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 뉴스워커_황성환 그래픽1팀 팀장>

[뉴스워커_국민의 시선] 이번 겨울은 온 세상이 하얗게 물든 풍경을 자주 만났다. 하지만 멀리 떠나진 못했다. 모두가 그랬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우리의 겨울풍경은 ‘집콕 일상’ 이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무난히 생활이 가능했던 건 앞서나가는 배달서비스 덕분이다.

이젠 없어선 안 될 배달기사들과 갑질을 일삼는 특정 아파트 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서울의 한 오피스텔에서 배달기사가 여성 주민에게 자신의 성기를 노출하고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배달 플랫폼은 급성장했다. 지난해는 코로나19의 여파로 배달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해 배달 노동 종사자도 대폭 늘어난 상황. 이에 따라 배달을 전업으로 하지 않고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배달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플랫폼도 생겨났다.

앞서 지난 2일 배달종사자노동조합(이하 배달노조)이 헬멧을 강제로 벗게 하거나 화물용 승강기를 이용토록 하는 등 ‘갑질’을 일삼은 아파트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진정했다. 노조는 “여름 장마철 ‘로비가 물바다가 된다’며 우비를 벗게 하고, 겨울에는 ‘패딩점퍼 안에 흉기를 숨길 수 있다’며 점퍼를 벗을 것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해당 아파트들은 ▲오토바이 지상 진입 제지 ▲도보 배달 ▲전화번호 수집 ▲헬멧 탈착 ▲화물승강기 이용 등을 요구해 배달원들의 불만을 샀다. 아파트 측에서는 입주민 편의와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배달 노조는 “배달 노동자에게도 감정노동자 보호법을 적용하는 등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제도적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요청했다. 일각에선 갑질 아파트에 대한 배달 거부만이 답이라는 의견도 있다. 최근 배달 대행업체 ‘생각대로’는 배달차량의 출입을 막은 성동구의 신축 아파트에서 접수된 배달 주문에 대해 수수료를 2000원 인상한 바 있다.

온라인상에서 네티즌들은 배달기사들의 처우 및 인식 개선의 필요성에 공감했지만 난폭운전, 법규 위반 등 배달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스스로 고쳐야한다는 지적도 있다. 또 지난 12일에는 실제로 배달기사가 서울의 한 오피스텔 엘리베이터에서 자신의 성기를 노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배달기사는 헬멧을 쓰고 있었으며 범행 직후 배달의민족(배민) 로고가 그려진 오토바이를 타고 달아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자리에 있었던 여성주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CCTV영상을 토대로 범인을 추적중이다. 이 사건으로 배달기사의 성범죄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행법상 성범죄자도 배달 업무 가능…‘배민’ 이대로 낙인찍히나?


현행법에 따르면 아동·청소년과 마주칠 수 있는 아동 교육시설이나 아파트 경비원 등 37개 업종에서는 성범죄자 취업이 제한된다. 택배기사 역시 2019년 7월 개정된 화물운송사업법에 따라 성범죄자의 취업에 한계가 있다. 반면 오토바이(이륜차) 배달업에 대해서는 강력범죄자나 성범죄자의 취업을 금지하는 규정이 없다. 이륜차 면허만 있다면 범죄 전과 여부에 관계없이 누구나 배달기사로 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은 아닌지...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김범준 대표)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체 배달기사를 대상으로 성범죄 관련 교육을 강화하고 관련 매뉴얼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최근 불거진 배달기사의 신체 일부 노출 사건에 대한 재발 방지 차원으로 보인다. 배달의민족은 최근 사건과 유사한 피해가 발생했을 때 더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도록 핫라인을 운용한다고도 했다. 일반고객센터를 통해 들어온 유사 사건에 대해서도 즉시 관련 부서로 전달해 대응이 가능하도록 매뉴얼 전반을 개선한다고 밝혔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은 아닌지 국민으로서는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비대면 시대에 배달기사의 역할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음식 서비스 거래액은 17조3828억원으로 전년대비 78.6%가 증가했다. 업계에서는 전국적으로 약 20만명의 라이더가 배달 업계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필수노동자 안전보호 TF팀’을 출범시켰다. 보건의료, 돌봄 노동자와 비대면 사회를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배달기사들을 포함시켜 이들을 보호하자는 취지다. 배달기사는 필수 인력이라고는 하지만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되다 보니 노동자로서의 권리는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필수인력인 된 배달기사를 채용할 때부터 적합한 사람인지를 판별하는 기준 마련도 필요해 보인다. 그럼 서로를 오해하고 불안해하는 감정소모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배달원 책임의식 반드시 필요…따가운 시선은 자제해야


뉴노멀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인간을 단순히 생산요소로 치부하던 시기는 지났다고 본다. 직업의 귀천을 따지는 조선시대도 아니다. 배달기사 등 필수노동자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핵심 서비스를 제공한다.

‘더 빠르게’ ‘몇 분 내에’를 외치는 배달 업계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더불어 고급 빌딩·아파트 관계자들의 ‘갑질’에 시달리는 배달기사의 인권은 마땅히 보호돼야한다. ‘갑질’ 아파트들도 성실히 일하는 배달기사들까지 싸잡아서 범죄자로 취급하는 건 옳지 않다. 배달 노조의 말처럼 “배달기사도 누군가의 부모이고 자식”이다.

필요해서 음식 배달을 시킨 건 소비자다. 배달원이 못 미덥다면 직접 사다 먹으면 된다는 말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최근 배달기사의 신체부위 노출사건처럼 소수의 잘못된 행동으로 다수의 성실한 배달기사들에게까지 피해를 끼쳐서는 절대 안 된다.

배달기사들도 정직원이든 아니든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의무와 책임의식을 갖는 것이 먼저다. 노동의 소중한 가치를 인식하고 사회 구성원으로 성실히 직업의 본분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사회적 갈등이 어느 때보다 깊어진 지금, 우리 모두에게 인간 존중, 예의, 배려 등 어릴 때부터 배워온 기본 가치가 필요해 보인다. 서로 존중하는 문화가 바탕이 될 때 갈등해소의 실마리가 보일 것이다.

배달기사가 소비자의 편리함을 도모해주는 것은 인정하자. 이때 편리함은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이고 마음속으로 그들에게 차별의 시선을 보냈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배달 업계도 소수의 잘못된 행동으로 지탄받는다고 억울해 하기보다, 최근 발생한 배달기사의 비도덕적 사고가 다신 재발되지 않도록 법·제도적 장치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저작권자 © 뉴스워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