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도 확인해보겠다는 ‘폐습’ 근절 돼야
-서울 종로구, ‘시보떡 문화’ 타파…“건강한 직장문화 만들 것”

그래픽_뉴스워커 그래픽 1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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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워커_국민의 시선] 6년 전 화창한 봄날이었다. 결혼식을 마치고 다시 회사에 출근했을 때 하늘색 네모난 작은 상자 안에 쿠키를 담아 답례품을 돌린 적이 있다. 당시 많은 동료들이 축하해 준 것도 고마웠지만 열흘간의 신혼여행 기간 동안 업무를 대신해준 부서원들에게 미안함과 감사의 마음이 우러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 답례품에 대해 묻는 경우는 없었다. 답례품을 주는 건 미풍양속(美風良俗)이다. 의무가 아니라 주는 사람의 진심에서 우러난 작은 정성이다.

그런데 공무원 사회가 ‘시보 떡 문화’로 시끄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공무원 ‘시보 떡’ 관행에 대해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이 “관련 사안에 대해 확인해보겠다”고 나선 가운데 그들만의 문화를 바꿔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시보(試補)는 정식 공무원으로 임용되기 이전에 일정 기간 동안 거치게 되는 시험 기간 중의 공무원 신분을 말한다. ‘시보 떡’은 공무원들이 임용 후 시보기간이 끝나면 직장 동료들에게 감사의 의미로 떡을 돌리는 관행이다. ‘시보 떡’이 도마 위에 오른 건 지난 1월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사연에서부터였다.

공무원인 글쓴이는 ‘내 여자 동기는 시보 떡 때문에 운 적 있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여자 동기가) 가정 형편이 어려워 백설기만 돌렸는데 옆 팀 팀장이 받자마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고맙다고 해놓고 나중에 쓰레기통에 넣었다”며 “그런데 걔가 막내라서 사무실 쓰레기통 비우다가 그걸 보고 밤새 울었다”고 적었다.

지난해 8월에는 시보 순경 3명에게 정규 임용을 이유로 팀 회식비 60만원을 부담시키는 등 3회에 걸쳐 총 97만5000원을 부담시킨 경위가 감봉 2월 처분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 해당 경위는 당시 시보공무원에게 식사대접 강요를 한 이유로 국가공무원법 제56조 성실의무, 제57조 복종의무, 제61조 청렴의무를 위반한 것이 인정돼 위와 같은 처분을 받았다.

지난 1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이영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시보 떡 관행에 부정적 의견이 압도적”이라고 지적하자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은 “확인해보겠다”고 답했다. 장관까지 나서 실태파악을 하기로 한 ‘시보 떡 문화’는 근절될 수 있을까. 이 같은 공무원들의 ‘시보떡 문화’는 선배들의 가르침에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시작했다지만 당사자들에겐 점점 부담되는 분위기다. 한 누리꾼은 “서로 챙기는 게 나쁜 게 아닌데 고마워할 줄 모르는 사람들 때문에 좋은 취지의 관행이 악습이 되고 각박해진다”고 밝혔다.


서울 종로구, ‘시보떡 문화’ 타파 나서


전문가들은 ‘시보 떡 문화’가 공직 사회에 관행으로 자리 잡은 것이라면 사라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누리꾼들도 시보를 마치고 공직 생활을 갓 시작한 신규 공무원을 축하해주기보단 오히려 ‘시보 해제 기념 턱’을 내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문화가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다행히 서울 종로구가 ‘시보 떡 문화’ 타파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울 종로구는 이 같은 ‘시보 떡’ 문화를 근절하기 위해 구청장이 신규 공무원을 격려하는 방식으로 조직문화를 개선하겠다고 지난 18일 밝혔다. 종로구는 “그간 공직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던 잘못된 조직문화를 인지하고, 더 이상은 사회 초년생에게 경제적 지출이 강요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구 차원에서 공직 첫 시작을 축하해주는 방안을 검토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종로구는 올해부터 구청장이 신입 공무원에게 ‘격려 메시지’와 ‘도서’를 보내고, 배치 받은 부서의 선배 직원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다과를 지급키로 했다. 이와 함께 보고서 작성방식, 파워포인트 등 실무에서 활용 가능한 교육프로그램을 직원들에게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김영종 구청장은 “잘못된 관습은 타파하고 신규 직원뿐 아니라 누구나 일하고 싶은 직장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내실 있는 교육과 정책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공무원, 국가 위해 평등해야하는 직군…‘폐습’은 없애야


시보 떡을 쓰레기통에 버린 팀장도, 후배에게 회식 턱을 강요한 경위도 과거엔 신입이었다. 우리의 사회초년생 때를 생각해보자. 처음 입사했다는 설렘도 잠시, 경직된 사무실 분위기에 약간 어색함이 감돈다. 그런 상황에서 시보 떡으로 비교를 당하고 애써 준비한 답례품이 쓰레기통에 담겨 있다면. 누가 정을 붙이고 사회생활을 해 나갈 수 있을까 싶다.

떡이나 다과를 나눠 먹으며 자연스레 직원들의 얼굴도 익히고 조언도 듣는 건 낯설기만 한 첫 사회생활에 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세대가 변하고 누군가에게 고통이 될 수 있다면 바뀌어야 한다.

시보 떡을 돌리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보다 ‘그 시절을 겪어본’ 연륜이 있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독려하는 자세가 더 올바르다고 본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공시생’의 터널을 지나 공무원이 된 새내기들에게 떡을 바라기보다 일하는 법을 가르쳐서 나라를 위해 일하는 게 맞지 않을까. 다산 정약용은 관리직에 있는 사람일수록 ‘청렴(淸廉)’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듯 공직자로서 본인의 행실이 ‘높고 맑았는지’ 비춰 보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한 두 명의 행동이 공직사회 전체를 대변하는 건 아닐 것이라 믿고 싶다. 공무원은 국가에 고용된 공직자로서 모든 국민에게 평등해야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국가 운영을 위해 선발된 이들이 ‘떡’ 때문에 후배들을 눈물짓게 하는 대신 공무원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자랑스럽게 일할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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