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박경희 기자] 문 대통령은 22일 오전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당장 이번 하반기부터 공무원이나 공공부문에서 채용을 할 때 블라인드(Blind) 채용제도를 실시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어 “공무원과 공공부문은 정부의 결정만으로 가능하니 그렇게 추진해주고, 민간 쪽은 법제화되기 전까지 우리가 강제할 수 없다”면서 “민간 대기업들에게도 권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취임선서식에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내다보면서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은 이에 맞춰져 있고, 그 첫 단계가 바로 ‘블라인드 채용’이라 볼 수 있다.

블라인드 채용은 출신지나 나이 학력 등 각종 조건을 배제하고 실력에 초점을 맞춰 채용하는 방식으로 응시원서에 해당 정보들을 기재하지 않기 때문에 면접관들은 현장 평가만으로 응시자의 능력을 판단하게 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특별히 일정 이상의 학력, 스펙, 신체조건을 요구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면적으로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하도록 했다. 혈연・지연・학연으로 얽혀 있는 구조에서 탈피하고 오직 실력과 인성 중심 사회로 나아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적어도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기회인 일자리에서는 공정해야 한다는 것이 문 대통령의 의지로 엿보인다.

▲ 22일 오전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한 문재인 대통령은 자리에서 “당장 이번 하반기부터 공무원이나 공공부문에서 채용을 할 때 블라인드(Blind) 채용제도를 실시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것으로 공공부문을 시작으로 탈 스펙으로 이어지며 실력이 인정받는 채용문화가 자리잡을 것이라는 기대가 감돌고 있다.(그래픽_진우현 기자)

◆ 블라인드 채용, 올 하반기부터 적용 가능할까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블라인드 인사채용에 관해 “지난 2월 공공기관 인력 운영 방안을 확정하면서 올해 안에 국가직무능력표준(NCS) 기반 채용제도를 332개 전체 공공기관으로 확대하기로 했다”면서 “큰 어려움 없이 정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2015년에 학력이나 출신 등을 배제하고 직무능력을 중심으로 인력을 뽑을 수 있게 하는 NCS 기반 채용제도를 도입했다. NCS는 현장 직무 수행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 태도를 산업 부문 및 수준별로 체계화해 구직자의 불필요한 ‘스펙’ 나열을 피하는 제도다.

이러한 NCS 기반 채용제도를 첫해 130개 공공기관이 시행했으며 지난해는 230곳, 올해는 332개 전체 공공기관이 NCS 기반 채용제도로 신규 인력을 뽑도록 했다.

이와 함께 앞으로 정부는 모든 국가공무원과 공공기관 채용 시험의 입사지원서를 통일하고, 서류전형과 면접 과정에서 블라인드 방식을 어떻게 작용할지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계획이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현재 블라인드 채용이 도입됐더라도 기관마다 이력서에서 배제하는 항목이 다른 실정”이라며 “표준이력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공무원과 공공기관, 지방공기업 등 모든 공공부문에 제공 하겠다”고 말했다.

◆ 문 대통령, 지역인재채용할당제 30%까지 상향 요구

문 대통령은 이날 수석회의에서 공공기관에 지역인재채용할당제를 제대로 운영하도록 지시했다. “혁신도시 사업에 따라 지역으로 이전된 공공기관들이 신규 채용할 때는 지역인재를 적어도 30% 이상 채용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어 “원래 혁신도시 사업을 할 때부터 지역인재 채용은 하나의 방침이었는데 그 부분이 들쭉날쭉하다”며 “관심을 갖고 노력하는 공공기관은 20%대를 넘어선 곳도 있고, 관심이 덜한 공공기관의 경우 아직도 10%도 안 될 정도로 지역마다 편차가 심하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적어도 30% 정도 채용하는 확실한 기준을 세우도록 독려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이 이날 제안한 혁신도시 이전 공공기관의 경우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따른 혁신도시 건설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이전지역에 소재하는 지방대・고교 졸업자나 예정자를 우선해서 고용할 수 있게 돼 있지만, 일정 비율을 할당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지역 인재 할당제에 대한 의지를 보였기에 혁신도시 이전 공공기관을 포함한 전체 공공기관들이 대책마련을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지역의 우수한 인재들이 서울 소재 대학으로 지원하는 경향이 줄어들고, 지방거점국립대로 향하는 발걸음을 늘릴 수 있다. 이는 지역의 입시 판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지역인재 선발의 경우 국가직 공무원 채용에서는 지방인재 채용 목표제, 지역인재 채용추천제, 지역구분모집 등 3개 제도가 정착돼 있다.

◆ 블라인드 채용 문화, 민간 기업으로 확산될까

민간 기업에서도 블라인드 채용 의도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채용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의견도 있다. 사람인 관계자는 블라인드 채용에 대해 “직무별 최적의 인재를 뽑을 수 있는 혁신적인 채용 프로세스”라고 평가했지만 일반 재계에서는 공정 경쟁이라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할 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완전한 블라인드 채용은 직무 특성 등에 대한 고려가 없어서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부문의 블라인드 채용 확대는 민간 기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민간 기업 대다수는 아직 블라인드 채용에 소극적이긴 하지만 현재 롯데, KT, SK텔레콤 등의 대기업에서 이미 학벌과 스펙 등 차별적 요소를 제외한 탈스펙 전형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민간 기업으로도 확산될 가능성은 높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기업들이 모든 채용 과정에서 학력과 출신지를 아예 묻지 않거나, 영어시험 등 소위 스펙을 요구하지 않는 탈스펙 전형이 확산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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