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박경희 기자] 일본 도시바 반도체 자회사 ‘도시바메모리’ 매각 입찰에서 SK하이닉스가 포함된 ‘한미일 3국’ 연합을 우선 협상자로 결정했다.

NHK를 비롯한 일본 언론은, 도시바는 21일 이사회를 열고 SK하이닉스가 포함된 ‘한미일 연합’ 컨소시엄을 우선협상자로 결정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이 컨소시엄에는 미국 사모펀드 베인캐피털을 비롯해 일본 민관펀드인 산업혁신기구와 국책은행인 일본정책투자은행, 한국의 SK하이닉스가 참여했다.

한미일 연합은 도시바 반도체 기술이 중국 및 대만으로 유출되는 방지하고, 도시바 반도체 직원들의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주도해 만든 것이다.

당초에는 일본 정부계 펀드인 산업혁신기와 미국 펀드사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등으로 구성된 미일 연합이 구성됐으나, 최근 SK하이닉스가 가세하면서 ‘한미일 연합’이 형성됐다.

▲ SK하이닉스_뉴스워커 자료사진

SK하이닉스는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와 동종업체이기 때문에 각국 독점금지법 심사 통과 문제를 고려해 출자가 아닌 융자 형태로 참여하게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SK하이닉스의 방향과 같다.

이들은 2조엔(한화 약 20조4500억원) 규모의 자금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으로 특수 목적법인(SPC)을 설립, 도시바 메모리 지분 100%를 취득할 계획이다. 도시바는 매각 세부 조건을 협의한 뒤 이달 28일 주주총회에서 정식 계약을 맺고 내년 3월말까지 매각을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이다.

◆ 도시바 메모리 매각, 왜 한미일 연합인가

도시바는 원전사업에서 입은 7조원대의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올해 초부터 메모리 반도체 사업의 매각을 추진해왔다. 이를 위해 메모리 반도체 사업 부문을 분리해 ‘도시바 메모리’라는 독립 법인을 설립했다.

▲ 원전 부문 투자 손실을 책임지고 물러난 시가 시게노리 전 도시바 회장.

도시바 메모리 인수전에는 미국 브로드컴-실버레이크, 대만 훙하이그룹 등이 경쟁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만 훙하이그룹은 인수가로 무려 3조엔에 이르는 금액을 제시했지만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 우려 등으로 일찌감치 대상에서 제외됐다. 브로드컴-실버레이크 컨소시엄의 경우 100% 지분 매입을 조건으로 2조2000억 엔을 적어 내 단순 인수조건으로는 가장 우세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도시 메모리를 통째로 해외 자본에 넘기는 것을 원치 않아 일본경제산업성 주도로 결성된 한미일 연합이 우선 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앞서 도시바는 낸드플래시를 포함한 반도체 사업을 분사하고 경영권이 없는 신설회사의 기분 19.9%만을 팔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 상황이 급박해지자 외부출자 비율을 50% 이상으로 올리고, 경영권을 넘기는 것도 가능하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19.9% 지분 입찰 때에도 SK하이닉스가 제시한 이번과 비슷한 3조원대였다.

SK하이닉스는 당초부터 도시바 경영권보다는 글로벌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삼성전자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는 도시바와 R&D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업 기회를 창출함과 동시에 업계의 지각변동을 막는 것이다.

반도체 업계 고위 관계자는 SK하이닉스 참여에 대해 “낸드플래시 원천 기술을 보유한 일본 도시바의 메모리 반도체 기술 자산이 미국이나 중국계 자본으로 통째로 넘어가는 것을 저지하고 기존 연결고리를 더욱 강화한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

◆ SK하이닉스와 도시바의 인연은 20년 전부터

1983년에 만들어진 후발주자 SK하이닉스의 요청으로 1996년에 두 회사 간의 라이선스 계약이 체결되면서 SK하이닉스와 도시바의 인연은 시작됐다.

하지만 2002년 라이선스 계약이 만료된 뒤 두 회사는 라이선스 사용을 두고 2년 동안 갈등을 빚어왔고, 도시바가 2004년 미국과 일본 도쿄 법원에 SK하이닉스를 상대로 낸드플래시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했다. SK하이닉스도 맞소송을 하면서 3년 동안 끌어왔던 특허 분쟁이 2007년 다시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면서 종료됐다.

이후 차세대 메모리인 STT-M램을 같이 개발하는 등 협력 관계를 유지했던 두 회사는 2014년 기술유출 문제로 또 다시 갈등을 빚었다. 도시바는 SK하이닉스가 도시바의 정보를 활용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1조1000억원에 달하는 대형 소송을 9개월 동안 끌던 두 회사는 그해 메모리 반도체 차세대 공정기술인 ‘나노임프린트 리소그래피(NIL)’의 공동 개발을 발표하면서 화해하였고, SK하이닉스는 합의금으로 2억7800만 달러(3050억원)를 도시바에 전달했다.

▲ 도시바메모리_뉴스워커 자료사진

이렇게 도시바와의 협력을 통해 반도체 분야 우위를 선점하고자 했던 SK하이닉스, 도시바메모리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서 협상이 잘 마무리된다면 목표대로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약진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런데 매각 협상의 가장 큰 변수가 남아있다. 도시바와 반도체 공장을 공동 운영하고 있는 웨스턴디지털이 도시바 메모리의 매각을 막기 위해 국제중재재판소에 소를 제기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웨스트디지털은 도시바 메모리 매각 이후 시점에 일반 회사채를 인수, 간접 출자하는 절충안에 어느 정도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최종 결정은 나오지 않았다.

※낸드플래시: 1987년 일본 도시바가 개발한 것으로 전원이 꺼지면 저장된 자료가 사라지는 D램이나 S램과는 달리 전원이 없는 상태에서도 데이터가 계속 저장되는 플래시 메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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