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 개시를 공식적으로 요구해왔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12일(현지시간)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대표가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미국 무역장벽을 제거하고 협정 개정의 필요성을 고려하고자 한미 FTA와 관련한 특별공동위원회 개최를 요구한다고 한국 정부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USTR는 다음달 미 워싱턴DC에서 한미 공동위를 열 것을 요구했다.

USTR은 “특별공동위는 한미 FTA의 개정을 고려할 수 있거나 약간의 수정과 조항의 해석 등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한미 FTA가 발표된 이후 우리의 대(對)한국 상품수지 적자는 132억 달러에서 276억 달러로 배가됐고, 미국의 상품 수출은 실제로 줄었다”면서 “이는 전임 정부가 이 협정을 인준하도록 요구하면서 미국민들에게 설명했던 것과 상당히 다르다”고 주장했다.

또,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주형환 산업통상부 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특별공동위는 중요한 무역 불균형 문제를 다루고 미국에 대한 수출의 시장 접근성과 관련한 문제를 해결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 그래픽_진우현 기자

◆ 서한 재협상 아닌 ‘일부개정’

서한은 협정문에 따라 일방의 요청 후 30일 이내에 공동위원회가 개최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양국 실무협회를 통해 세부일정을 조율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다만 무역협회는 “서한에서 재협상(renegotiation)이라는 단어보다 수정(revision 또는 modificat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점을 미뤄볼 때, 전면 재협상보다는 일부 개정 추진으로 무게가 실린다”고 예상했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정책국장도 이날 백브리핑에서 “FTA 조문상 재협상(renegotiation)이라는 용어도 없고, 이번 요청에도 사용하지 않았으며 조문상 용어인 개정 및 수정을 사용했다”며 “이번 요청이 일단 만나서 서로의 관심 사안을 논의하자는 것이지 실제 재협상, 개정 및 수정 협상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조문상 양측이 동의하는 경우에만 개정 및 수정 협상을 개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개정에 대해서도 “한미 FTA 협정문에 규정된 일상적인 논의를 하는 것”이라며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우리도 요구할 것도 많이 있기 때문에 당당하게 요구할 것은 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왜 재협상이 아닌 개정인가

미국 정부는 당초 한미 FTA의 재협상을 추진했지만, 미 의회의 반발을 우려해 재협상이 아닌 공동위원회 특별 회기를 요청하는 것으로 요구 수준을 낮췄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미국 통상 전문매체인 ‘인사이드 유에스 트레이즈(Inside US Trade’s)는 13일(현지시간)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미 무역대표부(USTR)는 한미 FTA 재협상이 아니라 공동위원회 개최를 요구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해당매체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당초 USTR이 트럼프 대통령의 끊임없는 한미FTA 재협상 주장에 따라 한국에 보내는 서한에 ‘현대화(modernization)’이 아니라 ‘재협상(renegotiation)’을 요구할 예정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최종단계에서 결국 재개정이라는 용어가 빠졌다. 대신 한국에 보낸 서한에서 라이트하이저 USTR대표는 “가능한 수정(amendment)과 변경(modification)을 포함해 FTA의 운용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을 고려할 공동위원회 특별 회기를 열자”고 제안했다.

서한에 들어갈 용어가 바뀐 이유는 미국 재계와 의회의 우려 때문이었다고 기사는 전했다. 전면 재협상 요청이 담길 경우, 이는 한국을 격분하게 만들 수 있고, 결국 심각한 의회의 정치적 도전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을 행정부가 인식해 요구 수준을 낮췄다는 것이다.

◆ 그러나, 미국은 재협상 추진할 것

미국의 요구대로 다음달 특별공동위가 개최된다면 미국측은 FTA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트럼프 의지대로 ‘재협상’을 요구할 것이라는 예상이 일반적이다.

또 트럼프 행정부가 미 의회에 조만간 한국과 한미 FTA 재협상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공지했다고 블룸버그는 12일(현지시간) 보도하기도 했다.

블룸버그는 미 무역대표부(USTR) 관리들이 11일 국회의원들을 만나, 조만간 한국과 협상을 시작하기 위한 계획을 설명했다고 이 문제에 정통한 2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로버트하이저 USTR 대표는 행정부가 국회로부터 패스트트랙 권한을 획득할 필요가 없는 방식으로 한미 FTA 재협상을 추진할 것이라고 소식통은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국회의원들과 한미FTA 재협상 목표를 협의하고, 국회가 단순한 찬반투표만으로 이를 허용하는 방식을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국이 다음 달 특별공동위 개최를 요구함에 따라 미국이 국내 절차에 속도를 낸다면 이르면 11월쯤 양국간 재협상이 개시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한국도 국회 절차를 거쳐야하기 때문에 재협상까지는 순조롭지는 않다. 우선 우리는 통상교섭본부장 자리가 공석이다. 따라서 청와대는 조직개편안 미처리로 인한 통상교섭본부장 부재 등을 이유로 공동위 개최 연기를 미국에 요청한다고 밝혔다.

게다가 산업통상자원부는 “협정상 우리가 반드시 미국 측의 개정 협상 제안에 응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며 공동위에서 개정 협상 개시를 결정하려면 양측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미국의 요구를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북한 핵문제와 사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문제들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한미FTA 재협상라는 장벽 앞에서 우리의 현명한 대처가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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