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욱 시사컬림니스트] 미국 헌정사(史)상 첫 현직 대통령이 임기 중 사임한 사건 배경에는 ‘TV’라는 매체의 강력한 파워가 있었다. 37대 대통령 R.M.닉슨이 연루된 ‘워터게이트(Watergate Affair)’ 인데 TV는 이 사건의 공청회는 물론 대통령 사임 발표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의 부끄러운 민낯’을 미국 전 대륙에 화면을 내보냈다.

워터게이트는 지난 1972년 6월 대통령 닉슨의 재선을 획책하는 비밀공작반이 워싱턴의 워터게이트빌딩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침입하여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체포된 미국의 정치적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닉슨정권의 선거방해, 정치헌금의 부정·수뢰·탈세 등이 드러났으며, 닉슨은 1974년 8월 8일 밤 국민전체에 대한 TV연설을 통해 사임하게 된다.

한국도 헌정사상 첫 탄핵 대통령인 박근혜(65) 전 대통령 재판의 선고공판이 TV와 인터넷으로 생중계될 것으로 보여 귀추가 주목된다.

대법원은 25일 대법관 회의를 열고 ‘법정 방청 및 촬영 등에 관한 규칙’을 개정하기로 의결했다. 이번 개정에 따라 국민적 관심이 많은 주요 사건은 재판장의 허가를 얻어 1,2심 선고장면을 생중계할 수 있게 됐다.

▲ 대한민국 헌정사상 첫 탄핵 대통령인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의 선고공판이 TV와 인터넷으로 생중계될 것으로 보여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5년 6월 26일에 대법정에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 사건에 관한 공개변론을 열고 실시간 중계방송을 하고 있다.(출처_대법원)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 YTN화면 캡쳐(편집_뉴스워커)

이에 따라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선고,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에 대한 선고 장면도 안방에서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선고 생중계는 재판 기일 전날까지 재판장에게 신청해야 한다.

재판장은 촬영 목적과 대상 등을 검토하고 피고인의 동의 절차를 거쳐 생중계 여부를 결정한다.

다음달 1일부터 시작되는 1,2심 선고 생중계는 헌법재판소 탄핵 선고 중계와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중계 카메라는 재판장을 화면에 가득 채워 판결문을 낭독하는 장면만을 담게 되고, 피고인이 동의할 경우 선고 당시 피고인의 모습도 중계할 수 있다.

선고 직후 피고인의 표정을 촬영하는 등 인권 침해 소지가 있는 부분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피고인 얼굴을 가릴지 여부와 법정에 들어갈 수 있는 방송 카메라와 사진 카메라 대수 등 구체적으로 제한할 부분들은 예규를 마련 중이다.

대법원은 지난해 3월부터 하급심 재판 생중계 여부를 검토해 왔는데,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후 재판 생중계 여론이 조성되면서 박 전 대통령이 재판에 넘겨진 지 3개월 만에 결론을 내렸다.

대법원은 다만 “연예인에 대한 형사사건 등과 같이 단순히 대중의 관심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허가할 것은 아니고, 국민의 알 권리 등을 종합해서 재판장이 허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그동안 대법관 전원이 사건을 심리하는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을 생중계한 적은 있지만 사실관계를 다투는 1,2심 재판장면을 생중계한 적은 없다.

지난 5월 23일 박 전 대통령의 첫 재판도 TV 생중계 됐는데 재판 시작 직전까지만 허용됐다.

1996년 3월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 재판도 법정에 입장하고 인적사항을 확인하는 정도만 전파를 탔다.

당시 재판부도 사건에 쏠린 국민적 관심과 역사적 중요성을 감안해 개정 직후 두 전직 대통령과 법정에 대해 1분 30초간 사진 기자들의 촬영을 허용했다.

재판 중계 방식도 논란의 대상이다. 법원은 언론사가 선고 장면을 촬영하도록 할 방침이다. 저작권은 각 방송사가 갖는다. 피고인이 훗날 사생활 보호 등을 이유로 영상 삭제 등을 요청하더라도 현실적 구제가 어렵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미국 워싱턴 DC와 연방대법원을 제외한 미국 50개 주에서는 1심과 2심 재판 과정 중계를 허용하고 있다.

각 주마다 차이가 있지만 피고인의 인격권보다 알 권리를 우선해 인터넷 방송, 휴대전화 촬영도 가능하다.

반대로 피고인의 인격권을 중시하는 영국과 독일, 프랑스는 재판 과정 중계를 금지하고 헌법 재판 등은 부분적인 중계만 허용하고 있다.

한편, 박 전 대통령이 25일 자신의 법정에서 휴대전화를 보다 적발돼 재판부의 제지를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는 “(이날 의결 된)재판 공개 여부에 대한 뉴스를 공동 변호인이 잠시 보여준 것 같다”며 “실수가 있었다”고 휴대전화 사용 사실을 인정했다. 박 전 대통령이 재판 도중 이 같은 소식을 스마트폰으로 확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이 출연할 ‘법정드라마’ 주연 확정을 확인한 기분은 어떠했을까 사뭇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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