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욱 시사컬럼니스트] 1965년 6월 22일, 도쿄에서 ‘한-일 양국의 국교관계에 관한 조약(기본조약)’이 체결된 후 양국은 문화 교류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다.

세계애니메이션백과에 따르면 <황금박쥐>(Gold bat)는 이러한 분위기에서 만들어진 한국과 일본의 첫 번째 애니메이션이다. 일본은 합작을 위해 한국에 ‘제일동화’를 설립하고 <황금박쥐>를 기획해 동양방송(TBC, 지금의 KBS2) 동화부에 제작을 맡겼다.

<황금박쥐>는 가스타니아라국의 왕인 아키시스 여왕의 옥동자를 술사에게 빼앗기고 황금박쥐에게 도움을 청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동양방송은 <황금박쥐>를 제작해 1967년부터 주 1회 30분씩 방영했다.

그로부터 50년의 시간을 흐른 2017년 여름에 다시금 ‘황금박쥐’ 이야기를 꺼내본다. ‘황우석 스캔들’ 개입 이력으로 자질 논란이 일고 있는 박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본부장의 지난 7일 임명이 ‘황금박쥐’를 도마 위에 올렸다.

▲ 노무현 정권시절인 2005년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배아복제 프로젝트를 지원하기 위해 과학계의 실세 중의 실세 4인. 황우석 교수(좌측 두번째),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좌측 첫번째), 박기영 청와대 정보과학기술 보좌관(좌측 세번째),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맨 끝). 이들은 자신 이름의 성을 은유해 ‘황금박쥐’라는 실세의 모임을 만들었다.<그림_황금박쥐 포스터 / 그래픽_진우현 기자>

노무현 정권시절인 2005년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배아복제 프로젝트를 지원하기 위해 과학계의 실세 중의 실세 4인이 모였다. 황 교수,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 박기영 청와대 정보과학기술 보좌관,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이들은 자신 이름의 성을 은유해 ‘황금박쥐’라는 실세의 모임을 만들었는데 박 본부장도 일원이었다.

박 본부장 임명 후 전국공공연구노조, 건강과대안, 보건의료단체연합, 서울생명윤리포럼, 시민과학센터, 한국생명윤리학회, 환경운동연합,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등 과학기술인단체들과 시민단체들은 임명 철회와 자진 사퇴를 정부와 당사자에 촉구해 왔다.

황우석 논문조작 사태의 핵심 인물 중 하나인 박 본부장이 20조에 이르는 국가 R&D 예산을 관리하는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을 맡는 것이 매우 부적절하다는 점이 사퇴 촉구의 배경이다.

과학계 인사들은 진보·보수를 떠나 황우석 사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사람이 어떻게 다시 과기계 컨트롤 타워를 맡는 자리에 나타날 수 있느냐고 비판한다.

정부 출연연 노조인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은 8일 ‘한국 과학기술의 부고(訃告)를 띄운다’는 제목의 성명서에서 “박 교수의 임명은 한국사회 과학공동체에 대한 모욕이며, 과학기술체제 개혁의 포기를 의미한다”며 “박 교수의 혁신본부장 임명을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한편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정의당, 한국당 등 4개 야당도 이구동성으로 박 본부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박 본부장은 2004년 황 교수의 사이언스 논문에 아무 기여 없이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 사실이 2006년 초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연구부정행위 조사에서 드러나 청와대 보좌관직에서 사임했으나, 공저자였던 서울대·한양대 교수들과 달리 학교 당국의 징계는 받지 않았다.

또 박 본부장은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자신의 전공인 식물분자생리학과 관계없는 과제 2건 명목으로 황 교수로부터 2억 5000만원을 지원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이와 관련, 박 본부장은 최종 연구개발보고서를 제때 제출하지 않고 일부 연구비를 절차상 부적절하게 집행한 사실이 2006년 초 검찰 조사에서 드러났으나 처벌 대상에서는 제외됐다.

황 교수는 사이언스지에 실은 논문이 조작된 것으로 판명나면서 연구 보따리를 싸고 지금까지 지방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고 있다고 한다. 황우석 사태 관련자들도 대부분 사법처리나 징계를 받았다.

그러나 박 본부장은 공개사과도 없이 2006년 청와대를 내려와 2월 순천대에 복직했다.

최근 박 본부장은 ‘제4차 산업혁명과 과학기술 경쟁력’이란 책을 펴냈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추천사를 썼다.

문 대통령은 이 추천사에서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의 조율만이 우리 사회를 진정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소신을 펼친 분”이라며 “그 소신이 이 저서로 결실을 맺었다고 생각한다”고 극찬했다.

‘황금박쥐’ 4인방의 일원인 박 본부장이 10일 공적인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날 뜻이 없음을 밝혔다.

박 본부장은 이날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과학기술계 원로, 기관장, 관련 협회 주요 인사 등이 참석한 간담회를 열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혁신본부장으로 돌아와 영광스럽지만, 한편으로는 막중한 부담을 느낀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할 기회를 주신다면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으며 일로써 보답하고 싶다”며 자진해서 사퇴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황우석 사건에 대해선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 마음의 짐으로 안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황우석 스캔들 일원인 ‘황금박쥐’ 말고 악인을 물리치며 정의를 구현하는 애니메이션 주인공 <황금박쥐>가 간절히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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