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박경희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4일 중국의 미국 기업에 대한 지적재산권 침해가 심각하다며 ‘통상법 301조’에 따른 불공정 무역조사를 지시했다. 이에 중국 언론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대응하겠다고 반발하고 있어 미-중 간 무역전쟁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로 접어들고 있다.

미국의 불공정 무역조사에 명분을 준 것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까지 쏘아올린 북한의 도발이었다. 미국은 중국을 움직여 북핵문제를 해결하려했지만 중국은 이에 미온적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압박하자, 중국은 15일부터 북한의 석탄과 철, 해산물 등의 수입을 전면 금지하고 나섰다. 중국 상무부는 14일 오후 홈페이지에 공고를 올려 북한산 석탄, 철, 철광석, 납, 납광석, 해산물에 대한 수입을 15일부터 전면 금지한다고 밝혔다. 15일 이전에 중국 항구에 도착한 물품은 반입을 허용하고 다음 달 5일부터는 이런 물품에 대해서도 수입 절차를 중단하기로 했다. 다만, 북한 나진항을 통해 중국이 수입하는 제3국산 석탄은 유엔안보리에 미리 통보해 북한산이 아님을 입증하면 수입을 허용하기로 했다.

▲ 미국과 중국, 양국간의 기류가 심상치 않게 흐르고 있다. 이들 두 국가는 북한을 볼모로 신 무역전쟁을 벌이는 양상이며, 이 때문에 신냉전시대가 개막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그래픽_진우현 기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 제2371호의 실제 이행에 나선 것이다. 즉 미국과 국제사회에 유엔 제재 이행 의지를 내보이는 동시에 북한에게 자제하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미국과 북한이 전쟁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충돌하고 미국이 중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다분히 미국을 향한 제스처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중국의 이러한 조치에 북한은 한발 물러난 모습이다. 중국이 유엔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안을 수용하고, 북한산 석탄, 철 등의 수입을 전면 금지한다고 발표한 몇 시간 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위원장이 전략군사령부를 시찰하면서 김락겸 전략군사령관으로부터 괌 포위사격 방안에 대한 보고를 받고 미국의 행태를 지켜보겠다고 보도한 것이다.

◆ 미국, 중국의 대북제재 압박은 명분일 뿐?

그럼에도 미국은 중국에 대해 ‘통상법 제 301조’에 따른 불공정 무역조사를 멈춘다는 발언은 아직 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중국산 제품에 45% 고관세를 부과하는 등 무역전쟁을 벌이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대북 압력을 강화시키는 동시에 對 中 무역적자를 줄이겠다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전략으로 가고 있다는 평가다. 다시 말해 그동안 중국의 대북제재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이유로 ‘통상법 301조’ 카드를 꺼내든 것은 중국에 대한 무역 제재를 시도하기 위한 명분이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4일 중국의 지식재산권 위반 등에 대한 조사를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을 하면서 중국의 불공정행위를 손보겠다며 20년 넘게 쓰지 않았던 ‘통상법 301조’를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이날 서명한 행정명령에는 “통상법 302조에 근거해 중국의 차별적 요소를 조사하라”고 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불공정 무역관행 제재하는 ‘통상법 제 301조’

미국의 통상법 301조는 무역상대국의 불공정한 무역관행에 대한 제재조치를 규정한 것으로 행정부에 관세인상 등의 제재 권한을 주고 있어 ‘슈퍼301조(포괄경쟁력법)이라고 한다.

흔히 통상법 301~309조를 아울러 통상법 301조라고 부르는데, 301조는 미국 대통령 재량만으로 불공정 무역관행을 행사하는 국가에 대해 조사를 실시할 수 있고, 불공정 사례가 확인되면 각종 무역재제를 가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1995년 세계무역지구(WTO)에 가입하면서 WTO를 통해 무역분쟁을 해결하기로 약속하고 301조를 적용한 것이 없었다.

미국이 301조 카드를 휘두르면 WTO로 대표되는 다자간 무역 체제가 흔들리게 된다.

미국이 통상법 301조에 따라 실제 지식재산권 침해 조사에 착수할 경우 중국 기업들의 미국 기업 특허를 포함한 영업기밀 절도와 온・온프라인에서 상품・콘텐츠의 불법 복제 행위 등도 조사 대상에 포함된다. 중국 정부가 국가 차원에서 지재권 침해를 지원했는지 여부도 조사대상이다. 미 정부는 중국에 의해 자행된 미국 기업들에 대한 지재권 침해행위 규모가 6000억달러(약 685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미국은 지재권뿐 아니라 국에서 생산하지 않는 저부가가치 제품을 제외한 철강, 알루미늄, 타이어, 석유화학 등 중국수입제품에 고율의 덤핑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있다. 이외에도 세컨더리 보이콧, 안보를 이유로 중국산 철강과 알루미늄의 수입을 제한시키는 ‘통상확대법 232조’를 발동시키고, ‘환율조작국지정’ 등의 무역보복 카드를 쓰게 될 전망이다.

◆ 중국 ‘좌시하지 않겠다’ 맞대응 예고

미국이 중국에 301조 카드를 꺼내들자 중국도 ‘좌시하지 않겠다’며 맞대응 가능성을 피력했다.

15일 중국 상무부는 대변인 성명을 통해 미국이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와 강제적인 기술이전 요구 등 부당한 관행을 조사키로 한 데 대해 “미국 측이 사실을 돌보지 않고 다자간 무역 규칙을 존중하지 않으며 양자 경제 및 무역 관계를 훼손하는 행동을 취한다면 중국 측은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측은 북핵 해법과 양국간 무역분쟁이 별개 사안인데도 트럼프 대통령이 경제 보복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며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북핵 문제를 빌미로 미국이 자국의 경제이익을 극대화하는 협상술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중국 측은 양국간 무역 전쟁이 상호이익을 침해할 것이라는 점과 중국 스스로 이미 지식재산권 보호를 비롯해 WTO 틀 내에서 정상적인 무역관행을 유지해왔다는 입장이다. 이어서 “무역 전쟁이 벌어지면 미국의 피해가 더 클 것”이라고 강력 반발하며 보복 가능성을 경고했다.

중국은 즉각 미국의 대중국 수출 상위 4개 품목인 비행기, 농축산물, 자동차, 반도체에 대한 보복 조치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또 중국이 보유한 1조1천억 달러에 달하는 미 국채보유를 줄일 수 있다.

이렇게 세계경제 1위와 2위 국가인 미국과 중국이 통상마찰을 빚으면서 세계가 외교, 군사적으로 긴장이 고조되는 신냉전시대에 진입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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