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범죄와 2차 가해

그래픽_뉴스워커 그래픽1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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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구 세 모녀 살인사건


지난 25일, 서울 노원구 한 아파트에서 20대 남성 C씨가 체포됐다.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였다. 경찰은 피해자 중 큰딸 A씨의 친구인 B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A씨가 약속 장소에도 나타나지 않고, 이틀 전부터 연락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단지 연락만 되지 않는 것이라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을 수 있지만, B씨는 당시 A씨에 대한 C씨의 스토킹 범죄를 의심하고 있었다.

C씨가 아파트 CCTV에 포착된 것은 23일이었다. 들어가는 영상은 있었으나, 나오는 영상은 없었다. 경찰 조사 결과 C씨는 퀵서비스를 가장해 집에 침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집에 있었던 피해자는 A씨의 여동생이었고, 가장 먼저 살해됐다. C씨는 피해자의 집에서 대기하며 이후 귀가한 A씨의 어머니와 A씨를 차례로 살해했다.


피의자 C씨가 회복하는 사이


C씨는 23일 범행 후 25일 오전 체포 시까지 이틀간 사건 현장에 머무르며 목과 배, 팔 등을 수차례 자해했다. 결과적으로 체포 겸 이송 후 수술을 받아야 했으며, 비교적 최근까지 중환자실에서 회복했다.

C씨가 병원에서 회복하는 사이, 루머가 돌기 시작했다. C씨가 A씨의 전 남자 친구며, A씨의 이별 통보에 앙심을 품고 우발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는 소문이었다. 해당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지난 30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A씨의 지인이 ‘이번 노원구 세 모녀 살인사건에 대한 글입니다’라는 제목으로 게시한 글을 통해서였다.

A씨가 자신에 대한 스토킹을 눈치챈 것은 지난 1월로 드러났다. ‘제3자’로서 앞뒤 정황을 다 들어 봐도 C씨는 A양에게 비정상적으로 집착했다. A씨가 C씨에게 더 연락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정중히 말했으나 C씨가 그때부터 앙심을 품은 것 같다고, 글을 게시한 지인은 짐작했다.

C씨는 게임을 통해 만난 A씨를 지속적으로 따라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주민들도 C씨를 목격한 일이 있었다. C씨는 A씨가 아르바이트하는 곳까지 찾아갈 정도로 심한 스토킹을 이어갔는데, 범행 후 중환자실에서 회복하는 사이 이런 행태가 ‘전 연인 관계’로 와전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국민 청원과 경찰 조사...


지난 2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노원 일가족 3명 살인사건의 가해자 20대 남성 신상 공개 촉구 바랍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게시됐다. 글에는 ‘기사는 하나둘 올라오지만 세상은 여전히 조용하다. 조용해서는 안 된다.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청원 시작일로부터 채 일주일이 지나지 않은 4월 4일 오후 기준 청원 동의 인원은 25만 명에 가까워지며 ‘1개월 내 동의 20만 이상 도달 청원’이 됐다. 즉, 한 달 안에 대통령 수석비서관을 비롯해 각 부처 장관 등이 의무적으로 답변할 일이 된 것이다.

한편 지난 3일, 서울 노원경찰서 측은 피의자 C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A씨의 영장실질심사는 4일 서울북부지법에서 열렸다. C씨의 신상 공개 여부는 다음 주에 열릴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에서 결정될 예정이다.


끝나지 않은 가해...


사건의 1차 가해자는 체포됐을지 몰라도, 2차 가해는 이어지고 있다. 쉽게 찾거나 들어볼 수 있는 말은 ‘그러게 게임을 왜 해서는’, ‘애초에 게임에서 사람을 왜 만나나’ 등이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건강한 20대 남성이 게임을 하고 그 안에서 사람을 만나면, 목숨을 잃을 확률은 몇 퍼센트나 될까. 목숨을 잃지 않더라도, 신상이 노출됐다고 두려워할 일은 살면서 몇 번이나 있을까.

두려움을 피하는 일은 쉽다. 피해자의 잘못이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강한 가해자는 피할 수 없지만, 약자로서 피해자의 ‘잘못’은 저지르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2차 가해를 저지른다. 원래라면 아무렇지도 않았어야 할 일이 ‘피해자가 됐으니까 잘못’이 되어간다. 그러나 사람들은 2차 가해라는 생각도 없이, 쉽게 피해자의 행동을 탓한다.

그러나 사실은 다들 알고 있다. 가해자의 잘못이었다. 약자가 피하는 것으로 강자의 공격을 어디까지 막을 수 있었나. 그저 두려우니 현실을 외면한 것뿐이다. 이렇듯 2차 가해는 이미 피해를 입은 이에게도, 혹여 강자를 마주할 약자들에게도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를 사람들은 언제쯤 인정할까.

언제쯤, 현실을 직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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