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정치와 자본권력의 부도덕한 정경유착으로 판단, 삼성의 자업자득

[경제개혁연대_논평]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된 지 6개월 만인 8월 25일 1심 판결이 내려졌다. 법원은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 뇌물죄・횡령 및 국외재산도피 등에 대해 모두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 5년을 선고했으며, 같은 혐의의 최지성 부회장과 장충기 사장에 대해서는 각각 징역 4년, 박상진 사장에 대해서는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논란이 됐던 박근혜 전 대통령 뇌물죄 관련성에 대해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의 요구에 의해 이재용 부회장 등이 뇌물을 공여한 사건으로 정치와 자본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으로 판단했다. 경제개혁연대(소장 : 김우찬, 고려대 교수)는 이번 이재용 부회장 등에 대한 1심 선고는 법과 원칙에 따른 당연한 결과이나, 범죄혐의의 중요성이 비추어 최소한의 양형만을 선고한 다소 아쉬운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사건에서 특검이 공소장에 기재한 이재용의 혐의는 뇌물공여, 업무상횡령, 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 은닉 그리고 국회에서의 위증 등으로, 특검은 지난 8월 7일 이재용에 대해 징역 12년을 구형하였고, 박상진, 최지성, 장충기에 대해서는 징역 10년을 구형한 바 있다. 이러한 특검의 주장에 대해 이재용 측은 “특검의 일방적 추측만 난무하고 있다며 공소사실 전부에 대해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청했다.

검찰은 ① 정유라에 대한 승마지원, 동계영재스포츠센터 출연에 대한 공모 및 미르재단과 케이스포츠재단에 대한 출연 공모에 대해 뇌물공여죄를 적용했으며, ② 승마지원을 위해 삼성전자의 자금 78억원 그리고 재단출연을 위해 삼성전자 등 계열회사 자금 총 220억원을 횡령한 부분에 대해 업무상 횡령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③ 승마지원을 위해 총 79억원을 외국환거래법을 위반하여 국외로 도피시킨 혐의 그리고 ④ 계열사 자금을 횡령하여 허위로 서류등을 작성한 부분에 대해서는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1심 법원은 삼성의 승마지원 78억원 가운데 약 73억원을 뇌물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하였고, 영재센터 지원 관련 16억여원도 뇌물공여로 판단하였다. 또, 승마지원 부분 중 약 64억여원 상당액과 영재센터 지원 관련 16억여원이 횡령에 해당한다고 보았으며, 승마지원 상당 금액을 범죄수익 은닉 및 재산 국외도피행위로 보아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국회 청문회 당시 이재용이 최순실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증언한 부분 또한 위증으로 판단하는 등 혐의 대부분에 대해 유죄로 판단했다. 반면, 재판부는 “이재용이 승계작업의 주체이자 최다 이익”을 얻는 위치에 있다고 판단하면서도, 미르재단과 케이스포츠재단에 출연한 것에 대해서는 승계지원의 대가로 보기 어렵다고 보아, 이 부분 혐의는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번 판결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등과 같은 중요한 그룹 재편작업이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라는 개인적 이익을 위해 미전실이라는 법적권한과 책임이 모호한 조직에 의해 불법적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을 확인한 것으로서, 이는 우리나라의 지배구조가 얼마나 낙후된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 준 것이라고 판단한다. 또한 법원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에 구조적인 문제점이 있다는 점과 이재용이 무리하게 미전실을 동원해서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승계하려다가 불법을 저지른 것을 확인한 것에 의미가 있다.

이번 이재용 판결은 삼성그룹과 이재용 본인은 물론 한국사회에 많은 교훈을 제시하고 있음과 동시에 제도적 보완장치의 필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 이재용은 삼성그룹에 대한 경영권과 소유권에 대해 과도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 이재용의 변호인은 최후변론을 통해 “이재용이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편법으로 승계하려고 한 적도 없지만, 삼성의 주주들이나 우리 사회가 그것을 용납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맞는 말이다. 우리 사회는 더 이상 경영권 또는 소유권의 편법승계를 용인하지 않는다. 따라서 횡령 배임 등으로 회사에 유무형의 손실을 초래한 당사자 이재용이 단지 이건희 회장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훗날 삼성전자 또는 삼성그룹 경영진으로 다시 복귀하는 것 또한 우리 사회가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이재용은 안정적인 지분확보를 위한 그 어떠한 편법적인 시도도 단념해야 할 것이다. 이는 이재용 뿐 아니라 지배권 승계를 계획하고 있는 모든 재벌 2,3세가 명심해야할 사안이다.

둘째, 삼성전자 및 삼성그룹의 전문경영진들은 이재용이라는 소위 “총수”의 복귀를 전제하지 말고, 총수 없는 회사 또는 그룹으로서 새로운 지배구조를 정립해 나가야할 것이다. 나아가 이재용은 소위 말하는 “옥중경영”의 미련을 버려야 한다. 재판과정 중 이재용은 “본인은 삼성전자의 임원으로 그 역할만을 수행했을 뿐이며 나머지 계열회사들의 주요 의사결정은 전문경영진 및 미래전략실의 판단”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번 재판으로 이재용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 즉, 삼성그룹 계열회사들의 이사회, 전문경영인 그리고 미전실은 총수일가의 이익이 걸린 사안 앞에서 전혀 독립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지배구조를 갖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한편, 총수가 구속될 때 마다 기업과 언론은 총수가 없어 그룹의 장기투자계획 등을 세우지 못하여 사업에 차질이 생긴다는 주장을 반복해 왔다. 하지만 총수의 부재로 사업계획 등에 차질이 일어났다면 그 진짜 이유는 언제 다시 경영에 복귀할지 모르는 총수의 눈치를 보면서 전문경영진이 독자적인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사회 및 전문경영진들이 전향적인 자세로 새로운 지배구조를 정립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셋째, 이재용 재판을 계기로 삼성그룹 뿐 아니라 모든 기업과 정치인들은 정경유착이 결국은 본인 및 회사에 매우 큰 손실로 귀결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국정농단 관련 사건이 삼성그룹 문제 이외에도 다수 있었으나, 특검은 인력과 시간의 한계 때문에 모두 기소하지 못했을 뿐, 사실 삼성그룹과 이재용이 현재 당면한 문제는 다른 그룹도 맞닥뜨렸을 수 있는 문제였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넷째, 미르재단 등에 대해 그룹 단위에서 기부금이 결정되고 이를 각 계열회사에 할당하는 형식으로 기부금 출연이 결정된 점, 그리고 문제가 된 이후에도 기부금을 출연한 회사의 감사 또는 감사위원회에서 문제제기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점 등은 아직까지도 우리나라 기업들의 지배구조가 취약함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경영진을 견제하기 위해 독립적인 이사회 특히 독립적인 감사위원 선임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으로 기업 스스로 이를 해결하지 못하다면 정부와 국회가 상법개정을 통해 독립적인 이사가 선임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정부와 국회는「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개정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금융회사지배구조법 중 핵심적인 내용은 대주주에 대한 동태적 심사이나, 현재의 법률에 따르면 이재용은 심사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동태적 심사의 목적이 금융법 등을 위반한 부적격 대주주가 금융회사를 지배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삼성생명 등 삼성그룹의 금융회사를 지배하고 있는 이재용이 대주주로 계속해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입법취지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재용으로 인한 위험이 삼성생명 등 금융회사에 전이되지 않도록 심사대상이 되는 대주주의 범위를 확대하고 결격사유에 대주주의 횡령과 배임을 포괄시켜 심사를 할 수 있도록 금융회사지배구조법을 조속히 개정해야 할 것이다. 한편, 최근 감독당국은 동태적 심사가 아닌 삼성증권의 발행어음(단기금융)과 관련된 신사업 인가 심사에서 이재용의 재판을 이유로 대주주 적격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심사 보류를 결정한 바 있다.

여섯째, 정부는 향후 유죄판결을 받은 이재용 등에 대해 사면권을 행사하지 말아야 한다. 과거 경제위기 등을 이유로 비리경영인에 대한 많은 사면을 실시하였으며, 이때마다 많은 사회적 비난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계획”에도 횡령․배임 등 경제범죄에 대한 엄정한 법집행 및 사면권 심사 강화가 포함되어 있는 만큼, 이재용 뿐 아니라 모든 횡령․배임 등과 관련된 비리경영인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재용 등은 재판결과로 확인된 회사의 손해를 배상해야 할 것이며, 회사는 엄청난 유무형의 손실을 입힌 이들에게 퇴직금 등 지급에 있어서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재용 등이 회사의 손해를 배상하지 않는다면, 경제개혁연대는 참여연대와 함께 주주들을 모아 주주대표소송을 진행할 계획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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