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김영욱 시사컬럼니스트]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07년 7월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라는 자서전을 펴내고 그동안의 정치생활을 회고했다. 이 책은 출간당시 절판됐다.

박 전 대통령은 추천평에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나의 삶은 2006년 5월에 1막을 내렸다. 그리고 그렇게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문득 나는 지난 삶을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삶의 출발점에서 지난날을 담담히 기록해보고 싶어졌다”고 썼다. 또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처음 정치를 시작할 때, 이제부터 내 삶은 나의 것이 아니라 국민의 것이라고 했던 결심, 오로지 국민과 나라만 바라보자는 그 초심만큼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단언했다.

▲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변호인단이 전원 사임계를 냄으로써 박 전 대통령은 관할구역 안에 사무소를 둔 변호사나 공익법무관, 사법연수생 중에서 국선변호인을 선정해야 한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재판부에 뜻을 내맡기며 그동안의 정치생활을 소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_진우현 기자>

“그 초심을 담아, 변하지 않는 초심을 간직하겠다는 약속을 담아 이 책의 원고를 마무리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나의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에 대한 변하지 않는 약속이다”라고 끝맺었다.

총탄에 부모를 잃고 배신과 고독의 세월을 겪었지만 결국 정치 지도자로 우뚝 선 성공 서사. 그 기억은 온전히 그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엮어진 책 속의 과거는 우리가 알게 된 현재와 크게 어긋나고 있었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은 이 책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당한 수모와 홀대를 가슴 속에 새겼다. 그는 “정권 차원에서 아버지에 대한 매도가 계속됐다. 5공 시절 아버지 추도식을 공개적으로 치를 수 없었다”고 원망했다.

앞서 1998년에 펴낸 자전적 에세이 <결국 한 줌, 결국 한 점>에선 수형복을 입은 전 전 대통령이 재판에 출석할 때의 모습을 보고 “형을 언도받고 오랏줄에 묶여 초췌한 얼굴로 끌려갈 때 오만하던 눈빛은 어디로 갔을까”라며 묵혀왔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이 취임한 뒤 전 전 대통령에 대한 복수를 시작했다.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전두환 추징법(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 특별법)’으로 칼을 빼들었다. 불법 재산인 줄 알면서도 가족 등 제3자가 이를 취득한 경우 추징‧환수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법이다.

2013년 7월 16일 검찰과 국세청은 전 전 대통령 일가의 집과 사업장 10여 곳을 압수수색한 것을 시작으로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내내 강도 높은 강제 추징 작업이 이뤄졌다.

이러한 행보를 보인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재판을 거부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19일 출석일에도 ‘건강상의 이유로 출석할 수 없다’는 친필의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법원도 이날 ‘재판 보이콧’에 나선 박 전 대통령의 변호를 맡을 국선 변호인 선정 절차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의 재판은 형사소송법에서 규정하는 ‘필요적(필수적) 변론 사건’으로 변호인 없이는 재판할 수 없다.

형소법에 따라 피고인이 사형, 무기 또는 단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사건으로 기소된 때에는 반드시 변호인이 있어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은 18개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단 시 중형이 예상되는 사건이다.

법원은 관할구역 안에 사무소를 둔 변호사나 공익법무관, 사법연수생 중에서 국선변호인을 선정하게 된다. 국선변호인이 받는 기본 보수는 사건 당 40만원으로, 사건의 규모 등에 따라 최대 5배인 200만원까지 재판부가 증액할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단은 지난 16일 재판부의 추가 구속영장에 반발해 전원 사임계를 제출했다. 박 전 대통령도 이날 “재판부가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 향후 재판은 재판부 뜻에 맡기겠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생활을 소회했던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는 자서전을 작금의 ‘재판 보이콧’ 사태를 보면서 다시 읽으며 먹먹한 가슴을 쓸어낸다.

벼랑 끝에서 추락하고 있는 박근혜. 정말 ‘날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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