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김영욱 시사컬럼니스트] ‘시진핑(習近平) 신시대 사회주의 사상’이 중국 공산당 최고 규범인 당장(黨章·당헌)에 명기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24일(현지시간) 폐막한 제19차 전국대표대회(19차 당 대회)에서 자신의 통치이념이 당 헌법 성격의 ‘당장(黨章·당헌)’에 자신의 이름과 함께 명기되면서 마오쩌둥(毛澤東)과 같은 반열에 올라서게 됐다.

이에 덩샤오핑(登小平) 시대부터 중국 공산당의 통치시스템으로 자리 잡아온 집단지도체제가 약해지고 ‘시진핑 1인 체제’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을 당의 행동지침으로 확립한다’를 당장에 삽입하고 당 지도 사상 편입에 성공한 시 주석은 최측근을 2기 지도부에 대거 기용함으로써 1인 절대 권력 체제의 새로운 출발을 알린 것이다.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4일(현지시간) 폐막한 제19차 전국대표대회(19차 당 대회)에서 자신의 통치이념이 당 헌법 성격의 ‘당장(黨章·당헌)’에 자신의 이름과 함께 명기되면서 마오쩌둥(毛澤東)과 같은 반열에 올라서게 됐다. 이에 덩샤오핑(登小平) 시대부터 중국 공산당의 통치시스템으로 자리 잡아온 집단지도체제가 약해지고 ‘시진핑 1인 체제’가 강화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그래픽_황규성 디자이너>

행동지침이란 곧 당의 지도이념을 뜻한다. 여태까지의 당장에 열거된 지도이념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 3개 대표 중요 사상, 과학적 발전관이었다.

우선 시진핑이란 이름이 명기됐다는 데서 그의 위상은 두 전임자인 장쩌민(江澤民)과 후진타오(胡錦濤)를 뛰어넘었다.

당장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가는 영광을 누린 지도자는 이제까지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두 명 밖에 없었다.

더 나아가 덩샤오핑도 1997년 사망하고 나서야 ‘덩샤오핑 이론’이 당장에 포함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재임 중에 자신의 이름을 올린 시 주석은 마오쩌둥 이후 가장 강력한 권력을 쥐게 된 지도자가 됐다는 평가다. 시 주석은 이미 지난해 당내 특수한 지위를 뜻하는 ‘핵심’이라는 칭호도 얻었다.

당장 명기 시점도 의미심장하다. 덩샤오핑 이론이 당장에 삽입된 것은 1997년 덩이 숨진 뒤의 일이었다. 반면에 시 주석은 올해 64세의 현역으로 자신의 이름과 정치이념을 당장에 써넣는 데 성공했다.

중국 사회에서 공산당이 차지하는 위치로 볼 때 그 결과가 사회 전반에 대한 권위주의 확산과 철권통치로 드러나고 대외적으로는 패권주의로 흐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격대지정(隔代指定·차차기 후계자를 미리 지명하는 것) 원칙이 무너지고, 나아가 시 주석의 이름이 당장에 삽입된 것까지 감안해 시 주석이 2022년 제20차 공산당대회에서 물러나지 않고 3연임을 시도할 것이란 추측도 나오고 있다.

미국 CNN 방송은 ‘모두 시 주석의 사람들’이라는 머리기사에서 “후계자를 정하는 전통을 깨면서 시 주석은 집권 2기가 끝나는 2022년 이후에도 권력을 유지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 주석은 953년 6월 15일 베이징에서 태어났으며, 산시성에서 자랐다. 시진핑은 시중쉰(習仲勳)의 2남 2녀 중 셋째이다.

확고한 개혁주의자(개방파)였던 그의 아버지는 국무원 부총리를 역임하였으며 1962년에는 산시 성으로 좌천되었다. 시진핑은 문화대혁명 시기 고초를 겪는 부친을 따라 농촌 지방을 돌아다니며 자랐다.

토굴에서 들끓는 벼룩들과 싸우면서 9전 10기 끝에 공산당에 입당했고 절치부심 끝에 칭화대에 입학해 베이징으로 돌아왔다. 학부 졸업 후, 국무원 겅뱌오(耿飈) 부총리의 비서로 정치 생활을 시작했다.

1978년 11기 3중 전회에서 시중쉰은 광둥 성 제2서기로 복권되었고 그 후 광둥성 서기가 되었으며 덩샤오핑과 후야오방의 사상 해방과 경제 건설 실시에 큰 역할을 하였다.

시 주석은 주석으로써 국가 자본주의를 이끌고 있으며 특히 14억 중국인으로부터 90%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시 주석이 높은 지지를 받는 이유로는 역대 주석들과 달리 ‘시 아저씨’라는 별칭을 가질 정도로 시 주석은 친근한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또한 섭정 없이 시진핑 유일 체제로 중국인들의 신뢰를 얻었다.

특히 시 주석은 정권을 잡은 뒤 부패 호랑이 5인 제거를 통해 부패척결을 해 마오쩌둥을 연상케 했다. 그는 지난 5년간 반부패 숙청으로 권력의 힘을 쌓았다. 견제 세력이 시진핑의 눈치를 보느라 그의 독주를 막지 못했다는 얘기다.

거기에 2050년 미국을 능가하는 ‘세계 최강국 완성’을 이루자는 목표 설정도 국민적 공감을 얻었다. ‘선부(先富·누군가 먼저 부자가 되자)’에서 ‘공부(共富·함께 잘살자)’로 가자는 그의 정치이념에 중국인들은 찬사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공산주의 이론체계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모순을 새롭게 규정하고 그에 따라 목표와 실천 전략을 제시한 것이 시진핑 신시대 사상의 핵심이다.

우리는 현대판 중국의 ‘시 황제’ 등극의 모습을 지켜보며 ‘시진핑 사상’에 마냥 ‘강 건너 불구경’하면 안 된다.

‘떨쳐 일어나 해야 할 일을 하겠다(奮發有爲·분발유위)’는 그의 공세적 사상에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생존전략을 고민해야 할 때다.

시 주석은 지난주 당 대회에서 “중국에 손해가 되는 쓴 열매를 삼키도록 하려는 환상을 갖지 말라”고 일갈했는데 이는 안보·통상 등에서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는 선언이다.

시 주석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 “6·25는 정의로운 전쟁” 등 이라고 말한 것들도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중국의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보복은 한 사례일 뿐이다. 북핵을 둘러싼 대결 양상도 더욱 첨예해질 수 있다.

급변하는 안보지형 변화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 패권주의 대응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시진핑 절대 권력 출범’으로 한반도 미래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안개 속으로 빨려드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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