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김영욱 시사컬럼니스트] 1979년 10월 26일 밤 7시 40분 경 서울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安家)에서 두발의 총소리가 울렸다. 중앙정보부 김재규 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한 것이다.

박 대통령의 신임을 받던 김 부장은 이 무렵 정보업무 수행과정에서의 무능을 이유로 대통령으로부터 몇 차례 힐책을 받은 데다 보고나 건의가 차지철 경호실장에 의해 번번이 제동이 걸리는 등 불만이 폭발했다.

이날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 밀실에서 박 대통령과 만찬을 함께 할 기회가 생기자 암살하기로 결심, 계획을 실행했고 쿠데타를 일으킬 목적으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과 중앙정보부 김정섭 차장보 등을 궁정동 별관에 대기시켰다.

이 사건으로 ‘유신체제’는 몰락했다.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박 대통령은 18년간 권좌에 있으면서 1인 집권의 권위주의를 계속 강화해 나아갔다.

▲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이 오는 11월 중순께 재개될 전망이다. 하지만 재판부의 의지와 달리 박 전 대통령이 국선 변호인단과 함께 성실히 재판을 준비하고 응할지는 미지수로 남고 있다. <그래픽_황규성 디자이너>

특히 헌정 질서를 파괴하면서 1972년 10월에 등장한 유신체제는 억압적인 비민주적 정치를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1970년대 후반으로 넘어 오면서 그 동안의 정치·경제적 모순들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경제적으로는 중화학공업에 대한 무리한 투자로 상황이 악화되어 있었다. 중화학공업화의 추진은 중복, 과잉 투자로 인한 효율성 상실과 소비재 품목 품귀라는 이중의 문제를 야기했다.

이는 곧 인플레이션으로 연결되었는데, 1979년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한국경제의 고성장 전략 추진과정에서도 그 유례가 없는 18.3%에 달하였다.

고도성장으로 1인 장기집권의 정당성을 보상받으려 하였지만 독재와 인플레이션 등으로 인해 민심은 체제로부터 등을 돌렸다.

또한 수출주도형 공업화에 의한 고도성장 전략은 노동자와 농민의 상대적 희생을 전제로 한 것이었는데 경제 위기의 심화 과정에서 이들 계층의 소외감도 점차 심화됨으로써 그들의 생존권 요구도 거세어졌다.

1972년 유신체제 출범부터 긴급조치와 계엄, 재야인사의 구속 등이 계속되었으나 민주화의 방향을 거스를 수는 없었던 것이다. 특히 1978년과 1979년은 정치·경제적 모순이 정치적 위기로 연결된 시기였다.

이런 국내외 악재에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박 대통령의 서거 38주기 추도식이 26일 오전 경북 구미와 문경, 국립서울현충원 묘소 등에서 열렸다.

박정희대통령생가보존회가 구미 상모동 박 전 대통령 생가에서 개최한 이날 추도식에는 남유진 구미시장과 김익수 구미시의회 의장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현직에서 물러난 뒤 열린 첫 추도식이지만 예년과 비슷한 500여명이 모였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진 지난해에는 400여명, 박정희 사업이 진행되던 2015년에는 역대 가장 많은 1000여명, 2014년에는 500여명이 참석한 바 있다.

올해 추도식은 내달 14일 박 전 대통령의 100돌 탄생을 앞둬 더욱 엄숙한 분위기를 보였다.

박 전 대통령은 취임 첫 해인 2013년부터 임기 3년째 추도식에 불참했다. 박 전 대통령은 2016년 추도식에서도 오전 앙헬 구리아 OECD 사무총장과의 접견 일정으로 불참했다.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은 이날 국립현충원 추도식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앞으로 민족 역사의 법정에서는 무죄를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장은 “박 전 대통령이 헌법에 명시된 정당한 재판 받을 권리를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며 “(박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도약을 위한 제물로 시련을 겪고 있다. 목숨을 걸고 혁명을 한 아버지의 따님답게 명예를 잘 회복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친 서거일을 감옥 안에서 맞은 박 전 대통령의 심정은 찹찹하겠지만 지금이라도 성실히 재판에 임하는 게 도리라는 지적이 옳다.

법원도 박 전 대통령 재판 정상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우선 재판부는 25일 직권으로 국선변호인 5명을 선임했다. 박 대통령에 대한 추가 구속영장 발부에 반발하며 변호인단이 전원 사임한지 9일만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은 다음 달 중순께 재개될 전망이다. 하지만 재판부의 의지와 달리 박 전 대통령이 국선 변호인단과 함께 성실히 재판을 준비하고 응할지는 미지수다. 지난 16일 재판 도중 밝힌 작심 발언이 여전히 유효해 보이기 때문이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재임 중 부정한 청탁을 받거나 들어준 사실이 없다”며 “오직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을 할 것이라는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더는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며 재판을 포기한 듯 한 모습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재판부가 정해준 국선변호인단에는 접견마저 거부할 게 뻔하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소회는 참으로 착잡하다. 전직 대통령이 뇌물과 국정농단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것 만해도 역사에 남을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 그 재판마저 파행을 거듭하고, 심지어 정치적 이슈로 삼으려는 조짐마저 뚜렷이 보이고 있다.

10.26 사건도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지만 이번 박근혜 재판은 슬기롭게 마무리 돼야 한다. 심리를 지연시키고 재판을 거부한다고 적당히 벗어날 사안이 아니라는 얘기다.

무엇보다 박 전 대통령이 성실하게 재판에 임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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