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박경희 기자] 문 정부가 6일 첫 대북 독자 제재를 발표했다. 오늘과 내일 양일간 방한하는 트럼프 일정을 앞두고 발표한 대북 독자제재는 실효성보다는 한-미 공조를 보여주는 상징성이 강하다는 평가다.

6일 정부는 안보리 제재 대상 5개 금융 기관 관계자 18명을 독자제재 리스트에 추가했다. 정부 관계자는 “제재 대상자는 사전에 허가되지 않음 금융 거래 및 자산 거래가 금지된다”고 밝혔다. 이어 “해당 개인들은 해외에 소재하며 북한 은행의 대표로 활동하면서 북한의 대량 살상무기 개발을 위한 자금 조달에 관여”했다고 전했다.

정부가 발표한 독자 제재 명단에는 조선무역은행 관계자 8명을 비롯해 대성은행 4명, 통일 발전은행 3명, 일심국제은행 2명, 동방은행 1명이 포함됐다. 이들은 각 은행의 중국, 러시아, 리비아 지점 관련 북한인들로 지난 9월 미국 재무부가 블랙리스트에 올린 북한 은행 8곳의 해외지점 대표 26명의 명단에 포함된 인물들이다.

▲ 정부의 이번 대북 제재는 상징성이 강하다는 평가다. 그것은 우리 한국이 이미 대북제재안을 강력히 실행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한 지금의 정부로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방한을 기화로 굳건한 한미공조 그리고 북한과 중국을 자극하지 않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그래픽_황규성 디자이너>

◆ 2010년 천안함 사건으로 이미 강력한 대북 제재 시행 중

정부가 발표한 이번 대북 독자 제재는 실효성보다는 상징성에 무게를 뒀다는 평가다. 한국은 이미 강력한 대북 제재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2010년 3월 24일 발생한 천안함 침몰 사건을 북한이 저지른 소행으로 보고 5월 24일 대북 경제 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남북 교역 중단과 대북 신규 투자 금지, 대북 지원사업의 원칙적 보류, 국민의 방북 불허 등 북한과의 교류 및 지원을 중단한다는 내용이다. 또한 인도적 목적의 지원도 정부와 사전에 협의하지 않으면 지원할 수 없다는 내용과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 교역도 모두 중단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북한 선박의 남한 해역 운항 역시 전면 불허하면서 2010년 5.24 조치 이후 남북간 경제적 교류는 대부분 중단됐다.

여기에 박근혜 정부였던 지난해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사회문화교류까지도 대부분 중단되고, 같은 해 2월 개성공단마저 폐쇄됐다. 또한 지난해 12월에는 북한의 5차 핵실험에 대응해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 등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일가를 뺀 북쪽 주요 인사 대부분과 조선 노동당 등 핵심 기관을 제재 대상에 포함한 독자 제재안을 추가로 발표했다.

◆ 실질적인 거래 없는 북한에 추가 제재 필요한 이유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북한과는 이미 실질적인 거래가 끊겼다. 그럼에도 추가 대북 제재가 필요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국제사회가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 때문이다.

미국 행정부는 북한에서 금융, 어업, 광물 등의 활동을 하는 모든 개인 및 단체를 제재 대상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한 대북 독자 제재 행정 명령의 후속 조처로 9월 26일 북한의 8개 은행과 이들 은행에서 근무하는 26명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한 바 있다.

이때 국제 사회에서 당사국인 한국 정부는 왜 추가 제재를 하지 않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외교부・통일부는 “독자제재는 검토 중”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정부는 금강산관광에 이어 개성공단마저 가동이 중단된 상황에서 실효성 있는 독자제재를 조치로 내놓을 게 마땅치 않다는 판단에 따라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했던 것이다.

이렇게 더 이상 제재할 카드가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의 비핵화와 평화체계 구축을 동시에 추구하는 문재인 정부로서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안을 앞두고 한미 공조를 굳건히 하면서도 북한과 중국을 지나치게 자극하지 않는 방안을 고심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이번에 지정한 독자 제재 대상은 미국이 발표한 개인 제재 대상 26명 가운데 18명이다. 또 이 개인이 속한 은행들은 이미 유엔 안보리의 제재 대상에 포함된 기관들이다. 동방은행은 결의 2087호에, 대성은행・통일발전은행・일심국제은행은 2321호에, 조선무역은행은 2371호에 따른 기관 제재 대상이다. 이미 국제사회의 제재 대상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추가로 발표한 것은 실효성이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은 더 강력한 대북 제재를 요구하지만 비핵화뿐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 체제 구축까지도 바라보는 정부로서는 북한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을 수 없다”며 “이번 제재는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면서도 동시에 북한에 여지를 남겨 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앞선 정부가 지난해 12월에 발표한 대북 독자제재 명단에 북한의 조선노동당과 국무위원회 등을 모두 포함시켰을 당시, 일각에서는 정부가 국제사회 공조를 위해 남북관계의 특수성까지 배제한다면 향후 국면 전환 시 스스로 발목을 잡게 될 수도 있다는 비판이 있었다. 문 정부는 이런 부분까지도 고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평창 동계 올림픽의 북한 참가 등 남북관계 개선까지도 고려해야 하는 정부로서는 강력한 대북 압박이 될 북한 기관이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 여동생 김여정 당 부부장을 제재 리스트에 올리지 않으면서 북한 자극을 최소화 한 것이다.

잇따른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북한의 핵도발은 잠시 멈춘 상태다. 일각에서는 국제사회의 제재 압박에 맞서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적극적인 경제 행보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방한에 맞춰 도발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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