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_뉴스워커 그래픽1팀
그래픽_뉴스워커 그래픽1팀

쉽게 내던지는 민원인의 폭언에 콜센터 상담사는 골병든다

인바운드 콜센터 상담사는 전화를 매개로 민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비대면 진행이기에 편의성이 있는 반면, 얼굴이 보이지 않아 민원인의 욕설 및 폭언, 분노, 적대감 등이 더 쉽게 표현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콜센터 상담사들은 자신의 실제 감정을 억누르고, 조직이나 민원인이 요구하는 감정을 표현하는 감정노동을 수행한다. 콜센터 상담사의 심리적 고충은 여기서 발생한다.

지난 28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 1600여명 중 조합원 796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8월 진행한 노동건강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우울증 평가 척도(PHQ-2)에서 응답자 85%가 총 6점 중 2점 이상을 받아 우울증 고위험군으로 분류됐다. 장시간 강도 높은 감정노동이 수반되는 업무 영향으로 보인다.

또한 노동자들은 고객에 무리한 요구(93%), 인격 무시 발언(87.2%), 욕설(81%), 성희롱성 발언(14.4%)을 들었다고 응답했다. 심리적 고통에 이어 육체적 고통도 호소했는데, 99.4%가 어깨, 허리, 목 등 한 부위 이상에서 근골격계 통증을 느꼈다고 응답했다.

한편, 다수 민원을 처리하는 고용노동부 1350 고객상담센터에 따르면 최근 3년 간 민원인의 성희롱 및 욕설, 폭언, 협박성 발언 등 발생 건수는 20183601, 20194590, 20202872건으로 집계됐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에 따라 감정노동자 보호가 강화됐지만, 그들은 여전히 심리적·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에 <뉴스워커> 취재진은 폭언 등 악성 민원에 노출된 콜센터 상담사의 업무상황을 조명했다.


콜센터 상담사에 욕설, 폭언감정노동자는 안으로 곪는다


콜센터 상담사를 향한 민원인의 폭언 사례는 너무나 쉽게, 빈번히 이뤄졌다.

지난 201832일 부산지법 동부지원이 악성 민원인에 징역 16개월형을 선고한 사례가 있었다. 공갈미수·업무방해·강요·상해·폭행치상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것.

2017820일 부산도시가스 콜센터인 SK E&S에 전화한 민원인은 가스 누출 사고가 발생했다며 항의하던 중 폭언을 시작했다. 이후 닷새 동안 이 민원인은 총 198회 전화를 걸어 너희 다 죽이겠다며 상담사, 팀장, 실장, 센터장 등 4명에 욕설 및 폭언을 했다.

민원인의 끈질긴 욕설 항의에 센터장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아 졸도하기도 했다. 민원인은 허위사실을 내세워 직원을 협박해 보상금을 받아 내려다 미수에 그쳤고, 콜센터로 찾아가 직원 2명을 폭행하기도 했다.

지난 3월엔 고용노동부 1350 고객상담센터에 전화한 민원인이 상담사에 욕설 및 폭언을 수차례 한 사례도 있었다. 임금 체불 신고 방법을 문의하던 민원인에 상담사가 콜센터는 민원 접수를 받지 않는다고 안내하자 민원인이 폭언으로 응수한 것.

이에 지난 624일 울산 혁신도시에 본사를 둔 고용노동부 고객상담센터(소장 양영봉)는 상담사에 폭언한 민원인에 경범죄 처벌법 위반으로 경찰에 형사 고발했다고 밝힌 바 있다.

고용노동부 고객상담센터가 성희롱 및 욕설, 폭언, 협박성 발언을 한 민원인을 고발한 건은 이번이 5번째 사례로, 이 고객상담센터는 2014년부터 특별민원 대응방안을 마련, 민원인의 폭언 등으로 피해를 입은 직원을 대신해 기관 명의로 형사 고발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512일 한 방송 매체에 경력 20년 차 114안내 콜센터 상담사가 출연해 업무 노고를 토로하기도 했다.

신입 당시 모 코미디언의 114 개그가 유행하던 시기였는데, 친절한 어투로 안내했더니 민원인이 역겹다고 해 신입사원의 열정이 가라앉았다며, 지금 생각해도 울컥하는 일화를 전했다.

특히 폭언이나 성희롱성 발언을 들었을 때 일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며, 모르는 사람에게 욕설을 듣고, 상처를 받는 감정노동의 애로사항을 털어놨다.

콜센터 상담사를 향한 악성 민원인의 폭언 사례는 높은 발생 빈도만큼 사실상 공론화나 법적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기관 차원에서 악성 민원인으로부터 직원을 보호하는 사례도 있지만, 직원 혼자 감내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감정노동자들의 실질적 보호가 절실하다.


현직 인바운드 콜센터 상담사의


서울 성북구에 거주하는 콜센터 상담사 30A씨는 유통업체에서 상품 유무 및 배송 진행사항 등을 소비자에 안내하는 일을 하고 있다. A씨는 자신의 직무가 소비자 안내 쪽이기 때문에 민원인의 고충 상담만큼의 어려움은 없으나, 악성 고객 사례를 여러 차례 경험했다고 토로했다.

A씨는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욕설을 하는 고객도 있었다면서 고객의 요구사항이 적정 수준 이상이거나, 상담 중 고객이 욕설을 하는 경우는 응대가 어렵기도 하고, 마음에 상처도 받는다고 말했다.

특히 환불 완료 뒤 시간적 손해, 정신적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고객 사례도 있었다고 A씨는 털어놨다. 회사 과실로 판명됐거나, 고객의 요구사항에 합당한 사유가 있을 시 마련된 보상 정책에 따라 진행이 되지만, 그 이상의 요구를 하면 무척 난처하다고 덧붙였다. 이땐 어쩔 수 없이 상급자에 해당 건이 인계되는 사항.

이어 A씨는 전화 응대 중에 고객이 욕설을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내규 방침대로 두세차례 경고 후 그래도 멈추지 않으면 전화를 끊는다면서 요즘엔 통화 연결 시 나오는 감성멘트로 욕설 건이 줄긴 했지만, 그래도 종종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온라인 커뮤니티 등지에 콜센터 상담사를 집요하게 괴롭혀 보상을 얻어 낸 경험을 무용담처럼 게시한 글을 보면 콜센터 상담사로서 마음이 괴롭다고 A씨는 토로했다.

콜센터 업무는 담당 직무와 별개로 민원인의 욕설, 폭언으로 감정노동이 수반되는 직군이기도 하다. 지난 20194월엔 행정안전부가 민원 콜센터 운영 매뉴얼을 발표했다. 내용에 따르면 폭언 등 특이민원 발생 시 1차 경고, 2ARS 전환, 3차 통화 종료 단계로 진행하게 된다.

또한 같은 해 10월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고객응대 근로자 보호 조치가 전화상 안내되고 있다. 이러한 방침들은 콜센터 상담사의 원활한 상담 업무 수행을 지원하기 위한 사항이다.

하지만 결국 폭언 문제는 민원인 개인의 양심이나 도덕성에 따른 문제이기도 하다. 순간 발생하는 언어폭력은 주워 담을 수 없고, 이미 듣는 이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감정노동자 보호제도 강화, 실제 법적 처벌 등의 조처도 필요하지만, 인식 개선이 전제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콜센터 상담사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실제로 만날 일이 없다고 생각해 함부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라는 마음으로 존중하는 인식이 중요하다.

저작권자 © 뉴스워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