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김영욱 시사컬럼니스트] 20년 전 1997년 11월 21일 밤 10시. 임창열 전 부총리(현 킨텍스 대표)는 “파산 위기에 몰린 한국을 살리기 위해 IMF(국제통화기금)에 수백억 달러의 구제 금융을 신청한다”는 담화문을 상기된 목소리로 읽어 내려갔다.

“IMF가 과감하고 강도 높은 개혁 조치를 주문했고 정부가 이를 시행할 경우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생각한다”는 담화문은 결국 우리 경제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제2위 경술국치’ 담화문이라고 했다.

그 대가는 혹독했다. 긴축 재정 정책으로 경제 활동이 위축되고 성장률 하락으로 실업이 늘어나게 됐다. 국민들의 난데없는 고통과 부담은 날로 늘어났다.

▲ 그래픽_황규성 디자이너

한보와 진로, 해태, 기아 등에 이어 대우와 쌍용, 동아 등 그룹이 붕괴되는 연쇄 부도가 소용돌이쳤다. 30대 재벌 중 19개가 퇴출됐다. 26개 은행 중 16개도 역사 속에 묻혔다. 실직자는 불과 1년 사이에 30% 증가했고 노숙자는 넘쳐났다. IMF가 요구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긴축재정의 산물이다.

주가지수는 651.22에서 376.31로 반 토막이 났고 달러 환율은 달러당 844.20원에서 1415.20원으로 치솟았다. 물가는 뛰었고, 은행 이자율은 20%를 넘나들었다.

그나마 남아있는 사람들은 월급이 깎이고 무급 휴직이 돌아가며 시행됐다. 이를 극복해 보겠다고 사람들은 장롱 속에 넣어두었던 애들 돌 반지에 결혼반지, 시어머니가 남겨주신 패물까지 들고 나와 금모으기에 나섰다. 100년 전 국채보상운동 때를 연상시켰다.

결국 2001년 8월, 195억 달러를 전액 상환한 뒤 ‘IMF 사태’에서 조기 졸업했다. 정부 무능과 기업 탐욕이 국민에게 얼마나 깊고 넓은 상처를 주는지를 깨닫게 한 재앙이었다.

IMF 외환위기 20년, 무엇이 달라졌을까.

국민의 절반 이상(57.4%)이 근대화 이후 한국 경제의 최대 악재로 ‘97년 IMF 환란’을 꼽았다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14일 대국민 인식조사 결과 발표내용은 그리 놀라울 게 없다.

응답자의 39.7%가 ‘본인, 부모, 형제 등의 실직 및 부도를 경험’했고, 64.4%가 ‘경제위기에 따른 심리적 위축’을 느꼈으니 전쟁이 아니라면 이보다 심한 위기는 없다.

외환위기의 원인을 ‘외환보유고 관리, 부실은행 감독 실패 등 정책적 요인(36.6%)’, ‘정경유착의 경제구조 등 시스템적 요인(32.8%)’으로 보는 것도 올바른 평가다.

한때 70억 달러까지 줄었던 외환보유액은 지난달 현재 3844억 달러로 늘었다. 주가지수인 코스피는 2500선을 넘어 3000포인트를 기대하고 있다. 국가 신용등급은 투기 등급 수준인 B+에서 AA가 됐다. 일본보다도 높다. 경상수지는 67개월째 흑자 행진이다.

그런데도 국민 대부분은 IMF로 인해 ‘일자리 문제 및 소득격차’ 등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사회적 문제를 심화시켰다고 본다.

실제로 중소기업중앙회의 조사 결과 중소기업인 10명 중 7명은 ‘실패한 기업이 재기할 수 있는 재도전 환경이 20년 전 외환위기 시절보다 나아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98년에도 55만명에 불과했던 실업자 수는 지금 자그마치 ‘100만명’이다. 청년실업도 최악이다. 청년 5명 가운데 1명이 ‘백수’ 신세다. 그건 ‘결혼 기피’의 원인이 되고 ‘저출산’에 영향을 준다.

포화상태인 자영업자도 위기다. 1997년 경제성장률은 떨어졌다 해도 5.9%였다. 지금은 3%를 달성했다고 좋아해야 할 판이다. 게다가 한국은 상위 10%가 소득의 절반을, 상위 1%가 전국 땅의 반을 차지한 나라가 됐다.

지난 20년간 가계 가처분소득은 3배 가까이밖에 안 늘었지만, 금융부채는 6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원화가치·금리·유가가 뛰는 ‘3고(高)’만 출현하면 경제는 휘청대기 일쑤다.

외환위기의 근원인 한국 사회의 구조적 요인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조사에서는 지금 국가적으로 중요한 과제로는 ‘일자리 창출 및 고용안정성 강화(31.1%)’, ‘부정부패 척결을 통한 신뢰 구축(32.7%)’, ‘저출산 및 고령화 대책 마련(32.5%)’ 이라고 답했다.

한국 경제는 지금 혁신성장을 가로막는 규제 덩어리와 노동 생산성 저하의 주범인 강성 노조, 무능·무책임 정치 등에 발목 잡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당시 IMF 담화문을 발표한 임창열 전 부총리는 외환위기 초기 진화(鎭火)를 맡았던 인물이다. 국가 부도 위기이던 1997년 11월 통상산업부장관에서 부총리로 발탁돼 다음 해인 1998년 3월까지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종합 계획을 세웠다. 그는 요즘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 있다.

구제금융 협상 과정과 IMF 체제에서 경험했던 국제 사회의 냉대와 경제 주권 상실 상태를 한국 경제가 또다시 겪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국제사회에서 약자(弱者)가 되면 숨이 끊어질 때까지 살이 뜯기고 피를 빨린다”며 “다시는 약자가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외환위기 고통을 너무 빨리 잊어버렸다”고도 했다.

환란 20주년에 귀담아들어야할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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