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박경희 기자] 유럽연합(EU)이 지난 5일(현지시간) 재정경제이사회에서 ‘조세비협조적 지역’으로 우리나라를 포함한 17개 국가(자치령 포함)를 지정했다. 소위 ‘조세회피처 블랙리스트’라고 불리는 이번 명단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는 우리나라가 유일하게 포함됐다. 평가 과정에 대한 불공정 등 논란이 일고 있지만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국격이 훼손되기 때문에 여러 후폭풍이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오늘(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제13차 산업경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우리 입장에서는 상당히 논쟁할 부분이 많고 이미 협의에도 들어갔다”며 “빠른 시간내 해결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 그래픽_황규성 디자이너

◆ 한국은 왜 조세 비협조적 지역이 됐나

EU는 지난 5일(현지시간) 브뤼셀에서 28개 회원국 재무장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재정경제이사이사회를 열고 ‘조세 관련 비협조적 지역’ 17개국 명단을 발표했다. 한국을 비롯해 미국령 사모나, 바레인, 바베이도스, 그레나다, 괌, 마카오, 마샬제도, 몽골, 나미비아, 팔라우, 파나마, 세인트루시아, 사모아, 트리니다드 앤토바고, 튀니지, 아랍에미리트(UAE) 등이다. 그런데 EU 회원국 및 EU 자치령 지역을 제외하면서 공정성에 논란이 일고 있다. 명단에 포함된 국가들은 물론 같은 유럽지역인 영국에서도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 가디언지는 조세회피처 블랙리스트를 ‘속임수(whitewash)’로 규정했으며 파나마, 마카오, 몽골, 튀니지, 나미비아 등의 국가에서 EU의 결정을 독단적이며 편파적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홍성훈 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은 EU의 이러한 결정에 대해 “파나마와 마샬군도 등은 전통적인 조세회피처에 가깝긴 한데, 케이맨제도나 버진아일랜드가 명단에 없고, 생각지 못한 몽골이나 한국이 들어갔다”고 말했다.

EU는 지난해 말 조세 관련 비협조적 지역으로 92개 후보국을 추렸다. 해당 국가들의 반발하자 OECD가 발표하는 유해조세제도 평가 기준을 수용하기로 하면서 OECD는 지난 10월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EU는 별도 기준으로 평가하겠다고 번복하고, 한국 등에 비협조적 지역 선정을 통보한 후 한 달 만에 확정했다.

즉, EU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9월 세무전문가로 구성된 기구를 운영하며 1600개 이상의 지표를 통해 전세계 213개국을 사전 평가했다. 지난해 12월~올 1월에는 213개국 조세체계를 심층 평가한 뒤 이 가운데 불투명하고 불공정한 조세제도를 운영 중인 것으로 자체 판단한 92개국을 선별해 72개국에 개선요구사항을 전달했다.

이 때 우리 측에도 개선요구사항을 전달한 것이다. 외국인투자지원 지역 법인세 감면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통보를 했고, 2018년까지 폐지할 것을 요청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때 조세회피처로 지정되기 전에 막았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러나 일각에선 올해 초 대통령 탄핵에 따른 국정공백 영향으로 적극적인 외교력을 펼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정부는 당시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EU의 무리한 요구에 응할 수 없었다는 반응이다. 정부 관계자는 “EU가 우리의 외투지역 세금 감면을 문제 삼았는데, 문제가 있다면 뭐가 문제인지 토론을 통해 문제를 찾아내고 개선할 게 있는지 살펴야 할 일이지, 국제적으로 유해하지 않다고 한 우리 제도에 대해 폐지를 전제로 뭘 약속한다는 것은 국익에 도움되지 않는 행동이라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 ‘외국인투자지원 지역 법인세 감면제도’ 문제가 되나?

EU는 지난 5일(현시시간) 한국의 경제자유구역(경제특구) 등의 외국인 투자에 대한 세제지원제도가 유해조세제도라고 밝혔다. 외국인 기업에 조세감면특혜를 줬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조세특례제한법’으로 ‘외국인투자 등에 대한 조세특례’ 조항(제121의2)이 문제다. 이 법은 경제특구에 투자한 외국인기업에 최대 7년 간 일정 비율로 소득세·법인세를 감면한다. 일정 금액 이상 투자 시 법인세를 5년간 100%, 나머지 2년간 50%를 면제한다.

그러나 이는 조세회피처로 지정되지 않은 싱가포르, 두바이 등 다른 국가보다 더 나은 혜택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연구원 홍진기 선임연구위원이 조사한 ‘해외 경제특구 인센티브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두바이는 법인세, 소득세, 수입관세를 아예 부과하지 않고, 싱가포르는 최고 15년간 법인세, 소득세, 면제가 가능하다. 법인세율은 18%로 한국보다 낮으며, 주류, 자동차, 담배, 석유제품 외에는 수입관세가 붙지 않는다. 홍콩의 경우는 법인세율은 16.5%로 싱가포르보다 더 낮은데다 관세는 0%다. 이렇게 싱가포르, 홍콩, 두바이 조세 제도가 한국의 제도와 비교해 외국인 투자기업에 대한 관세나 법인세 등의 조세감면 혜택이 크고 기간도 긴데도 이들 나라는 조세관련 비협조 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왜 한국은 지정됐을까. 일각에선 최근 한국에 대한 EU발 투자수요가 몰리면서 자국 경제를 보호하려는 EU 국가들의 의향이 명단 결정에 반영됐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한국에 대한 EU발 투자규모는 2012년 27억달러에서 지난해 74억달러로 증가했다. 이는 국내 전체 외투의 25%에 달한다. 또한 이번 EU결정은 이탈리아 출신의 의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탈리아는 2002년에 한국 등 71곳을 ‘조세특혜국가’로 지정한 바 있다. 특히 한국을 2002년부터 2010년까지 8년 동안 조세특례국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한국 수출기업들을 차별해 왔다. 따라서 이번 EU의 결정이 자국보호 차원이라는 견해에 설득력을 더해주고 있다.

EU가 한국을 조세 관련 비협조국으로 지정하자 정부는 “평가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조세제도를 설명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등 절차적 적정성이 결여됐다. 조세주권의 침해우려도 있다”며 공식 입장을 설명하는 공문을 EU에 보내는 한편 기재부 담당 국장도 EU 본부로 급파했다.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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