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박경희 기자] 렉슨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12일(현지시간) 북한과 아무런 전제조건없이 첫 대화에 나설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북한과의 대화 조건으로 북한의 비핵화의지 확인 또는 핵미사일 도발 중단 등을 제시해 왔던 것을 생각해보면 파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다음날인 13일 백악관은 북한의 도발을 중단하고 비핵화를 위한 진정성 있는 행동을 보여야 대화할 수 있다는 기존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는 입장을 내놓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고위급 인사인 틸러슨 장관이 직접 언급했다는 측면에서 한반도 정세 변화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하는 대목이다.

◆ 우선 북과의 대화 ‘물꼬부터 터야’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미국의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과 국제교류재단이 공동 주최한 ‘환태평양 시대의 한미 파트너십 재구상’ 토론회 질의응답 순서에서 북한과 전제조건 없이 기꺼이 첫만남을 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무기개발) 프로그램들을 포기해야만 대화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현실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어서 “여러분이 원한다면 우리는 북과의 첫만남에서 날씨 얘기를 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즉 비핵화를 떠나 우선 대화의 물꼬부터 열어야 한다는 생각인 것이다.

▲ 그래픽_황규성 디자이너

하지만 틸러슨 장관은 “첫폭탄이 떨어질 때까지 외교적 노력들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북한이 일정기간 핵 실험이나 미사일 추가 도발을 중단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다만 그동안 대화 시작을 위해서는 북한이 ‘60일 이상 추가 도발 중단’이란 조건을 걸었다면 이번에는 북한이 ‘또 다른 실험을 한다면 대화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추가 도발 중단을 대화의 시작이 아닌 대화를 계속하기 위한 조건으로 제시한 것이다.

◆ 대화, 아니면 마지막 경고

털러슨의 발언과 관련해 공식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이 전해지지 않고 있지만, 백악관의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는 북한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고 전했다. 한반도 비핵화를 목표로 하는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놨지만 북한은 먼저 어떠한 추가 도발도 자제하고 비핵화를 향한 진정성 있고 의미 있는 행동을 취해야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의 최근 미사일 시험을 고려하면 분명히 지금은 (대화할) 시간이 아니며, 정부는 북한 정권이 근본적으로 태도를 개선할 때까지 북한과의 협상은 기다려야 한다고도 말했다. 또 영국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헤더 노어트 국무부 대변인은 “지금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시험을 멈출 의향을 보이지 않으므로 대화가 이뤄질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 틸러슨 장관, 백악관과 상의없이 독단적 행동?

틸러슨 장관은 지난달 10일(현지시간) “미국과 북한은 메시지가 오가는 2~3개 채널을 가동하고 있으며, 서로가 결국 ‘첫 대화를 할 때가 됐다’고 할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틸러슨 장관은 다만 북한과의 ‘첫 대화’ 의미에 대해 “협상 개시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를 보도한 블룸버그 통신은 틸러슨 발언에 대해 북핵 문제를 놓고 북미가 공식 협상에 앞서 전초적 성격의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풀이했다. 이때도 틸러슨 장관은 북·미 대화의 전제조건인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중단과 관련해서 특정한 기간이 있는 것은 아니라며 ‘60일 도발 중단 시 대화 재개’ 주장을 일축했다.

틸러슨의 발언 하루 만에 트럼프 대통령이 “꼬마 리틀맨(김정은)과의 협상 노력은 시간 낭비”라고 공개면박을 줬고, 이 사건 이후 틸러슨 경질설이 제기 되기도 했다.

비록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견해를 내놓았고, 경질설까지 흘러나오기는 했어도 틸러슨 장관의 발언에는 그때나 지금이나 일관성이 있다.

따라서 틸러슨의 발언은 북·미 관계에 모종의 변화가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최근 방북한 제프리 펠트먼 유엔 사무차장이 조율을 마치고 왔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제프리 펠트먼 사무차장은 나흘 간의 일정으로 북한을 방문한 바 있다. 방문을 마친 제프리 펠트먼 사무차장은 뉴욕 기자회견에서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는 건 북한의 문을 살짝 열어놓고 왔다는 것이며 이제 시작”이라고 밝혔다.

틸러슨의 발언대로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를 위한 시도는 끊임없이 해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독단 행동 경우 北에 대한 마지막 경고 일 수 있어

만약 백악관과 상의없이 틸러슨 장관이 단독으로 한 발언이라면, 이는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에게 보내는 마지막 경고일 수 있다.

틸러슨 장관은 12일(현지시간) “북한에 첫 폭탄이 떨어질 때까지 외교적 노력을 계속 하겠다. 대북 선제타격은 나의 실패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국무부 직원들에게도 “대북 외교와 제재가 실패하고 미군이 선제공격하지 않을 수 없으면 그것은 나의 개인적인 실패”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발언의 맥락을 살펴볼 때 ‘대화 제안’을 김정은 위원장이 거절할 경우 대북 선제타격을 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날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도 “바로 지금이 (북한과의 무력 출동을 피할 마지막 기회”라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틸러슨의 ‘북과 조건없는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한 말은 북한을 향한 최후통첩일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반응에 따라 한반도 정세의 향방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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