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 AG1팀<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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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지난 17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고 있다. 공개 첫날 넷플릭스 세계 4위 콘텐츠 자리를 차지한 것은 물론이고 이틀 뒤인 19일에는 <스위트홈> 이후 넷플릭스 세계 3위에 자리한 두 번째 한국 드라마가 됐다. 그 외에도 한국 드라마 최초로 미국 넷플릭스 1위를 차지하고, <종이의 집>을 넘어 세계 1위를 기록하는 등 연일 기록을 세우고 있다.

한국에서는 앞서 <스카이캐슬>, <펜트하우스> 등 드라마가 권력을 목적으로 하는 가학성을 드러내며 인기를 끌었다. 그런 트렌드가 장르적 관점으로 자리 잡은 곳에 <오징어 게임>이 도착했다고 할 수 있는데, 넷플릭스는 처음부터 지상파의 범죄 드라마와는 결이 다른 가학적 장르를 시도하며 스위트홈의 성공 전철을 따랐기 때문이다.


휴대전화 번호


<오징어 게임> 1화에는 특정 전화번호가 등장한다. 게임 참가자를 모집하는 남성이 다른 참가자들에게 전화번호를 건네는 장면인데, 그 번호 여덟 자리를 클로즈업한 화면은 이미 스크린 캡처로 인터넷 여기저기에 돌아다니고 있다.

문제는 이 여덟 자리만 가지고도 드라마와는 전혀 관련 없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 수 있다는 점이다. 해당 번호의 사용자는 하루 약 4천여 통의 문자 또는 전화에 시달리게 되었다고 호소했는데, 피해자 A씨는 해당 번호가 10년 넘도록, 사업을 위해 써온 번호이기 때문에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답답해했다.

피해자는 한 명이 아니었다. 흔들리지 않도록 찍힌 사진이 아닌 만큼 여덟 자리 번호에도 혼동의 여지가 있었다. A씨와 유사한 전화번호를 가진, 적지 않은 사람이 피해자 대열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그중에는 A씨처럼 사업상 전화번호를 바꿀 수 없는 사람, 취업을 위해 이력서에 전화번호를 기재한 사람 등 피해를 그대로 견딜 수밖에 없는 이가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가 커지자 넷플릭스 측은 23일 공식 입장을 냈다. 문제를 인지하고 있으며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그러나 원만한 해결은 쉽지 않아 보인다. 피해자 A씨는 드라마 제작사(싸이런픽쳐스) 측에서 번호를 지우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답했다며, 언론 인터뷰를 통해 처음에는 100만 원 정도의 피해 보상을 얘기하다가 지난 24500만 원에 합의를 보자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비판


한편 작중 등장하는 계좌번호 역시 실제 주인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계좌번호의 주인은 본인의 계좌로 1원을 입금한 뒤 화면을 캡처, 인터넷 커뮤니티에 인증했다. 이에 네티즌들은 계좌번호는 그래도 스태프 중 한 명 명의겠지라면서도 악용을 우려했다. ‘전화번호나 계좌번호 모자이크가 어려운 일인가라며 부정적인 시선을 보이는 글도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번 사건을 미국의 경우와 비교하는 사례도 있었다. 미국에서는 한 대형 통신사가 촬영용 번호 100개를 만들어 활용하고 있는데, <오징어 게임> 제작사는 촬영용 번호를 사용하지 않은 것을 넘어 실제로 존재하는 번호를 피하지도 않았으며 모자이크 처리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한 네티즌은 제작사의 백만 원 배상소식을 듣고 백만 원으로는 안 될 것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을 올렸다. 그를 통해 애초에 회사나 감독 명의로 가장 저렴한 기본요금의 알뜰폰 등을 개통하고 그 번호를 사용했다면 십 년 정도 사용했어도 몇십만 원으로 충분했으리라 전했다. 또한, 이번 사건이 많은 제작사에 윤리 의식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인기와 책임


국내에서의 논란과는 별개로 <오징어 게임>의 세계적 인기는 이어지고 있다. 데스게임의 형식을 빌려 사회 구조를 비판해 그토록 많은 사람의 인기를 얻은 드라마가 국내에서는 힘없는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는 것은 어쩐지 부끄러운 일이다. 얻은 인기만큼의 책임도 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앞선 네티즌의 의견처럼, 이번 사건은 국내 많은 제작사에 윤리 의식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또한, <오징어 게임>의 번호 노출 피해자 모두가 침해에 대해 적절한 배상을 받을 수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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