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무역 환경 속 철강업계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협의 필요

[뉴스워커_염정민 기자] 1973년 6월 9일 오전, 포항제철소 제 1고로(용광로)에서는 한국 산업화의 시작을 알리는 첫 쇳물이 위풍당당하게 흘러나왔다. 일제 수탈과 한국전쟁 후유증으로 인해 산업 기반이 전혀 없었던 한국에서의 철강 생산은 도박에 가깝다는 국제사회의 우려를 깨끗하게 종식시킨 이 날은 한국 산업화 역사상 잊을 수 없는 날로 회자되곤 한다.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난 한국은 철강 뿐 아니라 최첨단 산업 분야에서도 여러 국가들과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한국은 미국, 일본과 같은 선진국 뿐 아니라 매섭게 기술 격차를 좁히고 있는 중국과 같은 후발주자들과도 힘겨운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가격 경쟁력을 기반으로 한 제조업은 경쟁력이 없어질 것이 분명하니 지식을 기반으로 한 IT 산업으로 국가 중심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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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_황규성 디자이너

그들의 주장은 미국의 “러스트 벨트(Rust Belt, 한때 제조업 단지였지만 지금은 불황으로 폐쇄된 공업단지)”처럼 한국의 제조업도 중국에 추월당해서 결국 쇠락의 길로 접어들 것이라는 논거에 근거하고 있다.

그런 주장에 철강업계 관계자들은 한마디로 “아직은 아니다(Not Yet)”이다.

지난 12월 5일 “제 54회 무역의 날” 행사에서는 반도체를 포함한 올해 한국 수출의 일익을 담당했던 기업들을 치하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이번 행사는 2011년 이후 6년 만에 최대증가율을 기록하여 역대급 수출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 자리였기에 더욱 뜻 깊은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40여 년 전에 포항에서 한국 산업화의 시작을 알렸던 철강 산업도 여전히 건재하고 있음을 입증했다.

한국 철강협회의 발표에 의하면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누적 수출량은 2832만 ton으로 전년도 동기 대비 3,8% 증가하였고, 누적 수출액은 285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4% 정도가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성과로 인해 철강 금속 관련 40개 업체가 “수출의 탑”상을 수상하기도 하여 철강업계로서는 경사스러운 날을 맞이했다.

◆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중국 발 공급과잉

중국 정부는 대기 오염 개선을 위해 지난 11월부터 베이징과 톈진 등 28개 도시에서 철강 생산을 줄이고 있는데, 이번 감산 조치는 내년 3월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중국의 고로(용광로) 가동률이 63%정도 수준이고, 허베이성의 경우 50%대까지 하락하였기 때문에 중국의 철강 감산 규모는 상당한 수준으로 알려졌다.

이런 중국의 감산 결과는 그대로 철강 시장에 반영되어 철강의 판매 단가를 올리고 있다. 이는 중국의 감산으로 인해 철강 공급은 줄었지만, 국제 철강 수요는 줄지 않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스틸벤치마커”에 의하면 12월 11일 기준으로 미국 열연강판은 ton당 690달러를 기록하여 2015년 12월에 기록한 ton당 412달러보다 무려 278달러가 올랐다. 중국 열연강판도 2015년 12월과 비교하면 ton당 325달러가 올라 ton당 556달러를 기록하였다. 일단 중국의 감산으로 국제 철강 가격은 수년간 보여 왔던 출혈 경쟁에서 벗어나고 있는 추세로 보인다.

하지만 최근 열린 “글로벌철강포럼”에서 중국 대표가 “중국은 이미 2016년부터 1억 ton이상을 감산했기 때문에 중국만 희생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여 언제든지 철강 공급량을 늘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하기도 했기 때문에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즉 일단은 중국의 감산으로 인해 철강 가격이 오르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출혈 경쟁이 다시 점화될 수 있는 가능성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 철강업계의 산업용 전기 요금 인상 재고 요청

지난 12월 14일 박성택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산업정책관은 “산업용 요금제를 경부하 요금 중심으로 차등 조정해 전력소비 효율화를 유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경부하대 요금은 산업용 심야 요금으로 최대 할인을 적용하면 1KWh당 52.8원을 적용받을 수 있기 때문에 2016년 산업용 기준단가가 107.11원을 고려하면 거의 50% 수준을 적용받을 수 있다. 이에 정부는 저렴한 심야 요금의 할인율을 조정하여 산업용 전기 요금을 현실화시킨다는 계획을 추진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정부방침에 대해서 철강업계는 재고를 요청하고 있다.

한전의 자료에 의하면 2015년을 기준으로 전력을 가장 많이 사용한 기업은 현대제철로 1만2025GWh를, 3위는 포스코로 9391GWh를 사용했고, 요금 기준으로는 현대제철이 1조 1605억 원을, 포스코는 8267억 원을 전기요금으로 납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전기 사용량이 많은 철강업계는 산업용 전기 요금이 인상된다면 그로 인한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심야요금의 할인율 조정이 큰 폭으로 이루어질 경우에는 기업에 따라 수천억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로 인해 중국 발 공급 과잉 가능성과 보호무역주의로 변화하고 있는 국제 무역 환경에서 한국 철강업계의 경쟁력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 전력 사용을 줄이기 힘든 철강업계

철강 제조 공정에 대한 기반지식이 없다면 철강을 생산하는데 왜 전기가 많이 사용되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 또한 전기 요금 상승이 예정되어 있고 기업이 그 상승분을 부담할 수 없다면 전기 사용량이 적은 생산방식으로 전환하면 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철강업계가 전기 사용량이 적은 방식으로 생산방식을 전환하는 것은 용이하지 않고 국가 전체로 봐서도 좋은 일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국내 철강 업체가 철강을 생산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는데, “고로(용광로) 방식”과 “전기로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고로(용광로) 방식은 전통적인 철강 제조 방식으로 철광석, 코크스, 석회석을 고로(용광로)에 넣고 가열하여 철강을 생산하는 방식이고, 전기로 방식은 주로 철 스크랩(Scrap)을 전기로 얻은 아크열이나 저항 열을 가하여 철강을 생산하는 방식이다.

즉 두 가지 방식 중 전기 소모량이 많은 생산 방식은 “전기로 방식”이다.

그런데 이 전기로 방식은 주로 철 스크랩이라는 고철을 재활용하여 철강을 만드는 방식이기 때문에 코크스라는 석탄의 일종을 투입할 필요가 없다. 철광석은 산화 철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고로(용광로) 방식을 적용할 경우 코크스를 투입하여 철과 결합된 산소를 제거하는 과정이 필수적이지만 철 스크랩을 투입할 경우 산소 제거 과정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기로 방식은 코크스와 같은 화석 연료의 투입을 절대적으로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고로 방식보다 탄소, 미세먼지 배출량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보이는 친환경적인 생산방식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기로 방식을 버리고 고로(용광로) 방식으로 전환하라고 하는 것은 화석 연료의 투입으로 인해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도 있고, 국가적인 측면에서 봐도 오염원을 대폭 늘리는 방식으로 전환하라고 하는 것이기에 환경과 국민 건강을 중시하는 현 정부의 정책 기조와는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

한편 고로(용광로)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 자체도 용이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2017년 1월에서 10월까지 제법별 철강 생산량을 보면 전기로 방식으로 생산한 철강은 1936만 톤으로 전체 5895만 톤 중에 거의 1/3에 해당한다.

따라서 전기 요금이 큰 폭으로 올라 고로(용광로) 방식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전체 생산 설비의 1/3에 달하는 설비를 전환해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라고 보기 힘들다. 이런 배경을 이해한다면 철강업계가 왜 강력하게 산업 전기 요금 인상에 대해서 강하게 목소리를 내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 협의가 필요하다

전기 생산에 필요한 원가를 충당하기 위해서 그리고 누진제가 적용되는 가정용 전기 요금과의 형평성을 위해서 산업용 전기 요금 체계의 조정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입장, 수출 경쟁력이 확보되어야만 기업 이익과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는 기업의 입장은 서로 평행선을 달려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관계자들이 서로 만나 정부의 입장과 기업의 입장을 서로 대화하다 보면 수용 가능한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도 전기 요금 인상으로 기업의 경쟁력이 상실되는 것을 원할 리 만무하고, 기업 또한 나빠지는 국제 무역 환경에서 정부 지원이 없어지는 것을 원할 리 만무하다.

그렇기에 산업용 전기 요금 인상 여부나 그 폭에 대해서 정부와 기업 간 서로의 입장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철강 업계 관계자의 말은 흘려 들어서는 안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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