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박경희 기자] 미국의 세제개혁안이 하원에서 통과됐다. 지난 2일(현지시간) 상원을 통과한 데 이어, 20일(현지시간) 하원에서도 법인세 인하를 골자로 한 미국 세재개편 최종안이 통과했다. 이로써 미국은 31년 만에 최대감세를 단행한 것이지만, 미국의 감세로 인해 전 세계가 세금전쟁을 치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어 우리나라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됐다.

▲ 그래픽_황규성 디자이너

◆ 미국 세제개혁안 무엇을 담고 있나

트럼프 행정부의 세제개혁안은 한마디로 ‘법인세 감세’다. 중산층 감세도 포함돼 있지만, 전반적으로 기업들의 세(稅) 경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법인세 최고세율은 현행 35%에서 21%로 인하되며, 기업들이 외국에서 벌어들인 자금을 본국으로 송금할 때 부과하는 세금인 ‘송환세’도 35%에서 12~14%로 크게 낮아진다. 높은 송환세 탓에 외국에 쌓여있는 현금을 미국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개인소득세는 최소세율이 현행 39.6%에서 37%로 낮아지며, 자녀 1인당 자녀세액공제는 1천달러에서 2천달러로 확대된다. 상속세를 공제받는 금액은 기존 560만 달러(61억원)에서 1천120만 달러(122억원)로 배 이상 늘어나게 된다.

이렇듯 감세 혜택은 기업뿐만 아니라 중산층·서민층까지 누리게 되지만 무엇보다 대기업과 부유층에 집중돼 있어 미국의 이번 세제개혁안은 ‘부유층, 특히 초부유층을 위한 감세’라는 비판이 나온다.

그럼에도 집권 공화당은 서민층에게 혜택을 주는 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사업체들이 세금에서 아낀 수조 달러를 투자해 새로운 설비와 공장을 마련하고 노동자를 고용하며 임금도 인상해서 경기 부양에 기여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집중해서 들여다봐야 하는 것은 바로 ‘미국 기업들이 세금을 아낄 수 있다’는 점이다.

◆ 글로벌 자금 미국으로 대이동할 수도 있어

전 세계는 미국의 ‘법인세 감세’에 주목하고 있다. 초강대국인 미국이 내건 법인세율 20%는 한국(22%)을 포함한 대부분의 신흥국보다 파격적으로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는 법인세율을 주요 선진국보다 낮춰서 미국 기업의 투자를 늘리고 외국 기업들의 미국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지하겠다는 의도이다.

미국은 그동안 한국과 마찬가지로 국내 소득과 해외 소득에 모두 과세하는 글로벌 과세 체계를 시행해 왔다. 기업이 해외 지점에서 소득이 생기면 그 나라의 법인세 세율을 적용받아 원천징수로 세금을 내고, 본국으로 자금을 이동하면 원칭징수로 냈던 세금을 일정 한도 내에서 공제 받은 후 국내소득과 합산해 본국의 법인세 세율로 다시 세금을 납부해야 했다.

반면 기업이 해외에 현지 법인을 설립하면 관련 소득은 그 나라의 법인세 세율로 세금을 내고 본국의 모회사에 배당을 줄 때만 세금이 부과됐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미국 기업들은 법인세 세율이 낮은 나라에 현지 법인을 세운 후 본국 모회사에 배당을 하지 않고 유보금을 쌓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해외유보금이 약 2조 6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트럼프 행정부는 추산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이번 세제개혁안을 통해 기업들의 해외 현지 법인이 본국으로 배당금을 지급할 때 법인세를 100% 공제해주기로 했다. 또 해외에 쌓아둔 해외 유보금을 미국 내 본사로 이동시키면 1회에 한해 특별 할인 세율(12~14%)를 적용하는 방안도 담았다.

미국은 이렇게 세제개혁안을 통해 자국 기업의 해외 유보금은 회수할 뿐만 아니라 미국 내 해외 기업의 자금 유출 막기에도 나섰다. 이는 EU의 반발을 사게 된 요인이 됐다.

◆ 시작된 세금 전쟁

미국이 세제개혁으로 보호무역을 더욱 장려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유럽은 세제개혁을 빙자해 국제 무역 규범을 깨고 있다고 비난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국내 소득과 해외 소득에 모두 과세하는 ‘글로벌 과세 체계’를 시행하고 있지만 미국의 이번 세제개혁안은 ‘영토주의 과세 체계’로 전환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특히 EU 재무장관들은 미국의 세제개혁안에 포함된 ‘세원침식남용방지법(BEAT)를 지적했다. 이는 다국적 기업이 세금을 아끼기 위해 수익을 세율이 낮은 국가로 빼돌리는 행위를 막는 규정이다. EU측은 미국이 이를 이용해 자국내 유럽 기업들에게 대규모 세금을 추징할까 우려하는 것이다.

또 EU 재무장관들은 미국에 법인을 둔 다국적 기업이 해외 계열사에 보내는 돈에 새로 20%의 세금을 매기는 규정을 놓고 “국제 규범에 어긋나는 차별 행위”라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도 만만치는 않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2013년부터 다국적 기업의 세금 회피 문제를 집중 조사해 애플, 아마존, 스타벅스 피아트 등 40개 기업이 부당한 세금 혜택을 누린 것으로 보고 아일랜드 등 회원국에 수십억 유로 세금을 추징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게다가 EU는 다국적 기업이 특정 국가에서 이익을 얻지 못하더라도 매출이 발생했을 경우 매출의 일정액을 세금으로 납부하도록 하는 균등세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 구글 등 다국적 기업이 여러 국가의 계열사 간 거래를 통해 법인세율이 낮은 국가에서 최종 이익이 발생한 것으로 만들어 조세를 회피하는 걸 막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EU와 미국 등이 세금 전쟁에 나서면서 90년대 말의 과도한 국제 조세 경쟁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대규모 내수시장 덕분에 고율의 법인세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손꼽혔는데 여기에 법인세 인하라는 강력한 카드를 꺼내들어 경쟁력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됐다. 상대적으로 한국은 최근 법인세 인상을 사실상 확정 지으면서 투자하기에 매력적이지 않은 나라가 됐다.

강대국들의 세금 전쟁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도 대응책을 적극 모색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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