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박경희 기자]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이 자국의 언론을 통해 한국 반도체 업체에 가격인하를 압박하고 있다. 글로벌 수요가 늘면서 D램 가격이 6분기 연속 상승세인데다가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 등 국내 D램 업체가 내년 1분기에도 모바일용 D램 가격을 3~5% 올리겠다고 통보하자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이 불만을 제기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공급과 수요의 원칙에 따라 이루어지는 시장의 원리를 흔드는 억지이다.

◆ 중국 스마트폰 업체, 언론 이용해 가격 인하 압박

중국 경제지 <21세기경제보도>는 22일 중국의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부서인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의 불만을 받아들여 삼성전자 관계자를 소환해 D램 가격 상승에 대한 조사를 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지난 21일 “D램 가격이 1993년 시장 조사를 시작한 이후 사장 높은 폭의 상승세를 보이면서 중국 업체들이 큰 고통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또 전자전문매체인 <전자공정세계> 등도 최근 발개위가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등을 대상으로 담합 협의가 없는지 살펴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 그래픽_황규성 디자이너

그러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해당 사안과 관련해 공식적인 조사나 공문을 받은 것이 없다”고 밝혔다.

이는 결국 중국 기업들이 중국 정부와 언론을 움직여 한국 반도체 회사를 압박하려는 의도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어 조만간 중국 당국이 조사에 착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D램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조정되는 것일 뿐

올 들어 반도체업체들은 슈퍼사이클(초호황)을 누리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 확대는 물론 초대형 IT업체들의 인터넷 데이터센터(IDC) 고도화 작업과 비트코인, 이더리움을 비롯한 가상화폐 채굴 열풍 때문이다. 따라서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반도체 가격은 지난해 6월에 1.31달러(DDR4기가바이트 기준)에서 지난 11월 3.59달러로 2배 넘게 올랐다. 그러니까 지난해 3분기부터 6분기 연속 상승한 것이고, 내년 1분기에도 삼성전자 등 D램 제조업들은 D램 가격을 3~5% 올리겠다고 통보했다.

그러자 애플의 아이폰, 삼성전자의 갤럭시 시리즈에 밀려 마진이 높지 않은 화웨이, 오포 등 중국의 스마트폰 업체들이 불만을 제기하고, D램 업체간 담합을 의심하면서 가격 인하를 압박하고 나섰다.

그러나 현재의 D램 가격은 2년 수준에 불과하다. 지난 2014년 이후 무려 6분기 이상인 16개월 동안 하락세를 이어가다 지난해 6월 이후 다시 오름세를 보이면서 현재 가격이 된 것이다.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 2014년 D램 평균가격(DDR 4기가비트 기준) 3.5달러 수준이었지만, 2014년 말 스마트폰 시장이 정체되면서 공급이 수요를 초과해 지난해 5월에는 절반수준인 1.25달러까지 하락했다.

그러나 스마트폰 시장이 다시 확대되고, 초대형 IT업체들이 인터넷데이터넷서(IDC) 고도화 작업을 하면서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고 있고, 엔비디아, AMD 등이 개발한 고성능 게임을 위한 그래픽 카드는 기상화폐 채굴 열풍으로 시장에서 품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제품이 출고가보다 판매가가 20~30% 이상 높을 뿐만 아니라 웃돈을 줘야만 살 수 있을 정도로 수요가 많다. 아이러니한 것은 상당수 수요가 가격에 불만을 품고 있는 중국 내 가상화폐 채굴장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 중국은 왜 반도체 가격을 압박하나?

D램 가격은 6분기 이상 상승세를 타고 있긴 하지만 2년 전 가격으로 회복한 정도이다. 그런데도 중국언론이 담합 운운하면서 반도체 가격을 압박하고 나선 것에 대해 전자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중국 굴기(崛起·우뚝 일어섬)를 선언한 중국 정부가 자국 업체에게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시장에 부당하게 개입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지난해 ‘반도체 굴기’를 내세워 2026년까지 무려 160조원을 반도체 생산시설에 투자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그리고 내년 말부터 창장메모리 등 중국 업체들은 본격적으로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양산에 들어가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수준이 크게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사정에 밝은 국내 반도체업체의 한 관계자는 “웨이퍼당 수백 개의 D램을 생산할 수 있어야 하는데 창장반도체는 한두 개 건지는 수준”이라며 “삼성전자는커녕 대만의 난야 같은 중소 메모리업체를 따라잡는데도 최소 3년 정도 걸릴 전망”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삼성은 세계 최초로 10나노급 2세대(1y나노) D램을 양산한다고 지난 20일 밝힌 바 있다. 그간 선두권 기업 간의 기술격차가 약 6개월 수준에서 길어야 1년 정도였지만 삼성전자가 2세대 10나노급 공정을 통해 2~3년 가량의 초격차를 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업계 2위인 SK하이닉스의 경우 10나노급 D램 제품 개발 및 양산에는 성공했지만 양산 확대와 수율 확보가 여의치 않은 상황으로 알려졌고, 마이크론의 경우 1세대 10나노급 D램 양산을 최근에야 시작해 2세대 10나노급 D램은 내후년에나 가능할 전망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이렇게 삼성전자가 타 업체와 초격차를 벌이며 앞서나가고 있고, 선두권 업체들도 그 뒤를 바짝 뒤쫓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서야 반도체 굴기를 내세우며 D램 양산 계획에 나선 중국으로서는 초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중국 정부가 한국 기업에 노골적으로 압박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세계적으로 메모리반도체가 품귀를 빚는 상황에서 물량 확보를 우선해야 할 중국 스마트폰업체들이 소위 ‘갑질’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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