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부, 감단 근로자 심신피로도 판단해 ‘근로시간’ 제약둔다

‘갑질 금지법’ 인간으로서 평등하다는 ‘인권의식’ 높아져야

그래픽_뉴스워커 AG1팀
그래픽_뉴스워커 AG1팀

[뉴스워커_국민의 시선] 우리나라에서 많은 이들이 아파트에 산다. 그러나 그 안에서 경비 노동자의 일상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아파트 경비원들은 육체적·정신적 갑질 피해나 열악한 근무환경,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이를 막아내기 위해 법의 보완이 실시 됐지만, 결과는 꼼수의 등장인 곳도 있다.

정부가 아파트 입주민들이 경비원에게 개인차량 대리주차나 택배를 개별 세대에 배달해주는 것과 같은 허드렛일을 시키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했다. 아파트 경비원에게 주차를 시키거나 택배배달 같은 부당업무 지시를 하면 1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지난해 10월 개정된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른 위임사항 등을 규정한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개정안을 지난 21일부터 시행했다. 개정안은 공동주택 경비원이 경비업법에 따른 시설경비 업무 외에 공동주택과 관련한 업무범위를 구체화 했다.

이처럼 새로운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이 적용되면서 아파트 경비원들에게 대리 주차 등을 요구하는 게 금지됐지만, 대리 주차를 계속 맡기려 법을 우회하는 아파트 단지들도 있다. 기존 경비원들에게 경비원이란 직함 대신 관리원이란 이름을 붙이는 것이 대표적이다. 경비원은 공동주택관리법 적용을 받지만, 관리원은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아 대리 주차 등을 하는데 별다른 제약이 없기 때문이다. 아파트 관리원에 대리 주차 지시는 불법이 아니다

경비원 갑질 금지법으로 업무 제약이 많아진 경비원 대신 관리원을 고용하는 꼼수로 법망을 피해가 결국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다. 관리원은 경비원이 받는 월 최대 5만원의 일자리 안정 자금도 받을 수 없다. 관리원 대다수는 경비원이 아니기에 갑질 금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할 뿐 아니라 휴게 시간 또한 보장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아파트 경비는 대부분 고령의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이 성공적으로 안착되기 위해서는 경비원에게 헤드렛일과 막말을 해도 된다는 일부 주민들의 인식이 잘못됐음을 인지해야한다. 또 인간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인권에 대한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 결국 안전한 공동체를 만드는 게 우선이다.


경비원 업무 가이드라인업무강도 높이면 근로시간제약둔다


아파트 경비원들은 육체적·정신적 갑질 피해나 열악한 근무환경, 고용불안에 시달린 게 현실이었다. 이를 막아내기 위해 경비원의 업무가 낙엽 청소 제설작업 재활용품 분리배출 정리·감시 등으로 한정됐다. 반면 개인차량 주차 대행(대리주차), 택배물품 세대 배달 등 개별 세대의 업무를 직접 수행과 관리사무소의 일반 업무를 보조하는 것은 제한된다. 위반 시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나 경비업자에 대해서는 경비업 허가가 취소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경비 외 업무가 법적으로 추가되면서 오히려 일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경비원이 제대로 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면서도 각종 허드렛일을 하는 등 근로조건이 열악하다는 것이다.

이에 고용노동부에서 감시·단속적(감단) 근로자 승인판단 기준을 마련했다. 고용부가 지난 25일부터 공동주택 경비원의 감시·단속적 근로자 승인 판단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적용키로 했다. 감단 근로자란 아파트 경비원 같이 단지 내 순찰 등 감시 업무를 주로 하면서 심신의 피로가 상대적으로 낮은 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를 말한다. 감단 근로자들은 법에 따라 정부의 승인을 받으면 근로시간·휴게·휴일 관련 규정을 적용받지 않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아파트 경비원들이 24시간 격일 교대제 방식의 근무를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경비원의 근무가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과, 이들의 고충이 사회에 널리 알려지자 정부는 감단 근로자 승인 여부를 심신의 피로도가 근로시간, 휴게, 휴일 규정을 적용해야 할 정도로 높은지를 기준으로 삼기로 했다. 여기서 심신의 피로도는 경비 업무 이외에도 다른 업무를 포함한 전체 업무를 기준으로 한다.

또 가이드라인에 따라 감단 근로자에 대한 적정한 휴게시설 마련과 월평균 4회 이상 휴무일 보장 등도 시행된 만큼 이를 모두 갖춰야 승인이 가능하다.

고용부 관계자는 공동주택관리법령이 개정·시행돼 공동주택 현장에 변화가 예상되는 상황이라며 이번 가이드라인을 통해 경비원 분들의 근로조건이 개선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아파트 경비원 갑질 금지법인식부터 바뀌어야


경비원을 갑질에서 보호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공동주택관리법개정안 시행이 반갑다. 하지만 일부 아파트에서는 경비원을 대신해 관리원으로 다시 고용하며 법망을 피하고 있다.

특히 세워진 지 오래된 아파트들이 이런 경우가 많다. 지하 주차장이 없기 때문이다. 대단지인데다 지상 주차 공간이 부족해 이제까지 경비원들이 주민들의 대리주차일을 해왔기 때문이다. 법 개정안대로라면 이들 아파트 주민은 과태로 1000만원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이 법에 해당이 안 되는 관리원으로 고용하면서 주차업무를 이어가고 있다.

전라북도는 올해 상반기 도내 아파트 등 공동주택 경비원 약 1500명을 대상으로 근로 실태 설문조사결과 근로환경 만족도3.07(5점 만점) 이었다. 휴게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열악한 환경이 그 원인으로 분석됐다. 휴게시간이 있어도 휴게시설이 없거나, 휴게시간이 있어도 대리주차 요청이 오면 뛰어가는 게 경비원들의 일상이다.

올해 6월 출간된 <나는 아파트 경비원입니다>를 쓴 최훈 작가는 수도권 아파트에서 3년째 일하는 경비원이다. 제목처럼 아파트 경비원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최 씨는 황금기를 누린 1980년대 건설회사에 다니고, 외국계 회사도 거쳤다. 이후 무역 회사를 차려 대표님 소리도 들었지만 경영 악화로 폐업했다. 이후 지인에게 10만원을 빌려 경비 학원에서 자격증을 따 2018년 아파트 경비원으로 취직했다. 그렇게 경비원이 됐지만 주민들의 갑질에 치이고 해고로 마음 졸이는 현실을 마주했다. 마음을 다칠 때 마다 경비초소에서 A4용지 이면지에 자신의 감정을 글로 적었고, 책으로 펴냈다.

전문가들은 인권 사각지대에 있는 아파트 경비원들의 권리와 자리를 찾아주는 의미로 이번 개정안은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경비원 갑질 금지법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근로조건과 사회적 인식이 먼저 개선돼야 한다. 흔히 아파트는 관리가 잘 되고 편해서 살기 좋다는 말을 한다. 여기에는 많은 부분 경비원의 노고가 숨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경비원들이 부지런히 일했기에 아파트가 쾌적하고 안전하게 유지된다. 직장 동료나 한 아파트에 사는 이웃에게 막말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럼 우리도 경비원들은 동료나 이웃으로 생각하면 어떨까. 결국 같이 살아가는 공동체이다. 본인의 일을 하면서도 정신적으로도 힘들고, 해고 압박에 시달리는 비정상적인 일이 줄어들었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뉴스워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