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을 중시한 효성의 선택

[뉴스워커_염정민 기자] 효성 조석래 전임 회장의 이력은 다른 CEO들과는 조금 다른 면이 있다. 경영학을 전공한 일반적인 CEO들과 달리 조 전 회장은 일본 와세다대 이공학부에서 학부 과정을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 대학원에서 석사학위까지 받은 이공계열 CEO였다.

그래서인지 이공계 출신인 조 전 회장은 원천기술의 개념조차도 잘 확립되지 않았던 1971년에 국내 최초로 민간 기업 기술연구소를 설립하였고, 효성은 사내 기술연구소를 통해 효성이 생산하는 제품들의 원천 기술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특히 상품명 ‘크레오라’라는 스판덱스 제품은 1990년대 초에 이 기술연구소에서 개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크레오라는 현재까지도 세계 스판덱스 시장에서 효성이 점유율 1위를 수성하도록 하여 효성의 안정적인 수입원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 그래픽_황규성 디자이너

크레오라를 포함한 효성의 섬유 사업 부문은 2017년 1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 매출액이 1조 5748억 원, 영업 이익은 1979억 원을 기록할 정도로 효성 그룹의 핵심 사업 부문으로서 건재하고 있다.

한편 원천 기술을 확보하는 것에 주력한 효성의 선택이 옳았음은 미국 하니웰 사가 제기한 ‘폴리에스터 타이어 코드 제조기술 및 제품에 대한 특허 침해 소송’에서 2002년에 효성이 승소함으로써 다시 한 번 입증되는 결과를 낳았다.

게다가 효성은 하니웰과의 분쟁에서 승소했을 뿐만 아니라 하니웰의 특허를 무효화시키는데도 성공했기 때문에, ‘폴리에스터 타이어 코드’의 세계 시장에서도 우수한 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었다. 만약 효성이 원천 기술을 확보하지 못하여 하니웰과의 특허 분쟁에서 패소하였다면 지금과 같이 좋은 실적을 거두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기술 개발에 매진했던 조 전 회장의 기업 분위기는 현 조현준 CEO에게도 엿볼 수 있는데, 최근 효성은 스판덱스와 폴리에스터 타이어 코드 외에도 ‘아라미드 섬유’, ‘탄소 섬유’를 개발하는데 성공했고, 각 섬유의 물리적 성질과 생산 방식의 개선에 연구 개발 역량을 투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노력의 결과 덕분에 지난해에는 그룹의 영업 이익이 1조원을 돌파하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 효성, 특수 섬유 부문에 눈을 돌리다

크레오라를 위시한 전통 섬유 산업 부문이 현재까지도 효성 그룹의 핵심 사업 부문인 것은 재무제표 상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과거처럼 전통 섬유 부분에서 폭발적인 실적의 성장을 거두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효성의 기술력이 높은 수준이라고는 하지만 노동 집약적인 부분을 무시할 수 없는 섬유 산업 에서 임금의 격차는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효성도 베트남 공장과 같은 해외 공장을 운용함으로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려고 하고 있지만, 후발 주자인 중국 기업들의 도전은 만만히 볼 수 있을 수준이 아니라고 평가받고 있다.

이에 따라 효성은 새로운 분야의 개척으로 그룹의 활로를 찾으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효성은 폴리에스터 타이어 코드, 아라미드 섬유, 탄소 섬유 등과 같은 특수 섬유 사업에서 그룹의 새로운 먹거리를 찾으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다.

아라미드나 탄소 섬유와 같은 특수 섬유는 에어백, 방탄조끼, 자동차, 항공기의 부품 등에 사용되기 때문에, 의류나 커튼과 같은 일반 인테리어에 사용되는 섬유와는 완전히 다른 물리적 성질이 요구된다.

이에 따라 전통적인 섬유 산업의 경쟁력은 노동 집약적인 요소에 의해서 결정될 수 있는 반면에, 특수 섬유 산업의 경쟁력은 기술적 역량의 우위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 있기 때문에 중국과 같은 후발 주자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는 효성의 특수 섬유 부문에 대한 진출 시도는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볼 수 있다.

◆ 효성의 폴리에스터 타이어 코드 부문

타이어의 구조는 크게 트레드(Tread), 카카스(Carcass), 비드(Bead)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중 몸통의 역할을 하는 곳이 카카스라는 부분이다. 이때 타이어 코드는 카카스 안에 위치하면서 몸속의 골격과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이때 타이어 코드는 타이어 골격의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타이어의 공기압과 타이어에 걸리는 하중을 지탱해야 한다. 따라서 타이어 코드의 소재는 타이어의 내구성과 자동차 안정성 등의 제반 특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초창기 타이어 코드의 소재로 고무를 사용하기도 했는데, 고무는 내구성이 좋지 않아서 타이어 전체의 수명이 짧아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런 단점을 극복하고자 타이어 코드의 소재로 천연섬유인 면을 사용하게 되었지만 비싼 가격으로 인해, 레이온, 나일론, 폴리에스터와 같은 합성섬유로 대체되게 되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효성은 타이어 코드에 관한 하니웰의 특허를 무효화시킬 정도의 우수한 독자적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폴리에스터 타이어 코드 세계 시장에서 우수한 점유율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에 따라 효성이 2017년 1월 1일에서 9월 30일까지 산업자재 부문에서 매출액 1조 8165억 원, 영업이익 1629억 원이라는 좋은 실적을 기록하는데 타이어 코드 제품군이 일조를 하게 된다.

◆ 아라미드 섬유 부문

아라미드 섬유는 열에 강하고 튼튼한 폴리 아마이드 섬유를 의미한다. 이 섬유는 5mm 정도 굵기에 2t의 자동차를 매달아 공중에 띄울 수 있고, 고온의 열에 노출되어도 녹지 않으며 섭씨 500도 정도에서 탄화되는 물리적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런 물리적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라미드 섬유는 군사용, 소방용 등의 특수 목적에 사용되고 있다.

군사용으로는 방탄 헬멧이나 방탄 조끼에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아라미드 섬유가 철과 같은 금속에 비해서 무게는 가볍고, 강도는 금속 소재보다 우수한 물리적 성질을 가지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 선조들은 우수한 한지로 만든 종이 갑옷을 만들어 착용하기도 하였는데 이 갑옷은 조총의 탄환을 막을 수 있을 정도의 방호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는 종이 갑옷에 사용된, 한지의 그물과 같이 촘촘한 섬유 구조가 탄환을 감싸 탄환의 운동에너지를 상실시키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 원리는 아라미드 섬유를 이용한 방탄 장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게다가 아라미드 섬유는 한지의 강도보다 더 우수하고, 금속보다 가볍기 때문에 방탄 장비의 소재로서 더욱 더 각광을 받고 있다.

한편 아라미드 섬유는 섭씨 500도 이상에서 탄화될 뿐 녹지 않기 때문에 화재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소방관의 보호 장비에도 사용되고 있다.

효성은 아라미드 섬유를 사용한 방탄 장비를 올해 7월에 열린 인도 국제 섬유 박람회 ‘텍스타일 인디아(Textiles India) 2017’에서 선보인 적이 있고, ‘알켁스(Alkex)’라는 상표로 소방관의 보호 장갑을 시중에 판매하고 있을 정도로 아라미드 섬유를 상용화하고 있다.

◆ 탄소 섬유 부문

효성은 ‘탄섬(TANSOME®)’이라는 브랜드로 탄소섬유를 개발했는데, 이 섬유의 인장 강도는 무려 5.5GPa(기가 파스칼)로 알려졌다. 인장 강도는 섬유를 잡아당겨서 섬유가 끊어지기 직전에 걸린 최대 하중을 섬유의 단면적으로 나눈 값을 의미하는데, 인장 강도 수치가 크면 클수록 재료의 강도가 강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인장 강도가 1MPa(메가 파스칼)이라면 1제곱센티미터의 단면적을 가진 섬유가 대략 10kg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5.5Gpa은 5500Mpa로 1제곱센티미터의 단면적을 가진 탄소 섬유는 55ton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탄소 섬유는 가벼우면서도 고강도의 산업재료이기 때문에 경량화가 요구되는 제품군에서 많이 요구되고 있다. 최근에는 탄소 섬유가 기존에 사용되었던 항공기나 로켓과 같은 제품 외에도 자동차의 부품이나 ‘카본 자전거’와 같이 자전거의 프레임 등에도 탄소 섬유가 사용되고 있을 정도로 적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이런 추세와 함께 탄섬은 2014년에 현대의 컨셉트 카인 ‘인트라도’에 적용된 바 있을 정도로 이미 그 품질을 입증한 바가 있기 때문에, 향후 경량화를 추구하여 연비를 좋게 하려는 자동차 업계에서 그 사용이 점차 증가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고 볼 수 있다. 특수 섬유 부분으로 사업 확장을 시도하고 있는 효성의 선택은 합리적이라고 보이지만, 앞서가고 있는 일본과 추격해오고 있는 중국을 생각하면 끊임없는 연구 개발과 대량 생산을 통해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과거에 미래를 내다보고 스판덱스와 폴리에스터 타이어 코드 원천 기술을 확보하여 효성의 먹거리를 찾아내었듯이, 기업의 역량을 집중하여 아라미드, 탄소 섬유와 같은 신소재를 끊임없이 개발, 개선한다면 효성은 앞으로도 경쟁자들과의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뉴스워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