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2014년에 염전 노동 주기적 조사 약속했지만 안 이뤄져”

노동력 착취 끊기 위해 인권기본조례와 주민 동참 함께 가야

그래픽_뉴스워커 AG1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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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워커_국민의 시선] 천사 섬에 악마가 나타난 걸까. 전남 신안군 갯벌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온 섬이 보라색인 퍼플섬반월·박지도는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가 선정하는 세계관광 우수마을 대한민국 후보마을에 선정됐다. 뿐만 아니라 군 자체가 크고 작은 섬이 1004개나 된다고 해서 천사 섬의 고장으로 불린다.

국내 천일염의 3분의 2를 생산해내는 신안 염전에서 또다시 임금체불 등 노동 착취가 발생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경찰은 전담수사팀을 편성해 수사를 진행 중이다.

이곳에서 일한 경계성 지능장애인 박영근(53)씨는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7년 동안 일하며 470만원 가량(합의금·가불)을 빼고는 임금을 받지 못하고 사실상 감금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전남경찰청은 박씨가 일한 염전 사업주 장씨(48)를 입건해 조사에 나섰다.

국가수사본부는 전남경찰청 형사과장을 팀장으로 전담수사팀을 편성해 염전 근로자 노동착취 등 의혹에 대해 수사역량을 집중해 신속하고 철저히 수사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잊을만하면 염전에서 발생한 인권 침해 사건으로 1004개의 섬으로 구성된 신안군민들이 억울해하는 상황. 하지만 지난 20141월을 시작으로 20185월 그리고 최근 염전 사업주 장씨의 인권침해 사례까지 염전노예사건이 반복되는 실정이다.

신안군은 지난 2일 이와 관련해 강력한 수준의 인권기본조례를 제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권조례에는 인권위원회 설치, 인권백서 발간, 인권교육 시행 등의 내용이 담긴다

군은 인권기본조례로 보호받아야 할 주민의 범위를 넓힌다. 신안군에 주소를 둔 사람은 물론 거주를 목적으로 체류하고 있는 사람과 신안군에 소재하는 사업에 종사하거나 사업장에서 근로하는 사람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인권조례에 따라 주민의 범위가 확대되면 그동안 인권침해 감시의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염전이나 양식장과 농장 등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타 지역 주민·장애인 등도 인권보호대상에 포함돼 실질적인 인권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제정을 앞둔 인권기본조례는 그 누구도 해석과 적용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정도의 강력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담을 것이라고 군은 선포했다.

조례 제정은 다행한 일이지만 그것만으로 반복되는 염전 인권침해 사건을 막을 수 있을까. 유네스코도 인정한 아름다운 섬에서 자꾸 염전 근로자의 임금착취와 감금, 폭행과 같은 불법행위가 반복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노예 문제 7년 지나도 피해자 등장장애인단체, 엄중 수사 촉구


이런 가운데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지난 2014년 신안군 염전노예 사건이 불거졌을 때 정부가 주기적 조사를 약속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며, 경찰 수사와 정부의 재발방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염전노예 사건이 처음 세상에 알려진 이후 개선책이 쏟아졌지만 염전 노동자에 대한 관리 감독은 지금까지 크게 개선된 점이 없다는 것. 때문에 염전 노예 문제가 제기된 지 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피해자가 나오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세상에 알려진 박씨의 경우 염전을 탈출해 지난 6월 가족의 도움을 받아 광주지방고용노동청 목포지청에 임금체불 진정을 넣었지만 근로감독관은 염전 사장 장씨 진술을 토대로 400만원 합의로 진정을 종결했다.

이런 가운데 염전노예 의혹이 제기된 사건 수사의 관할을 두고 인권단체와 경찰 간의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은 최근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청 중대본부수사과가 염전 노예사건을 전수 조사할 것을 강조했다. 인권단체는 전남지역 경찰의 수사를 믿을 수 없다며 경찰청이 직접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권단체는 2014년 신안염전노예 사건 당시 관할 경찰이 사건을 축소·은폐했다고 꼬집었다. 당시 노동력 착취와 감금·폭행을 당한 피해자들은 관할 경찰이 피해를 방관한 것과 관련해 전남경찰청 등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20194월 승소한 바 있다.


염전노예 재발 방지에 총력장애인 인권보호 강조


처음 염전 주인들의 노동력 착취로 사회적 공분을 산 건 20141. 당시 전남 신안군 염전에 감금돼 노동력 착취와 폭행·욕설에 시달리던 장애인 2명이 구출되면서 세상에 염전노예의 실상이 알려졌다. 이후 정부가 전수 조사에 나선 결과, 63명의 피해자가 나왔고 대부분은 판단능력이 부족한 장애인이나 무연고자·노숙인 등 사회취약계층이었다. 13년 넘게 신안 염전에서 무임금 노동해오다 20146월 구출됐던 한 노동자는 현재 한 노숙인 쉼터에 머물고 있다.

신안군은 주민의 범위를 넓힌 인권기본조례를 오는 19일부터 열리는 신안군의회 제2차 정례회에 상정할 예정이다. 또 지원금이나 보조금을 받는 사업장에서 인권침해 사건이 발생할 경우 이를 전액 환수 조치하거나 일정기간 동안 해당 사업에 참여할 수 없게 하는 강력한 제재 조항까지 검토하고 있다. 조례가 통과되면 그동안 인권 안전 사각지대의 소수의 피해자들이 사회안전망 안으로 들어올 것으로 보인다.

신안군은 관내 일부 사업장에서 자행되는 인권침해 사건으로 그동안 쌓아온 군의 긍정 이미지가 무너지고, 아무 죄 없는 군민들이 공범처럼 취급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염전 주인들의 노동력 착취가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인권기본조례 제정 외에 주민들의 자발적인 동참이 더욱 중요하다. 무엇보다 정신장애인과 그의 가족을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건 정신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과 그에 기반한 일반인과 차별적인 임금 체계와 대우 아닐까.

법에 어긋난 행동을 하는 염전주는 같이 살아가는 동네 주민이 아니라 범죄를 일삼고 있는 것이다. 주민들이 악덕 사업주의 임금체불과 감금·폭행 같은 불법행위를 못 본채 하지 말고, 이를 밝힐 때 피해자도 가해자도 없어질 것이다. 방관의 대가는 결코 당연할 수 없는 일이 어떤 곳에서는 당연하게 될 수 있음을 기억하자. 그런 것이 장기화되면 사회는 멍든다.

염전노예 사건이 터질 때마다 신안군의 이미지는 추락하고 있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고운 백사장과 드넓은 갯벌, 해송들이 장관을 이루며 뛰어난 자연경관으로 세계인의 찬사를 받지만 정작 국민들의 마음이 돌아 서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고, 결국 신안에서 나오는 소금까지 기피하게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선량한 주민까지 피해를 입고 더욱 고립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인권기본조례로 살기 좋고, 일하기 좋은 공동체로 가는 인권의 기틀을 다지겠다는 박우량 신안군수의 말처럼 더 이상 천사 섬에 악마가 등장 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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