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 전 추진위원회 시절부터 수주위한 전 방위 로비 시작

▲ 재개발사업이 청탁과 비리로 얼룩졌다는 말은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국내 메이저 중 최 상위권을 차지하는 한 건설사가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몇 년전부터 조합장 및 간부들을 전 방위로 로비했다는 정황이 서울 서부지방검찰청으로부터 밝혀지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최근 서울서부지방검찰청(형사 5부)는 염리3구역재개발사업과 관련하여 삼성물산 건설부문 사업소장 황 모씨가 조합 임·직원에게 자사를 시공사를 선정되게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금품을 건넨 정황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서부지검에 따르면 삼성물산은 서울 마포구 아현동 뉴타운사업인 염리3구역재개발의 시공사로 선정되기 위해 조합장 및 임원들에게 10억 원 상당의 금품을 건넨 정황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검찰은 또 송씨 등과 함께 금품을 건넨 하청업체 사장과 이들로부터 금품을 받은 조합장 이모씨 등 조합 간부 3명도 구속했다고 전했다.

검찰에 따르면 송씨 등 2명은 시공사 선정 대가 명목으로 2007년 말 염리3구역 재개발조합 총무이사 유모씨에게 1억 원을 건네는 등 2009년 7월까지 3차례에 걸쳐 유씨를 비롯한 조합 간부 2명에게 7억원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송씨 등은 또 2006~2008년 철거공사 수주 업체 대표와 함께 3억원을 조합장 이모씨에게 전달한 혐의도 받고 있다.

하지만 염리3구역 재개발사업의 시공사는 GS건설이다. 서울 클린업시스템을 통해 관련 자료를 조사하면, 염리3구역에 관한 협력업체는 등록되어 있지 않다. 다만, 추진경과를 보면 어떤 업체들이 시공권 수주에 참여했으며, 어떤 정황이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 메이저 건설사 언제부터 수주위한 작업에 들어가나

검찰의 조사와 함께 관련자료 토대로 유추해보면, 재건축 재개발사업에서 시공사들의 시공권 수주는 조합이 입찰에 들어가는 시점부터가 아닌 조합이 설립되기 전 즉, 추진위원회 부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업계에 따르면 브랜드 네이밍이 부족한 건설업체 일수록 시공권 확보과정이 길다는 것이다. 이곳 염리3구역 수주를 위해 삼성 직원이 전 방위 로비를 펼친 시점 또한 조합 이후가 아닌 추진위원회 때부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삼성물산 소장 송모씨는 2007년 말에 이곳 총무이사 유모씨에게 1억원을 건넨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시기 염리3구역은 서울시로부터 정비구역지정결정고시(2007년 12월 6일)를 받던 때이다.

지금의 재개발사업은 정비구역지정을 받은 후 추진위원회 승인을 받지만 당시는 추진위원회에서 구역지정업무를 수행했기 때문에 이미 추진위 승인은 받은 상태였고, 구역지정 후 조합원 동의를 얻어 조합설립에 들어간다.

이곳 염리3구역 또한 추진위원회 승인은 2006년 4월 26일임을 알 수 있다. 그 후 조합 창립총회를 2008년 1월 15일에 개최했다. 구역지정이 있은 날로부터 40여일 후의 일이다.

2009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의 개정으로 조합설립을 위해서는 법적동의요건을 모두 확보해야 한다. 반면, 그 이전 법에서는 창립총회를 개최한 후 부족한 동의서를 채워 관할 행정청에 인가를 신청하면 됐다.

염리3구역 또한 창립총회는 열었으나 동의서 부족문제 등으로 인해 1년여가 훨씬 지난 이듬해 3월 19일에야 비로소 마포구청으로부터 조합인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정황으로 보인다. 조합의 법인 등기는 같은 달 31일에 마쳤다.

그 후 시공사선정은 같은 해 8월 8일에 이뤄졌다. 이 때 시공사 및 설계자 그리고 철거업자 선정도 함께 진행됐다.

삼성물산 소장 송모씨는 조합인가 2~3년여 전부터 자사를 시공사로 선정해 달라는 로비를 하며 금품을 전달해 왔던 것이다.

총회에 최종 상정된 시공업체는 삼성물산과 GS건설, 현대건설 3곳이다. 염리3구역이 비교적 타 지역에 비해 사업성이 우수하다는 평가로 메이저건설사 3곳에 치열한 경쟁을 치른 곳이다.

총회결과는 삼성의 패배였다. 불과 40표차가 당락을 결정했다. 서면결의서를 포함한 조합원 966명 참석에 삼성물산은 349표를 얻은 반면, GS건설은 389표, 현대건설은 203표를 얻어 최다득표를 차지한 GS건설이 염리3구역의 최종 시공권자가 됐다.

최근 열린 과천주공6단지의 시공사선정을 위한 총회에서 GS건설과 대우건설은 불과 35표 차로 당락을 결정했다. 이날 관련 일간신문에서는 과열홍보, 흠집 내기, 비방전 등을 일삼는 기사들을 앞 다퉈 다룬바 있다.

염리3구역 수주전도 불과 40표차가 났다는 것은 그 만큼 치열한 수주전이 벌어졌다는 것을 인지하기란 어렵지 않아 보인다.

◆ 비 메이저 즉, 중견건설업체의 수주 작업은 언제부터인가

메이저건설사의 재건축·재개발사업 수주에도 조합이후가 아닌 추진위원회 때부터인 것을 감안할 때 중견건설업체의 수주를 위한 작업은 그 보다 훨씬 이전부터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도급순위 10위권 밖의 중견업체는 아파트 브랜드 인지도에도 뒤지기 때문에 추진위원회를 승인받는 그 시점부터 관리에 들어간다.

특히 대규모 사업지역의 경우에는 중견업체의 작업이 일찍 시작되는데 이는 재개발·재건축사업의 핵심부인 집행부를 틀어쥐고 단독입찰이 아닌 컨소시엄으로 참여하기 위한 복안이다.

K건설에서 퇴직한 한 중견간부의 증언에 따르면 중견사들은 사업성이 좋은 지역을 수주하기 위해서는 사업이 시작되는 초창기부터 직원이나 일명 OS업체를 동원해 집행부 작업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또한 단독입찰이 아닌 컨소시엄 참여를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즉, 브랜드 인지도가 낮아 조합원의 표를 받기 어렵다고 판단해 사업구역을 장악하고 메이저사를 붙여 참여한다는 것.

이는 추진위원장으로 나온 사람이 조합장이 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위원장 및 집행부 간부들을 건설사가 뇌물 등으로 옭아 매 놓으면, 그 뒤 메이저사를 붙이기란 어렵지 않다고 보는 이유다. 만약 메이저사가 먼저 집행부를 장악했다면 비 메이저사는 그 틈새를 뚫고 가기란 쉽지 않다. 아쉬운 것 없는 대형업체가 중견사에게 손을 내밀지는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런 과정을 되풀이해 수주에 성공한 업체는 K사를 비롯해, L사, K2사 등이 있으며, 지금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업체가 H사다. H사는 고양의 대형 재개발사업구역을 비롯해 광명, 안양, 창원 등에서도 이 같은 방식으로 수주를 진행한 바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하더라도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초기부터 사업장에서 집행부를 작업한 이유로 일명 ‘물을 흐렸다’는 이유로 정작 총회에서는 입찰에 밀리는 현상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H사가 물먹은 곳이 창원 재건축현장과 안양의 재건축현장에서 발생한 바 있다.

하지만 중견건설사의 이러한 수주행태도 이제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할지도 모른다. 18일 서울시는 10년 넘게 사업이 진행되는 재건축·재개발사업에 조합장직을 종신제로 수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취지로 임기를 3년으로 못 박고 연임을 위해서는 조합 총회에서 재신임 여부를 묻도록 법제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현행 법률에서 정비사업의 조합장 임기를 따로 규정하지 않고 조합의 정관에 일임하고 있어 국토해양부에 관련법 개정을 건의한다는 것이다.

컨소시엄으로라도 사업성이 양호한 지역을 수주하겠다는 중견업체들의 의지에 쐐기를 박는 서울시의 입장표명이다.

서울시는 이 밖에도 조합장의 임기에 대해 규정을 두고 있는 조합정관에 대해서도 이 같은 내용에 대해 규정되지 않으면 인가에 어려움이 있도록 행정조치 할 계획임을 아울러 밝혔다./

※기사 후기
재건축·재개발사업은 기존 도심의 낡은 주택 및 건축물들을 새롭게 단장하는 도심재생사업이다. 이 과정에 많은 이권이 오가고, 그 이권을 따내기 위해 불법과 편법을 일삼는다는 것은 공공연한 일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당선하면서 재건축·재개발사업은 더욱 어려워진 것 또한 부정하기 어렵다. 사업은 지속가능해야 하지만 박 시장이 오른 이후 서울시의 정비사업은 재검토와 폐지 등으로 점철되고 있다.
과열은 혼탁을 불러오고, 혼탁은 결국 자의든 타의든 정비 및 정리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지금의 시기가 그 과정일 듯싶다./

저작권자 © 뉴스워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