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박경희 기자] 9일 판문점 열린 남북 고위급 당국회담에서 북측은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규모 고위급 대표단과 선수단이 방문하기로 했다. 또 군사적 긴장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군사당국 회담을 열기로 했으며,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남북 고위급 회담과 함께 각 분야의 후속 회담도 연다는 내용을 담은 남북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신년사로 발단된 남북 고위급 당국 회담은 2년 여 동안의 단절됐던 시간들이 무색하리만큼 남북 관계가 급속도로 진전된 분위기다. 하지만 아직 비핵화는 논의되지 않은 만큼 진정한 한반도 평화까지는 쉽지 않은 여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 그래픽_황규성 그래픽 전문 기자 / 사진 일부 출처_뉴스1

◆ 남북공동선언문, 어떤 내용을 담았나

이날 오전 10시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을 수석대표로 하는 북측과 조명균 통일부 장관을 대표로 하는 우리 측이 만났다. 그리고는 전체회의 2회, 수석대표 접촉 2회, 대표 접촉 4회를 통해 만난 지 11시간 만에 남북은 3개 조항에 전격 합의했다. 당초 북측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의제로 남북고위급회담을 갖자고 서로 동의했던 만큼 첫 번째 조항은 평창 올림픽과 관련된 내용이다. 즉, ‘남과 북은 남측 지역에서 개최되는 평창 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대회가 성공적으로 진행돼 민족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로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북측은 평창동계올림픽대회에 고위급 대표단과 함께 민족올림픽대표단, 선수단, 응원단, 예술단, 참관단, 태권도시범단, 기자단을 파견하기로 하고 남측은 이에 필요한 편의를 보장한다’는 내용이다.

공동선언문의 두 번째 항목은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한 당국 회담을 개최한다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는 ‘남과 북은 현 군사적 긴장상태를 해소해 나가야 한다는데 견해를 같이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군사당국회담을 개최하기로 했다. 남과 북은 다양한 분야에서 접촉과 왕래, 교류와 협력을 활성화 하며, 민족적 화해와 단합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 조항은 ‘남과 북은 남북선언을 존중하며 남북관계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들을 우리 민족이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해 나가기로 했다. 이를 위해 쌍방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남북고위급회담과 함께 각 분야의 회담들도 개최하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따라서 남북은 ‘남북 고위당국자간 대화의 연속성 확보’를 위해 고위급회담을 계속 이어가기로 합의했다. 이날 추후 제2차 회담 시기와 장소 등에 대한 논의는 없었지만 판문점 남북 연락채널을 통해 북측과 협의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 세계가 관심을 가진 남북고위급회담

9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개최된 남북 고위급회담에 미국을 비롯해, 중국·일본 등 주요 나라들이 관심을 보였다.

미 CNN 방송은 “남북한이 2015년 12월 이래 처음으로 대화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며 남북고위급회담을 조명했다. 특히 CNN은 미국의 안보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수미테러 선임연구원의 말을 인용해, 북한이 이번 회담을 통해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를 받아들이고 이에 대한 일정한 대가를 챙기는 수순으로 가게 될 것으로 예측했다. 북한이 우선 얻게 될 대가로 ‘개성공단의 재기’를 꼽았다.

중국 중앙(CC) TV도 이날 서울 주재특파원을 생방송으로 연결해 관련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하면 큰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장후이즈 지린대 동북아연구원 교수는 “이번 회담에서는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과 같은 민감한 주제를 건드리지 않겠지만 긴장 완화의 큰 시작으로 보이며 모든 당사국이 북핵 위기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기 위한 길을 열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일본은 회담을 통해 조성된 한반도 대화무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이로 인해 대북 경제제재 압박이 느슨해질 것을 경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문제로 한국이 북한과의 대화에 기울어지며 한미일 3개국의 대북 압력강화라는 틀이 흔들리고 있다”고 보도한 것이다. 미국도 이러한 기조를 보였다. 마이크 펜스 미 부동통령은 이번 고위급회담이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에 따른 결과’라면서 대북 압박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각 나라들이 보인 관심은 과연 ‘북한의 비핵화를 논의’이다.

◆ 비핵화의 길은 요원한 듯

주요국들이 관심을 보인 북한의 비핵화의 길은 쉽지 않을 듯하다. 남북이 합의한 공동선언문 내용으로 추측하자면 군사회담은 조만간 개최될 것으로 보이지만 비핵화 해법을 놓고는 입장차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9일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우리 측 수석대표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상호존중의 토대 위에서 협력하면서 한반도에서 상호 긴장을 고조하는 행위를 중단하고, 조속히 비핵화 등 평화정책을 위한 대화 재개가 필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북측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은 최종 공동선언문 발표를 앞두고 우리 측의 비핵화 발언에 강하게 항의했다. 이는 김정은 위원장의 의중이 아니겠느냐는 추측이다. 우리 측이 비핵화를 언급할 당시 북측에서도 별 다른 반응이 없다가 10시간이 지난 뒤에 격정을 쏟아냈다는 것은, 우리 측이 요구한 비핵화 대화 재개와 관련한 보고를 들은 김 위원장이 불만을 표시했고, 그 결과 리 위원장이 공동보고문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 같은 반응을 보였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리 위원장은 “우리가 보유한 원자탄, 수소탄, 대륙간탄도로켓을 비롯한 모든 최첨단 전략무기를 철두철미 미국을 겨냥한 것이지 우리 동족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면서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한 기존 입장에 변함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에 관해 국립외교원 신범철 교수는 “북한은 우리와는 비핵화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기조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비핵화 문제는 북미 양자간에 논의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아산정책연구원 최강 부원장도 “이번 남북회담과 합의가 북핵 문제 진전을 이어지리라 낙관하긴 어렵다”며 “이번 회담이 북핵 문제 해결의 전기가 될지에 대해서는 유보적”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남북대화의 물꼬는 생각보다 쉽게 텄지만, ‘비핵화’라는 최종 목적지까지는 험난한 여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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