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의려면 색의 계략을 짜라!

     
 
#1. 이 땅에 마천루가 없었던 80년대. ‘63빌딩’이 들어서자 사람들은 일제히 ‘개벽’이란 표현을 써가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해외여행조차 자유롭지 않던 시절이었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다.

이후 ‘63빌딩’은 미국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과 같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대한민국 대표 랜드마크로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1등’, 즉 최초란 수식어만 기억하는 망각의 동물이다. 대표적으로 달에 연착륙했을 때 우주선의 이름인 ‘아폴로11호’와 두 번째로 우주선에서 내렸던 ‘버즈 올드린’이란 이름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반면 달에 최초로 발을 디뎠던 ‘닐 암스트롱’은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어디까지나 ‘최초’란 수식어가 붙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63빌딩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더 이상 높은 30층짜리 고층아파트만으로 랜드마크를 만들 수 없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 랜드마크를 만들어야 할 때가 도래한 것이다.

다소 황당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랜드마크 전략을 위해 정중앙에 가장 높은 아파트 외벽을 빨간색 등 원색으로 칠하는 것은 어떨까? 물론 대다수 국가에서 도시미관을 해친다고 원색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긴 하지만 눈에는 확 띄니 욕은 먹을지언정 명물은 될 것이다. 그리고 꼭 원색이 아니더라도 미색 천지인 공동주택의 외벽 색깔을 주위 경관과 어울리면서도 독특한 개성을 가진 색채로 칠한다면 보는 사람도 즐겁고 부동산 가치 역시 자연스레 올라갈 것이다.

또한 현 시대가 정보사회를 거쳐 점차 감성 및 문화시대로 바뀌고 있고, 사람은 85%가 넘는 정보를 시각을 통해 얻는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된 바 있다. 그중 색채에 대한 느낌이 형태보다 사람 감성에 더 영향을 준다고 한다. 따라서 주변 경관과 적합하면서도 개성 있는 색채를 선택하는 것만으로도 그리 큰돈 안 들이면서 부동산 가치를 충분히 올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단 말이다.

색은 창조다. 색은 강조다. 색은 독창성이다. 그리고 표현이다
아파트 외관 디자인 색으로 표현하면 독창성과 실리 두토끼 잡는다

#2. 왜 아파트는 한결 같이 회색일색일까. 최근 들어 대형 구조물에 색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지만 아파트는 아직까지 독창적 컬러를 입히는 일은 드물다. 수천 명에 달하는 입주민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다. 단순히 사람들의 서로 다른 욕구를 충족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일률적이고 획일적인 색을 입히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 혹자는 튀는 색은 쉬이 식상할 수 있다는 말을 한다. 그래서 눈에 들어오지 않는 색으로 아파트 외관을 입힌다. 이것이 오래도록 지속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뒤집어 생각하면 모든 아파트 외관에 색을 그렇게 입히니 100년 아니 적어도 50년은 지속해야 할 내가 사는 아파트가 랜드마크 아파트와는 동떨어진 건물이 되는 것은 아닐까.

재개발 재건축사업의 성공 척도는 사업성에 있다. 사업성의 가장 큰 기준은 용적률이 될 것이다. 동일한 대지면적에 얼마나 많은 바닥면적을 확보하느냐가 사업성의 제1호 관건이다.

그렇지만 용적률은 땅이 위치하는 곳에 따라 법적으로 용도지역이 정해져 있으며, 관(官)과의 협의를 통해 1단계 종상향이 이뤄질 뿐이다. 아무리 용적률을 500%, 1000% 달라한들 들어주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또 다른 대안은 없을까. 이렇게 해서 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디자인이다. 주변에 빼곡히 들어서 있는 아파트에 비해 내가 사는 아파트가 가지는 장점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방안 또한 디자인이다. 디자인이 우수하면 이목의 집중으로 차별화를 끌어낼 수 있다. 이는 분양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서울시는 오세훈 시장을 필두로 하여 독창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는 건축물에 대해 용적률 등 각종 인센티브라는 당근을 제시하고 있다. 이름 하여 ‘디자인 서울’ 주창의 일환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있다. 재건축 재개발로 건립되는 신규 아파트를 포함하여 모든 건축물에 대해 건축심의를 거치는데 심사의원들이 디자인을 이유로 심의통과를 보류한다. 독창적인 디자인이어야 한다는 이유가 그것이다.

이로 인해 다양성을 중시하는 디자인 부문에서 획일성을 만들어내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

서울시는 아파트 입면 다양화를 위해 발코니 일부를 삭제하는 수법을 권장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 일부 세대의 평면구조 변형이다. 통상 아파트는 발코니를 두고 있고 희망하는 경우 발코니확장을 통해 넓은 실내구조를 만든다. 발코니 일부 삭제는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발코니확장을 자체적으로 금하는 것은 물론, 이로 인해 마땅히 누려야 할 넓은 평면구조를 이용치 못하는 결과를 만든다. 서울 관악구 까치산재건축 조합장은 건축심의에서 여러 차례 보류 판정받은 바 있다. 입면구조 다양화의 측면에서 일부세대 발코니삭제를 이유로 들었다. 지금이야 원활하게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2011년 초인 당시, 조합장은 격분해 있었다. 그분의 말은 이랬다. “발코니를 없애 디자인을 우수하게 만들면 없어진 발코니를 가진 세대는 좋아하겠느냐. 평당 가격이 얼마인데 7~10㎡(2~3평, 발코니 면적 대비 30% 안팎)을 쓸 수 없다고 하면 누가 분양받으려 하겠냔 말이다.”

이에 대해 당시 강남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의 말은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 “아파트를 분양할 때 전용면적으로 분양하지만 분양자가 이를 다시 시장에서 거래할 때 공급면적 기준으로 따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발코니가 줄어들면 전용 85㎡안팎의 아파트는 확장 후 실내면적에서 6.6~9.9㎡(2~3평)의 차이가 생긴다.” 3.3㎡(평)당 3,000만원을 웃도는 강남권 아파트의 경우 6,000만~9,000만원의 시세 차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디자인…형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디자인에는 총 4가지 요소가 있다. ‘선, 색채, 형태, 재질’이 그것이다. 서울시는 이중 형태만을 심의대상에 놓기 때문에 결국 획일성을 피하기 어렵다. 생각해 보자! 입면건축의 가이드라인은 누가 만드는가. 그리고 건축심의는 또 누가 하는가. 결국 “그 사람이 그것을 한다.”는 말이 나올 법 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심의의원이 주창한 내용에 따라 아파트 입면건축설계가 이뤄져야 비로소 심의에 보류되지 않는다. 이 또한 디자인의 모순이다. 다양해야 할 디자인이 기형적 획일성을 추구하게 되는 형국이다.

앞서 언급한 디자인의 4가지 요소 중 하나라도 적용되면 건축심의 통과기준에 포함되어야 한다.

정림건축의 이성덕 건축사는 아파트를 설계할 때 제일 먼저 고려해야 할 사항이 지형이라고 말했다. 이성덕 건축사는 말했다. “주택은 대지위에 지어지는 구조물이기 때문에 가장 우선해야 할 사항은 건축물이 들어설 땅의 생긴 모양이다. 그 다음으로 역사나 문화 등 지역적 특색을 고려해 설계해야 한다.”

이 건축사의 말에 따르면 건축구조물의 디자인은 자연과의 어울림을 최우선시 하며, 자연의 활용을 통한 건축물 설계가 최적의 구조물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건축사뿐만 아니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독창적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주변지형과 어울림이 없는 디자인은 흉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주변과의 공감력을 가질 수 있는 건축디자인이 선행되어야 한다. 형태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 건축물이 흐르는 선, 색채, 형태, 재질 등 모두를 심의 대상에 포함해 어느 하나가 부각되어 어울림 속 독창성을 가질 수 있다면 당연 으뜸 디자인으로 주목시켜야 한다.

100년 바라보는 건축물 ‘흉물’ 아닌 ‘명물’되어야

디자인은 ‘용도에 적합’해야 한다. 디자인은 ‘원래 그러니까’라는 단어를 멀리해야 한다. 그리고 디자인은 ‘사람 중심’이어야 한다. 그래야 오래도록 흉물이 아닌 명물이 될 수 있다.

디자인의 원리 중 강조(emphasis)가 있다. 시각적인 힘의 강약에 단계를 주어 디자인의 일부분에 주어지는 초점이나 흥미를 중심으로 변화, 변칙, 불규칙성을 의도적으로 조성하는 것을 말한다.

디자인에서 강조는 주의를 환기시키거나 규칙성이 갖는 단조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사용되며, 관심의 초점을 조성하거나 흥분을 유도할 때 사용되기도 한다.

건축물의 외관을 남다르게 하는 것도 강조이며, 색채의 유용도 강조의 관점에서 널리 쓰인다.

이런 측면에서 색의 중요성이 다시금 부각되는 것이다. 색은 앞서도 말했듯 주위를 환기시킨다. 즉, 랜드마크라는 독창성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다.

요사이 상업용 건축물에서 색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져 주변과 다른 색을 쓰는 건축물이 늘고 있다. 하지만 공동주택에서는 아직까지 독창적이라 할 만한 색의 조화를 이룬 건축물은 나타나고 있지 않다. 2009년 10월에 준공된 경기 고양시의 현대건설 브랜드 ‘힐스테이트’가 로고 색에 맞춰 외관 채색을 달리한 사례가 하나 있을 뿐이다.

색채 또한 모든 아파트가 사용하게 되면 식상함을 면할 수 없다. 그래서 위험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공동주택에서 색에 대한 인식은 낮다. 독특한 우리아파트만의 색을 입히는 것은 주변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며 더 나아가 독창적 디자인으로 인식될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다.(당신의 재개발 또는 재건축사업에서 최초로 시도해 보라! KBS MBC등 방송매체는 물론 각종 언론에 대서되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색은 서울시의 외관 디자인 다양화가 가져오는 부작용 즉, 입면적을 헤치지 않는다. 색은 우리의 특징을 말해준다. 색은 동일성을 멀리한다.

당신은 어떻게 보는가. 주변과의 통일성을 주장하겠는가. 아니면 차별화를 추구해 독창적 사업으로 갈 것인가. 무엇을 선택하든 이것은 당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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