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염정민 기자] 나노(Nano)는 국제단위계(SI 단위계)의 접두어로 1/10억을 의미한다. 이때 1nm(나노미터)는 10억 분의 1m를 의미하는 것으로. 원자 반지름이 대략 0.1nm임을 고려한다면 nm(나노미터) 영역을 다루는 나노 기술 분야가 얼마나 고도의 정밀도를 요구하는 분야인지 짐작이 가능하게 한다.

과학자, 공학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외계 언어로 취급되던 나노 기술이 일반인에게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04년 영국 맨체스터 대학의 안드레 가임(Andre Geim), 콘스탄틴 노보셀로프(Konstantin Novoselov) 공동 연구팀이 흑연에서 ‘그래핀(Graphene)’을 추출하는 것에 성공하면서부터라고 볼 수 있다.

▲ 그래픽_황규성 시사그래픽 전문기자

흑연은 탄소들이 벌집 모양의 육각형 그물처럼 배열된 평면들이 층으로 쌓여 있는 구조로 되어 있는데, 이 흑연의 한 층을 그래핀이라고 부른다. 가임과 노보셀로프 교수팀은 스카치테이프를 사용하여 흑연 덩어리에서 그래핀을 추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그들의 업적이 별거 아닌 것으로 치부되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래핀의 물리적 성질은 강철보다 200배 강한 강도를 자랑하고, 구리보다 100배 이상 전기를 잘 전도시키며, 다이아몬드보다 열전도성이 2배 이상 좋기 때문에, 가임과 노보셀로프 교수팀은 2010년에 그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이런 그래핀의 대중적 성공에 힘입어 초창기의 나노 기술은 주로 나노 단위의 원소들을 잘 결합하여 새로운 물리적 성질을 가진 신소재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기술적 역량이 높아지면서 나노 기술 분야는 점차 그 범위를 넓히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나노 기술의 전통적 분야였던 그래핀과 같은 신소재 개발 분야 외에도, 나노 전자, 나노 머신, 심지어 의료 분야인 나노 바이오 분야까지 그 범위를 확장하고 있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 건재한 나노 소재 분야

2000년대를 거쳐 2010년대 초반까지 그래핀 돌풍으로 나노 기술은 신소재 부분이 특히 부각되는 경향이 강했다. 최근에는 나노 기술 적용 분야의 확대로 이런 경향이 덜하다고 볼 수 있지만, 여전히 신소재 부분에 대한 나노 기술 적용은 활발한 편이다.

최근 국내 선박용 도료 전문생산업체인 비엔철강 케미칼은 KAIST, 현대 중공업과 함께 그래핀을 이용한 선박용 감쇠재 개발에 성공, 생산에 들어갔다고 발표했다.

감쇠재는 프로펠러나 스크류 등에서 주로 발생하는 진동과 소음을 저감시켜주는 소재인데, 이번에 개발된 신소재는 기존의 감쇠재가 충분히 저감할 수 없었던 200Hz 이하의 저주파 영역 대에서의 진동과 소음을 저감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감쇠재는 이미 30만 ton급 VLCC(원유 운반선)에 적용되었고 테스트 결과 발생한 진동, 소음의 50% 이상을 저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삼성전자 종합 기술원 소속인 손인혁, 두석광 연구팀은 기존 리튬 이온 전지보다 충전 용량을 45% 향상시키면서도 충전 속도를 5배 이상 빠르게 하는 배터리 소재 ‘그래핀 볼’을 개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배터리 소재는 고속 충전 기술을 적용할 경우, 기존의 완전 충전 시간인 1시간을 12분 이하로 단축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특히 고온에도 안정성이 뛰어나 전기 자동차 배터리 분야에서도 적용이 기대될 정도로 성능이 우수하다고 전해졌다.

과거 신소재 분야의 나노 기술이 그래핀의 추출 방법이나 원가의 절감 등에 맞추어진 것에 반해, 현재는 감쇠재나 배터리 소재 개발의 예에서 보듯이 그래핀이나 나노 기술을 이용하여 개발한 신소재를 제품에 적용하는 단계로 나노 기술은 성숙되었다고 볼 수 있다.

◆ 점점 다가오는 나노 머신 시대

나노 기술은 신소재 개발 뿐 아니라 나노 부품을 생산하여 나노 머신을 제작하는 단계에까지 진입하려고 하고 있다.

지난 12월 28일 한국 전기 연구원(KERI)은 온라인망을 이용하여 300명을 대상으로 ‘대표성과 투표 이벤트’를 진행하였고, 그 결과 ‘3D 나노 전자 잉크와 잉크 기반 고정밀 3D 프린팅 기술 개발’이 2017년 한국 전기 연구원 최고의 성과로 선정되었다고 발표하였다.

이 기술을 개발한 설승권 책임연구원 팀은 탄소 나노 튜브(CNT)와 은(Ag) 나노 입자로 전자 잉크를 제작하고, 이 전자 잉크로 초미세 전자 회로를 구성할 다양한 입체를 프린팅 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설승권 연구팀이 개발한 기술로 본격적인 나노 머신의 시대가 도래 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이번에 확보한 기술은 기존 2D 기반 기술의 한계를 뛰어 넘었고 기술의 완성도가 높아질수록 더욱 더 미세한 입체 구조 제작을 기대할 수 있다고 평가를 받고 있기에 관련 업계의 기대가 높다.

◆ 잰 걸음으로 달리고 있는 나노 연구

2017년 10월 25일. 유명 과학 학술지인 ‘네이쳐(Nature)’지의 온라인 자매지인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김민준 서던 메소디스트 대학 석좌 교수팀의 나노 로봇에 관한 논문이 게재되었다.

김민준 교수가 개발한 나노 로봇은 흔히 상상하는 것처럼 100% 기계 공학 기술이 적용된 것은 아니고 박테리아의 편모에 초상자성(superparamagnetic) 나노 입자를 결합한 일종의 생체 로봇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김민준 교수의 나노 로봇은 자성을 띤 나노 입자를 사용하여 제작한 덕분에, 외부에서 자기장을 이용하여 나노 로봇을 원하는 곳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중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전해진다.

정확한 비유는 아니지만 전문적인 지식을 배제하고 단순하게 비유하자면 플라스틱을 사이에 두고 철 조각을 자석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처럼, 김 교수 팀의 나노 로봇은 인간의 신체 내에서 외부 제어 장치에 의해 김 교수가 의도한 곳으로 이동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노 로봇의 이런 특징은 암 치료 방법 등에 획기적으로 사용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김 교수팀의 나노 로봇은 외부 제어로 원하는 곳에 이동할 수 있어 나노 로봇을 암 세포에 접근시킬 수 있고, 암 세포에게만 치료제를 투여하는 등의 정밀 폭격과 같은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향후 김 교수의 나노 로봇이 완성도가 높아진다면, 방사선을 쬐거나 항암 약품의 효과로 정상 세포도 파괴되는 등의 부작용이 높은 기존 방식의 항암 치료가 근본적인 방식에서 변화를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의료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편 김 교수의 나노 로봇 기술이 완성될 경우 나노 로봇의 외부 제어가 가능하다는 면에서 바이오 분야뿐 아니라 산업 부분에서도 그 이용 가능성을 검토해 볼 수 있다. 인간이 작업하기 어려운 미세한 기계 부분에 나노 로봇을 투입하여 초정밀 작업을 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4차 산업 혁명의 도래로 과학 기술은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발전할 것이고, 인간의 삶은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국가도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원천 기술을 개발, 보유해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원천 기술을 확보한다면 다른 분야로 파급력이 클 수밖에 없는 나노 기술이 그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뉴스워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