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김영욱 시사컬럼니스트] 1987년은 한국 현대사에서 기념비적인 해다. 몇 십 년 동안 이어진 군부 독재가 막을 내리고 직선제 개헌안이 공포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해 6월에 있었던 민주항쟁은 거대한 분수령을 이루었다. 그때 국민들이 거리에 나와 한목소리를 내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요원했을지 모른다.

6월 항쟁은 영화 <1987>을 통해 진중함과 가슴 먹먹함으로 뭇 대중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당시 서울대생인 박종철 군이 물고문을 받다 ‘탁하고 치니 억하고’ 어이없이 목숨을 잃었다. 이어 연세대생 이한열 군은 부도덕한 정권에 항거하며 시작된 시위 도중 교문 앞에서 SY44 최루탄을 맞고 꽃답던 젊은 생을 마감했다.

▲ 그래픽_황규성 시사그래픽 전문기자

필자에게도 1987년은, 4월 명동성당 앞 시위도중 경찰에 연행되어 대학을 휴학, 군에 강제 입대한 ‘먹먹한’ 해이기도 하다. 스물셋의 약관(弱冠)이었다.

600만 관객 돌파를 앞두고 있는 <1987>에, 독재시대 서슬 퍼런 감시를 피해 진실을 전하기 위한 위장잡지로 나오는 <선데이서울>은 창간연대가 1968년이었다. 1991년까지 나왔던 잡지인데, 우리나라 최초의 성인오락잡지이다.

강렬한 여성모델의 노출이 심한 파격적인 컬러화보와 광고로 유명했다. 이 잡지의 화보모델만 700명이 넘었다. 라면이 10원, 자장면이 50원이던 1968년에 <선데이서울>은 80쪽에 20원의 싼 가격이었다. 폐간되던 해인 1991년엔 1500원이었다.

당시 <선데이서울>의 돌풍은 대단했다. 원래 계획보다 1만 부 많은 6만 부를 찍었는데 두 시간 만에 다 동이 났다. 서울 태평로 앞에 있던 서울신문사 사옥 앞에 이 잡지를 사려는 가판소년들 때문에 현관문 유리가 깨지는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대중들이 이제 단조로운 일상과 일에서 벗어나, 재미난 읽을거리와 천연색 화보로 볼거리를 갈망하던 사회분위기를 일찍이 감지한 것이었다.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은 언론과 대립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경영 합리화를 내세웠다. 언론사에 정책적 특혜를 부여하고 상업차관의 혜택을 주는 등 ‘언론의 기업화’를 부추겼다. 이즈음 서울신문은 <선데이서울>을 자사 자매 주간지로 창간한다.

이는 군소출판사가 갖지 못하는 신문사에 대한 정부의 제도적인 혜택, 다매체경영과 자본축적, 기존에 구축해 놓은 전국 단위 매체 보급망이 자사 잡지를 유통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선데이서울>은 군사 독재정권이 혹세무민(惑世誣民)하기 위해 장려한 ‘3S’ 정책(섹스·스크린·스포츠)과 찰떡궁합을 이루며 20여년을 장수했다.

그 당시 <선데이서울>은 가난한 남자들, 사랑과 낭만이 사치인 시대에 성실한 근로자 상을 강요받던 시대에 일에 내몰린 수많은 사람들의 ‘로망’이었다.

한편 <1987> 장준환 감독은 이 결이 다른 디테일로 영화적인 재미와 완성도를 더한 숨은 볼거리를 최근 공개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서류와 신문에는 80년대를 그대로 재현하기 위한 제작진의 숨겨진 노력들이 곳곳에 담겨있다.

우선 모든 서류들은 80년대에 만들어진 타자기로 직접 활자를 치는 정성을 들였다. 신문은 수집가들에게 87년 1월 신문을 받아 고증했다. 당시 종이 질감을 그대로 구현하기 위해서 실제 신문을 인쇄할 때 사용하는 윤전기를 사용해 신문을 찍어냈다.

<선데이서울>의 경우에도 80년대 당시에 사용했던 종이를 수소문하여 실제와 거의 똑같이 만들어냈다. 영화 속에 나오는 서체 역시 80년대 사용했던 서체를 그대로 재현했다. 당시 대공수사처, 서울지검 등 80년대에는 관공서마다 사용하는 서체가 조금씩 달랐다. 이에 당시 서체를 쓸 수 있는 장인을 섭외, 한 글자 한 글자 완성해 나갔다.

故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와 티셔츠 등 영화 속에 등장하는 소품 등도 실제와 똑같이 만들었다.

장준환 감독은 “당시 운동하던 분들은 항상 달려야했기 때문에 신발이 벗겨지지 않도록 신발 끈을 묶는 방식도 달랐는데, 그것도 따라했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티셔츠와 청바지는 이한열 기념관에 남겨진 옷가지들을 보고 티셔츠 글자 자간까지 그대로 재현, 실제와 똑같이 구현하기 위해 굉장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밖에도 1987년 故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을 받고 사망한 용산 남영동 대공 분실 509호 고문실은 실제 사이즈와 거의 비슷하게 제작했다. 특히, 고문실 내 욕조는 특수소품팀에서 특유의 무늬까지 재현하는 등 영화에 리얼리티를 불어 넣기 위해 흠잡을 곳 없는 디테일로 완성도를 높였다.

이참에 영화 소품으로 나왔지만, 지금은 잡지박물관이나 국립도서관 한 켠에 소장돼 있을 법 한 <선데이서울>이 다시 보고 싶다.

<1987>를 통해 다시 부활한, 부정과 불의를 배척하고 정의에 바탕한 민주주의라는 묘목이 자랄 수 있도록 씨앗이 되었던 그들. 오늘 우리가 그들을 기억해야 하는 뚜렷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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