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김영욱 시사컬럼니스트] 몇 해 전 봄, 필자는 도쿄 미나토에 위치한 유리빌딩의 소니(Sony) 본사를 취재 차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눈길을 끈 것은 로비에 걸려있던 ‘디지털 드림 키즈(Digital dream kids)’라는 사내 캐치프레이즈.

소비자의 입장에서 “아, 정말 이런 제품을 갖고 싶었어”라고 말할 수 있는 디지털 상품을 만들자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는 게 홍보팀의 설명인데 이 캐치프레이즈를 바탕으로 최근 소니를 움직이고 있는 화두는 ‘연결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연결한다’는 인공지능(AI) 네트워크 구상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1946년 5월 7일 오후, 폐허가 된 도쿄 외곽의 허름한 건물에 스무 명 남짓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중심인물은 서른여덟 살의 이부카 마사루와 스물다섯 살의 모리타 아키오였다. 바로 20세기를 풍비한 세계적인 전자제국 ‘소니’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그래픽_황규성 시사그래픽 전문기자

소니는 일본의 다른 대기업, 즉 미쓰비시나 미쓰이, 스미토미 같은 회사와는 달리 전후에 만들어진 신생 기업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만들어내고자 하는 상품은 일본 국내에서는 첨단 기술이 요구되는 트랜지스터라디오 같은 음향기기다. 지금 개념으로 말하자면 스타트업 회사였던 것이다.

그 후 60여 년 간 소니는 끊임없는 독창적인 기술개발과 함께 세계화 전략을 추구해, 지구촌 유수의 기업들 가운데 상당히 짧은 역사를 갖고 있음에도 독보적인 존재로 성장하게 되었다.

1946년 테잎식 자기녹음기 제1호를 만들어냈으며, 1960년 세계 최초의 트랜지스터TV를 발매하고 텔레비전 시장에 진출했다.

1990년대 휴대용 음향기기인 ‘워크맨’을 유행시키면서 전자업계를 주름잡았던 소니는 2000년대 들어 맥을 추지 못했다. 주력 상품이었던 TV와 휴대폰, 카메라 등이 후발주자와의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LG와 삼성 등의 TV 산업 성장이 큰 타격을 입혔다. 소니의 쇠퇴는 일본이 내수시장에 집중하다 글로벌 경쟁에서 밀리게 된 일본의 ‘갈라파고스’ 현상을 설명하는데 종종 인용되기도 했다.

그러던 중 2012년 샐러리맨으로는 처음으로 소니 CEO가 된 기즈오 히라는 수년간 소니의 사업구도 재편에 힘쓰면서 소니의 ‘선택과 집중’ 전략을 구사했다.

히라이 CEO는 경쟁력이 작아진 TV 사업부문을 70% 가까이 축소해 분사했고 컴퓨터 사업에서도 손을 뗐다. 심지어 소니의 명성을 이끌었던 워크맨 사업부도 철수했다.

이러한 소니가 AI를 탑재한 반려로봇 ‘아이보(aibo)’를 지난 11일 공개했다. ‘단짝’이라는 뜻의 아이보는 1999년 개발돼 2006년 단종 될 때까지 15만대 이상 팔렸다. 부품 부족으로 사후서비스가 중단되자 구매자들이 유명 사찰에 모여 합동장례식을 치르기도 했다. 이들의 75%가 아이보를 ‘기계 이상의 존재’로 여겼고, 48%는 ‘생명체 같은 속성을 지녔다’고 평가했다. 주인에게 재롱도 부렸으니 그럴 만하다.

이전 아이보는 프로그래밍한대로 반응한다. 동작은 다소 엉성했고 메모리 스틱에 저장된 데이터에 의해 학습 능력도 제한받았다. 이에 비해 새로운 아이보는 클라우드 시스템을 통해 데이터를 수집한다. 새로운 아이보는 훨씬 똑똑하다.

‘2018 아이보’는 200만원(19만8000엔) 상당으로 길이 30cm, 무게 2.2kg 크기다. 아이보는 코끝에 탑재된 카메라를 통해 주인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분석·교감하면서 고유의 성격을 갖는 AI 반려로봇이다

진짜 강아지처럼 ‘멍멍’ 소리를 내며 달리고 꼬리를 흔들 기도 한다. 상호작용 능력 강화로 칭찬이나 미소, 머리를 쓰다듬는 행위를 감지해 어떤 반응이 주인을 만족시키는지 기억한다. 주인이 먼저 말을 걸지 않아도 주인을 찾아 나선다.

집에서 기르는 개나 고양이를 애완동물이라 하지 않고 ‘반려동물’로 부르기로 한 것은 1983년 오스트리아에서 개최된 국제심포지엄에서였다. ‘장난감이 아니라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라는 뜻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 1000만 명을 넘어섰다. 관련 시장 규모는 1조8000억 원. 미국에선 벌써 70조원을 돌파했다.

그러나 반려동물을 기르는 즐거움만큼이나 수고로움도 많다. 털 때문에 알레르기가 생긴다든지 배변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 이들을 대신할 새로운 친구가 AI을 갖춘 애완로봇, 즉 ‘AI 펫(pet)’이다. 소니는 이를 간과하지 않았다.

아이보 개발을 총괄한 가와니시 이즈미 소니 집행 임원은 “아이보는 개와 마찬가지로 주인이 애정을 쏟는 만큼 성격이 길들여진다”고 소개했다.

소니측은 “아이보가 소니 고유의 강력한 AI를 탑재하고 있다”며 “앞으로 가정용뿐 아니라 양로원, 학교, 병원 등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아이보 팬들의 뜨거운 반응도 이런 소니의 낙관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소니측은 “소니가 다시 로봇을 만든다는 것에 전율을 느낀다. 새로운 아이보가 소니 부활의 신호가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소니가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AI 반려로봇이라는 새로운 콘텐츠를 내 논 것에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또 소니는 ‘정말 대단한 회사’라는 것에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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