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박경희 기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입산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에 대해 결국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를 발동했다. 22일(현지시간) 로버트 하이저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보도자료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수입 세탁기와 태양광 제품에 대한 세이프가드 조치를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세이프가드 관세 부과 방안 승인에 따라 삼성과 LG를 비롯한 수입산 가정용 세탁기에 TQR(저율관세할당) 기준을 120만댈 설정하고 첫해에는 120만대 이하 물량에 대해선 20%, 초과하는 물량에는 50% 관세를 부과하도록 했다. 이렇게 되면 모든 삼성과 LG전자 세탁기의 가격이 지금보다 20% 인상된다. 그리고 2년차에는 120만대 이하 물량에 18%, 초과 물량에 45%를 부과하고 3년차에는 각각 16%와 40%의 관세가 붙는다.

태양광 수입품(2.5기가와트 기준)에 대해서는 1년 차 30%, 2년 차 25%, 3년 차 20%, 4년 차 15%씩의 관세를 물리기로 했다.

▲ 그래픽_황규성 시사그래픽 전문기자

로버트 하이저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이 승인·권고한 세이프가드는 자체조사와 자료수입, 독립적이고 초당적인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조언 등에 의거해 작성됐다”고 설명했다. ITC는 세탁기에 세이프가드 세금이 부과될 경우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대미 세탁기 수출이 절반이상 감소할 것으로 분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미국 세탁기 산업의 판매량, 매출, 영업이익이 2016년 대비 상당히 증가하고 판매가격도 약간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예상보다 빠르고, 강도 높게 결정

수입산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에 대한 미국의 세이프가드 결정은 2월 초에 최종결론이 날 것으로 국내 업계는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발표 시기가 예상보다 빨라진 것이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세이프 가드를 결정할 것이란 예상은 이미 하고 있는 상황이긴 했다. 지난 17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지적재산권 침해에 보복 조치를 경고하며 무역전쟁을 시사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산 세탁기를 거론하면서 “한국이 미국의 산업을 파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한때 좋은 일자리를 창출했던 우리 산업을 파괴하면서 세탁기를 미국에 덤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발언은 세이프 가드를 발동을 시사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미국은 이번 세이프 가드를 발동하면서 관세 부과 수위도 높였다. 당초 ICT 위원들 사이에서도 120만대를 초과하지 않을 경우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었다. 두 사람은 2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매년 2%씩 낮추는 방안을 내놓았고, 나머지 두 사람은 120만대에 대해선 추가 관세를 부과하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결국 120만대를 초과하지 않은 물량에 대해서도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 美, 반도체·철강 부문도 통상압박

미국은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 외에도 반도체와 철강 부문도 통상 압박을 하고 나섰다. ICT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을 상대로 차세대 저장 장치인 SSD 등의 관세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기로 한 것이다. ICT는 지난 19일(현지시간) 표결을 거쳐 한국과 중국, 대만, 일본, 미국 기업의 저장장치 등에 대해 관세법 337조를 위반했는지 여부를 조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관세법 337조는 미국 기업이나 개인의 지적 재산권을 침해한 제품에 대해 ICT가 수입 금지를 명령할 수 있는 조항이다. 이에 따라 한국 기업으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중국에서는 레노버와 대만 에이수스, 일본 바이오, 미국 기업으로는 델과 HP가 조사를 받게 된다. 이는 미국 반도체 기업 비트마이크로가 지난 9일(현지시간) 이들 제품의 수입이 관세법 337조를 위반했으며 자사가 보유한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한 것에 따른 것이다.

뿐만 아니라 ICT는 지난 17일(현지시간) 한국, 중국, 캐나다, 그리스, 인도, 터키 6개 국가에서 수입한 대형구경강관에 대한 반덤핑·상계 관세 조사를 시작했다. 미국은 이미 우리 기업이 수출하는 철강재의 약 82%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고 있지만 송유관 제작에 사용되는 대형구경강관은 아지 관세가 부과하지 않은 품목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관세 조사를 시작하게 된 것은 미국의 6개 철강업체에서 한국산 제품에 23.52%의 덤핑 마진을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과 요청 때문이다.

◆ 무역전쟁 선포한 트럼프에 韓·유럽연합(EU) 공동 대응 나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에 지적재산권 벌금을 매길 것이라고 선포하면서 철강·알루미늄·태양광 패널 반덤핑 조사와 관련해 무역전쟁 가능성을 시사했다. “무역전쟁을 바라지는 않지만 일어나면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에 한국은 유럽연합(EU)과 함께 글로벌 보호무역주의에 공동으로 대응해 나가기로 했다. 우리 산업통상자원부는 19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EU 집행위원회와 ‘제7차 한·EU 무역위원회’를 개최하고 이같이 논의한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양측은 2011년 7월 발효된 한·EU FTA를 기반으로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보호무역주의 추세에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특히 미국이 발동한 태양광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와 관련해서도 공조 방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산업부는 세계무역기구(WTO)와 주요20개국정상회의(G20),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등 다자경제통상회의에서도 협력을 강화해 글로벌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미국대 전 세계와의 무역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 통상 전쟁이라는 것이 그렇듯이 승자에게도 패자에게도 손실은 있는 법이다. 모두에게 출혈을 가져올 무역전쟁을 트럼프 대통령은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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