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김영욱 시사컬럼니스트] 지구상의 인류가 직면한 핵전쟁의 위험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섬뜩한’ 시계가 있다. ‘운명의 날 시계’(Doomsday Clock)다. ‘지구 종말 시계’라고도 불린다.

1947년 어느 날 미국 예술가 마틸 랭스도르프에게 물리학자인 하이먼 골드스타인이 찾아왔다. 골드스타인은 랭스도르프에게 핵무기의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해 준비 중인 핵과학자회보 <불리튼>(Bulletin of Atomic Scientist· BAS) 표지에 들어갈 그림을 부탁했다.

랭스도르프는 우라늄을 뜻하는 ‘U’자 도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핵무기의 위중함을 피부로 느끼기 힘들다는 지적에 오렌지색 바탕에 초침이 움직이는 시계로 수정했다. ‘운명의 날 시계’는 이렇게 탄생했다. 

▲ 그래픽_황규성 시사그래픽 전문기자

<두산백과> 등에 따르면, 운명의 날 시계는 핵전쟁 위기를 경고하기 위해 미국 시카고 대학 핵물리학자회를 중심으로 아인슈타인 등 원자폭탄 개발프로젝트 ‘맨해튼 프로젝트’의 주요 과학자들이 참여해 만들었다.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톰보이’ 등 대량살상무기 원자폭탄의 구상이 ‘맨해튼 프로젝트’다.

운명의 날 시계는 <불리튼> 표지에 1947년부터 게재해 왔으며, 핵물리학자들은 핵의 발달상황과 지구오염도, 국제관계의 긴장정도 등을 반영, 부정기적으로 시계의 분침을 고쳤다.

잡지를 발행할 때마다 지구 곳곳에서 진행 중인 핵실험이나 핵무기 보유국들의 동향과 감축 상황을 면밀히 살펴 분침을 조정하는 것이다.

1947년 처음 등장할 당시 11시53분으로 맞춰진 분침은 이후 24번이나 바뀌었다

처음에 이 시계는 자정 7분 전에서 출발했다가 1953년 미국과 소련이 수소폭탄 실험을 했을 때 2분 전으로 자정에 가장 가깝게 다가갔다. 자정이란 인류의 파멸을 가져올 전면적인 핵전쟁 발발을 의미한다.

1991년 미국과 러시아가 전략무기감축협상에 서명하고 핵무기 보유국들 사이에 화해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당시에는 17분 전까지 조정되어 가장 안전한 때였다.

그러나 1995년 시계는 14분 전으로 조정되었고, 1998년 6월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실시하고 핵무기 보유국들이 핵 감축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게 되면서 다시 9분 전으로 조정되었다.

이후 6번의 변동을 거쳐 2017년 2분 30초전으로 조정되면서, 1953년 이래로 지구 종말에 가장 가까운 시간으로 가록됐다.

그러나 운명의 날 시계는 올해 또 다시 움직였다. 불행하게도 뒤로 늦춰진 게 아니라 더 빨라졌다. 이제는 인류 멸망까지 2분밖에 안 남았다. 운명의 날 시계가 전년보다 자정을 향해 30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지난 25일(현지시간) BBC에 따르면 시계의 시간을 결정하는 ‘BAS’측은 이날 미국 워싱턴DC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계가 더욱 위험해졌다”며 시간 조정을 발표했다. 

이들이 지적한 가장 큰 위험 요인은 한반도의 북핵 위기다. BAS의 라헬 브론슨 회장은 “올해 핵 이슈가 다시 중심에 섰다”며 북한이 실시한 일련의 핵·미사일 실험, 북한과 미국이 주고받은 ‘말의 전쟁’ 등을 거론했다.  
  
또 러시아와 서방 사이의 긴장 고조, 기후 변화와 같은 글로벌 위협을 다루는 기관의 약화도 시간 조정의 요인으로 꼽혔다. 
 
BAS측은 트럼프 대통령의 예상 불가능하고 논쟁적인 트위터 글과 각종 발언도 위험 요소라고도 지적했다. 

자칫 한반도 긴장이 전 인류의 멸망을 가져올 촉매가 될 수 있다는 경고에 섬뜩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북한 핵 도발은 막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김정은의 도박으로 어느 순간 ‘운명의 날 시계’가 자정으로 치닫는 최악의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정부는 냉철하고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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