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김영욱 시사컬럼니스트] 창원지검 통영지청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부통신망에 ‘나는 소망합니다’는 고발 글을 올리고 TV 뉴스에 출연해 검사장 출신의 고위 간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서 검사는 다른 검찰 간부들에게도 수차례 성희롱을 당했다고 했다.

서 검사에 따르면 서울북부지검에서 근무하던 2010년 10월30일 한 장례식장에서 옆자리에 앉은 안태근 당시 법무부 정책기획단장으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했다.

이귀남 당시 법무부 장관과 함께 장례식장을 찾은 안 전 검사는 술이 많이 취해 있었고, 주위에 검사가 많은 데다 바로 옆에 장관도 있어서 항의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안 전 검사는 지난해 6월 법무부 검찰국장 시절 ‘돈봉투 만찬사건’으로 옷을 벗은 장본인이다.

▲ 그래픽_황규성 그래픽 전문기자

서 검사는 고백 글에서 그동안 겪었던 고통을 기술했다. 성추행 트라우마로 유산을 했다는 사실도 털어놨다. 그는 살기 위해 잊으려 노력했지만 그날 그곳에서의 행동, 숨결, 그 술냄새가 더욱 도렷이 새겨졌다고 했다. 그리고 “모든 것은 다 내 탓이다. 모든 것은 다 내 잘못이다”고 절규했다.

서 검사는 해당 고위간부가 성추행도 모자라 인사 불이익까지 줬다고 주장했다.

사과는커녕 오히려 2014년 느닷없이 사무감사에서 검찰총장의 경고를 받은 데다 2015년엔 원치 않는 지방에 발령받는 인사조치까지 당했다는 게 서 검사의 주장이다. 전후 과정을 볼 때 안 전 검사장의 윗선까지 나서 조직적으로 사건을 덮으려 한 정황이 짙다.

사실관계 조사가 필요하지만, 다른 곳도 아니라 성범죄를 엄단해야 할 사법권력의 정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의혹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는 청원이 잇따를 정도로 국민적 공분이 확산되는 게 당연한 일이다.

안 전 검사장은 이와 관련, 당시 술을 마신 상태라 기억이 없고 인사나 사무감사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이었던 최교일 자유한국당 의원도 전혀 모르는 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현직 여검사가 8년이나 지나 여러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내부 고발을 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사건 이후 벌어진 정황들은 서 검사의 주장에 신빙성을 더한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지난달 30일 철저한 진상조사와 그에 따른 응분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검찰은 지난달 31일 대규모 조사단을 구성, 활동에 들어갔다. 성추행 의혹은 물론이거니와 당사자 등 법무부 고위간부들이 이후 인사 불이익 등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는지 여부에 집중적인 조사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의 법과 질서를 바로 세우고 국민의 안녕과 인권을 지키는 국가 최고 법집행기관이라는 검찰에서 성폭력이 저질러졌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서 검사는 그동안 여러 차례 문제를 제기했으나 묵살당했다. 일반 직장도 마찬가지다. 권익위원회, 여성가족부, 고용노동부도 성범죄 피해 신고를 받고 있으나 피해자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서 검사는 문제 제기 과정에서 “잘나가는 검사 발목이나 잡는 꽃뱀이라는 소리도 들었다”고 했다. 공개한 이유에 대해서는 “범죄 피해자분들께, 그리고 성폭력 피해자분들께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것을 얘기해 주고 싶다”고 했다.

여검사 성추행 사건은 이번뿐 아니라 잊을 만하면 불거져 왔다.

지난해 8월 서울서부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후배 여성검사를 성추행한 혐의로 면직처분 됐고, 2015년 서울북부지검에서도 부장검사가 회식 자리에서 후배 여검사를 껴안았다가 징계를 받았다.

2014년에는 목포지청 검사가 동료 여검사에게 강제로 입을 맞추는 등의 성추행으로, 2011년에는 현장 실무교육 중이던 여성 사법연수생을 성추행한 검사들이 대거 징계를 받았다.

조직 내 성범죄가 빈발하고 근절 대책을 내놓아도 구두선으로 그치고 있다. 검찰은 철저한 진상 규명과 함께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

조직 내 성범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검찰 상층부의 안이한 인식도 그 한 요인일 수 있다.

이번 의혹마저 얼렁뚱땅 넘어간다면 제2, 3의 서 검사가 언제든 나올 수밖에 없다. 결코 묵과(默過)해선 안 된다. 더불어 검찰은 인권과 준법정신의 수호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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