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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워커_김영욱의 동서남북] 기지촌 여성 윤금이氏 이젠 편히 잠 들라
김영욱 시사칼럼니스트  |  2580@newswork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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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10  07:5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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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워커_김영욱 시사컬럼니스트] 1992년 10월 28일 오후. 경기도 동두천 소재 미군 전용 클럽에서 일하던 20대 중반 여성이 자신의 단칸방에서 너무도 잔인하고 처참한 모습의 시체로 발견됐다. 자궁엔 맥주병과 콜라병이, 항문엔 기다란 우산이 꽂혀 있었다.

그리고 입엔 한주먹의 성냥개비가 담겨 있었고, 피투성이가 된 온몸엔 하얀 세제 가루가 뿌려져 있었다. 차마 눈뜨고는 보기 어려운 끔찍한 모습이었다.

미군 제 2사단 1연대 의무병 케네스 리 마클이 기지촌 여성을 무참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사건이다. 당시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이른바 ‘윤금이 사건’이다.

윤금이 사건의 후폭풍은 컸다. 소름 끼치는 살인에 충격 받고 분노한 동두천 시민들은 미군 캠프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였고, 택시기사들은 미군 병사들의 탑승을 거부했다.

   
▲ 그래픽_황규성 시사그래픽 전문기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2년 11월 검찰이 이 사건에 대해 적극적이고 철저하게 수사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자, 전국에 걸쳐 약 50개의 시민단체들이 ‘주한미군의 윤금이 씨 살해사건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윤금이의 보호자 역할을 했던 전우섭 목사는 자신의 수필에서 “그녀의 죽음은 민족의 자주권과 민족의 자존심이 죽은 것”이라고 한탄하며 “한국인들이 민족 독립과 한반도 통일을 쟁취하기 위해 함께 일어서자”고 호소했다.

그로부터 26년이 지난 2018년 2월 8일, 국가가 주한미군 기지촌을 운영·관리하면서 성매매를 조장하고 정당화하는 등 성매매를 방조한 책임이 있다는 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윤금이 사건으로 촉발된 국가소송 판결이다.

법원은 이모씨 등 117명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정부는 원고 전원에게 각 300만원과 700만원의 위자료와 그 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정부는 원고들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성(性)으로 표상되는 인격 자체를 국가적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삼았다”면서 “자발적으로 기지촌 성매매를 시작했다 하더라도 정부가 이를 이용해 원고들의 성과 인간적 존엄성을 군사동맹의 공고화나 외화 획득 수단으로 삼아 원고들이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74명의 피해여성에게 국가가 각 700만원을 배상하라고 했고, 1심과 달리 전염병예방법 시행 이후에도 낙검자 수용소(일명 ‘몽키하우스’)에 격리된 여성들에 대해서도 국가의 책임을 인정해 43명에게 각 3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국가의 불법적인 기지촌 조성과 운영·관리, 조직적이고 폭력적인 성병 관리, 성매매 정당화·조장 등 위법 행위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과거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경찰 등에서 작성한 공문에 따르면 정부가 전국의 기지촌 시설이나 성매매 행위를 ‘개선’하고자 했고, 기지촌 위안부에게 이른바 ‘애국교육’을 실시하며 “외화를 벌어들이는 애국자”로 추켜세우는 등 정부가 적극적으로 성매매를 조장했다는 것이다.

이씨 등은 1957년부터 1990년대까지 국내 미군기지 근처 기지촌에서 미군을 상대로 한 성매매에 종사한 여성들이다.

이날 법정에서 선고를 지켜보던 기지촌 피해자들은 재판장의 판결 선고가 끝나자마자 곳곳에서 울음을 터뜨리며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한편, 1960년대엔 수많은 양공주들이 주한미군에 의해 죽으면 동료들이 미군 부대 정문에 가서 항의시위 한 번 벌이면 그만이었다. 위로금이나 장례비라도 한 푼 받으면 오히려 고맙게 생각했다. 그 무렵 미군 부대 주변의 양공주들은 한국사회에서 경멸의 대상일 뿐이었다.

‘위안부’는 일본 제국주의시기 성노예제의 피해자를 가리키는 용어다. 이 단어는 원래 가해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치욕적인 용어다. 조직적 성폭력을 ‘성적 위안’으로 포장했기 때문이다.

관련 시민단체와 한국 정부가 이 단어를 쓸 때 반드시 따옴표를 붙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유엔 역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일본군 성노예(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라고 지칭한다.

미군 기지촌 성매매 여성들이 자신들을 ‘미군 위안부였다’고 말하는 것은 스스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와 동일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1970년대까지 이 단어가 ‘군인을 위안하는 직업여성’이라는 뜻으로 공공연하게 쓰였고, 이들의 인권침해 상황을 국가가 묵인하고 관리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1961년 서울시가 시행한 ‘유엔군 상대 위안부 성병관리사업’, 1957년 시행된 ‘전염병예방법시행령’등 공문서에서도 이들은 ‘위안부’로 지칭됐다.

이번 기지촌 여성 성매매에 대한 국가책임 판결의 단초(端初)인 윤금이씨가 하늘나라에서나마 편히 잠들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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