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박경희 기자] “미국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물론 미국의 응답이 남아 있긴 하지만 평창 동계올림픽 전과는 사뭇 달라진 북한의 태도에 한반도에 평화무드가 조성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 문 대통령, 김영철 부위원장에 비핵화 방법론 제시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 참석을 위해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등 제 2차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25일 방남했다. 그리고 오늘 북한 선수단·응원단과 함께 육로를 이용해 귀환한다.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방남을 시작으로 하여 김영철 부위원장까지 회동하면서 평창 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들고자 했던 문 대통령의 노력은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록 김여정 제1부부장과 미국의 펜스 부통령과의 만남은 불발됐었지만, 문 대통령은 김영철 부위원장과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북미대화의 초석을 깔아놓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 그래픽_황규성 그래픽 전문기자

문 대통령은 김영철 부위원장이 방남했던 25일부터 평창에서 비공개로 만났고, 26일에는 북측대표단과 함께 오찬의 자리를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북미대화의 필요성과 북미대화의 핵심 주제인 비핵화, 그리고 그 방법론까지 언급했다고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에 김 부위원장 일행은 진지하게 경청했고, ‘미국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는 것이다.

청와대에서 정확하게 밝히진 않았지만 문 대통령이 언급한 비핵화 방법론은 핵 동결에 이은 핵폐기까지 ‘2단계 북핵 폐기론’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는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중단하고 비핵화 논의를 위한 대화의 장으로 나온다면 미국 등 국제사회가 단계별 상응 조치를 협의해 나가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작년 6월 첫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으로 향하던 전용기에서 문 대통령은 “핵 동결은 대화의 입구이고, 그 대화의 출구는 완전한 핵 폐기와 함께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기 때문이다.

◆ 미국, 대화의 문 살짝 열었지만 고강도 압박도 이어가

북한이 “미국과 대화할 의향이 있다”고 밝히자 미 백악관은 “우리는 대화할 의향이 있다는 북한의 오늘 메시지가 비핵화로 가는 길을 따르는 첫걸음을 의미하는지 볼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또한 “미국과 올림픽 주최국인 한국, 그리고 국제사회는 어떤 북한과의 대화도 그 결과가 비핵화가 돼야 한다는데 뜻을 같이 하고 있다”며 “북한이 비핵화를 선택한다면 더 밝은 길이 북한을 위해 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로써 북미대화 가능성이 무르익고 있다고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북한에 고강도 제재를 가하고 있어 장밋빛 미래만을 기대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미 재무부는 23일(현지시간), 북한 석탄과 석유 등의 해상 밀수에 연루된 선박 28척을 포함한 56개 대상을 무더기 제재하는 ‘해상 차단’ 성격의 역대 최고의 대북제재를 단행했다. 또한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 대사는 이 명단을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차원에서 블랙리스트로 지정할 것을 요구했다. 여기에 해안경비대를 배치해 아시아·태평양 해상을 지나는 의심 선박을 수색하고 운항을 중단하는 방안을 모색하면서 한국과 일본, 호주 등 아·태 동맹국과 해상에서의 대북 차단을 더욱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대화의 문은 열어두면서도 여전히 북한을 고강도로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 언론들은 미 본토를 위협하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해체하기 위해 모든 가용한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게 트럼프의 구상이라고 분석했다.

◆ 평창 이후 관계는 북미대화 성사에 달려

대화와 압박의 카드를 동시에 쓰고 있는 미국의 입장과는 상관없이 남북 관계는 화해 무드로 가고 있다. 남북은 평창이후에도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하기로 한 것이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은 26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오찬 회동을 하고 올림픽 이후에도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책과 지속가능한 남북관계 발전, 국제사회와의 협력이 균형있게 진전될 수 있도록 협력하기로 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북미대화가 우선돼야 가능하다. 북핵은 한반도를 넘어선 국제사회의 문제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25일 김영철 부위원장 등 북한 대표단과 접견한 자리에서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문제의 본질적 해결을 위해서라도 북미대화가 조속히 열려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국무부도 북측이 북미대화 의향을 밝히자 남북관계 진전과 북핵 해결이 따로 갈 수 없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문 대통령이 ‘기적처럼 찾아온 기회’라고 언급한 김정은 위원장의 ‘남한에 보내는 화해의 손짓’, 이게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대화가 선결조건임을 김정은 위원장이 모를 리는 없을 것이다. 과연 문 대통령의 조언처럼 김정은 위원장이 더욱 적극적으로 북미대화에 나설지 그의 행보에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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