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했던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지난 5일, 1박 2일의 일정으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만나고 돌아왔다. 이 자리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고, 북측의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하는 등 6개 항에 합의했다. 예상보다 상당히 진일보된 합의사항은 한반도 평화에 기대를 걸게 하는 부분이다.

◆ 남북이 합의한 6개 항목

이번 방북을 통해 문 대통령의 대북특사와 김정은 위원장이 전격 합의한 내용은 모두 6개 부분으로, 첫 번째가 4월 말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한다는 내용이고, 두 번째는 남북이 군사적 긴장완화와 긴밀한 협의를 위해 정상 간 핫라인을 설치하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세 번째는 북측이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하였으며,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네 번째는 북측이 비핵화 문제 협의 및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해 미국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할 용의가 있다는 것이고, 다섯 번째는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북측이 추가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 전략도발을 재개하는 일은 없을 것임을 명확히 했다. 마지막 여섯 번째는 북측이 핵무기는 물론 재래식 무기를 남측을 향해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확약했다는 내용이다.

▲ 지난 5일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별사절 대표단이 이날 오후 성남 서울공항에서 평양으로 출발했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정원장, 천해성 통일부 차관, 김상균 국정원 2차장,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등으로 구성된 대북 특별사절 대표단은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김정은 북한 노동 위원장에게 전달했다.<사진 _ 청와대>

사실 우리 정부가 대북특사를 파견할 때까지만 해도 ‘비핵화’ 약속을 받아낼 수 있을까가 의문이었다. 그런데 이를 넘어 남북정상회담은 물론 북미관계 정상화 의지까지 받아냈다는 점에서 이번 대북특사 파견 성과는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부분은 북한의 지도자 가운데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는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는 점이다. 지난 달 9일 김정은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방남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을 통해 방북을 제안했고, 문 대통령은 이에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켜 나가자”고 말했다. 원칙적인 수락 의사를 보이면서도 ‘북미대화’를 위한 여건이 우선이라는 선을 그은 것이다. 그런데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 참여를 위한 방남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할 용의가 있다”는 의사를 전했고, 결국 남북 정상회담 개최 합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정상 간 핫라인을 설치하기로 합의하면서 문 대통령의 사무실과 김정은 위원장의 사무실 책상에 직통 전화가 놓이게 된다. 기본 설비 작업이 끝나는 3월 말경이면 첫 통화가 가능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고, 이렇게 되면 정상회담 의제 등을 사전에 조율하는 등의 원만한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남북정상회담 장소가 ‘평화의 집’이라는 것도 상징성을 갖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두 차례 정상회담을 평양에서 가지면서도 방남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남측에 가는 것도 서슴지 않겠다는 의지를 볼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이처럼 파격행보를 보이는 것에 대해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한 의지’가 아니냐는 분석이다. 수석특사인 정의용 실장은 “(김 위원장이) 대화 상대로서 진지한 대우를 받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전하기도 했다.

◆ 쇠뿔도 단김에..대북 특사, 이번에는 미국 방문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는 물론 미국과의 대화 의사가 있다고 밝히면서 우리 정부는 이를 성취하기 위해 가속도를 내고 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주변국들의 확실한 지지와 협력을 이끌어내겠다는 의지를 갖고, 대북특사로 방북했던 정의용 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이르면 내일(8일) 미국으로 보내 트럼프 대통령 등 미 정부 인사들을 만나 방북결과를 설명할 예정이다. 그리고 미국이 대화 테이블에 앉을 수 있도록 추가 입장을 전달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정 실장은 방미에 이어 중국과 러시아를 방문하고 서 원장은 일본을 방문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남북 관계 발전은 북핵 문제와 같이 가야 되고, 주변국들이 모두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방문해 지지와 협조를 얻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 트럼프 대통령 긍정적 제스처

북한과 지속적으로 갈등을 일으켰던 트럼프 대통령도 이번 우리 측 대북특사 방북 결과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6일 문재인 대통령 대북 특사단의 방북 결과 발표 내용을 접한 후 ‘김정은이 정권 출범 이후 처음으로 한국의 특사를 맞이했다’는 내용의 블룸버그 기사를 재전송하며 “무슨 일이 일어날지 보겠다”는 트윗을 올렸다. 그리고는 “북한과의 대화에 있어 가능성 있는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며 “수년 만에 처음으로 진지한 노력이 모든 관련 당사자들에 의해 펼쳐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 세계는 주시하며 기다리고 있다, 헛된 희망일지도 모르지만 미국은 어느 방향이 됐든 열심히 갈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우리 측 대북특사 방북 결과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만 보면 북미 대화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은 김정은 위원장의 행보에 대해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술수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어서 북미 대화가 성사될 수 있을 지는 지켜보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좀 더 강력하게 미국을 설득하기 위한 방미를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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