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특사단으로 평양을 다녀온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은 9일(현지시간 8일)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북을 요청하는 김정은의 친서를 건네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수락했다. 예상 외로 빠르게 북미대화가 진행되면서 한반도 정세는 지난해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5일과 6일 대북특사단으로 방북했던 정의용 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 비핵화와 남북정상회담 등에 대해 합의하고 돌아왔었다. 이어 미국으로 건너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북 결과를 브리핑하고 김 위원장의 친서도 건넸다. 친서의 내용에는 북한이 향후 어떠한 핵 또는 미사일 실험도 자제할 것이라고 약속하며, 트럼프 대통령을 가능하면 조기에 만나고 싶다는 뜻이 담겨있다고 정 실장이 브리핑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항구적인 비핵화 달성을 위해 김 위원장과 금년 5월에 만날 것”이라고 화답한 것이다.

▲ 그래픽_뉴스워커 그래픽 팀

◆ 빠르게 성사되는 북미대화...전 세계가 관심 보여

빠르게 진전되는 북미대화에 주요 외신들은 관심을 보이며 긴급 보도했다. AP통신, AFP통신, 로이터 통신, dpa통신, 교토통신, 신화통신 등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김 위원장은 핵실험 중단을 약속했다”고 일제히 전했다. 특히 미 CNN 방송은 정 실장이 백악관에서 브리핑하는 모습을 생중계하면서 “역사적인 순간을 지켜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의 북미 정상회담이 결정되자 북한 전문가들도 놀라워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과거에 생각하기 어려웠던 일이 급속하게 진전돼 현기증이 날 정도”라며 “북한 비핵화 문제는 실무자들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데 북미간 최고정책결정자들이 만난다는 건 현실적인 바람직한 접근”이라고 평가했다. 즉 북한 비핵화에 대해 밝은 전망을 내렸다.

◆ 여동생 김여정을 특사로 보낼 때부터 이미 결정한 듯

한반도 정세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을 내릴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위원장의 과감한 결정 때문이다. 이는 지난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을 특사로 보냈을 때부터 이미 결정을 내린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김여정 부부장을 만났을 때 비핵화, 북미대화 등 6개항을 제시했고 김여정 부부장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전달했던 것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8일 “6개 항은 지난달 김여정 등 북한 인사들이 방한했을 때 문 대통령이 먼저 꺼냈던 얘기”라며 “문 대통령은 비핵화를 비롯한 방법론까지 얘기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전제가 있었기에 대북특사가 방북했을 때도 김정은 위원장과의 면담이 일사천리로 이뤄졌고, 그 자리에서 구체적인 6개항을 담은 합의문이 나온 것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특사단은 김정은과의 면담 일정에 대한 확답없이 방북했지만, 특사단이 평양에 도착한 직후 숙소에 김영철 부위원장이 찾아와 그날 저녁에 김 위원장을 만난다고 통보했다”고 밝혔다.

우리 측 대북특사가 김정은 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도 주요의제에 대해 김 위원장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과 한반도구상 등 대북 정책 기조, 이와 관련한 주요 제안 등을 상세하게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김 위원장의 비핵화 발언, 북미대화 의지를 밝힌 것은 이미 준비돼 있었다고 미루어 판단할 수 있다.

◆ 지켜보자..신중론도

북미대화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는 모습을 보면서도 일각에서는 좀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을 보이고 있다. 역사적으로 북미대화가 여러 번 있었음에도 북한은 핵실험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1993년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을 거부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면서 1차 북핵위기가 발생한 바 있다. 그러자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과 고위급 회담을 통해 1994년 10월 21일 북한의 핵시설 동결과 미국 등의 경수로·중유 제공 등의 내용이 담긴 제네바 합의를 했다. 그러나 2002년 북한이 비밀리에 고농축 우라늄으로 핵탄두를 개발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북미관계는 다시 멀어졌다.

이때 중국이 한국·북한을 필두로 한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6자회담을 제안해 2006년 북핵 문제 해결의 로드맵이 담긴 9.19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그럼에도 미국은 북한과 거래하는 방코델타아시아(BIDA) 은행에 대한 제재에 나섰고, 북한이 이에 반발하면서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이후 몇차례의 6자 회담을 거쳐 북한의 핵실험 불능화, 북한의 핵 프로그램 신고와 이에 상응하는 5개국의 에너지 100만t 지원,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과정 개시 등을 골자로 하는 2.13 합의가 2007년에 채택됐으나 북한은 2009년 5월 2차 핵실험을 실시했다.

이후 오마바 행정부에서 또 다시 북한과 접촉을 시도해 핵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중단하는 대신 미국은 24만톤 규모의 식량을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2.29 합의가 2012년에 이뤄졌다. 하지만 북한은 여전히 멈추지 않은 채 로켓 은하3호를 발사하고 2013년 2월 3차 핵실험을 감행해 북미는 최악의 관계를 맞이하게 됐다.

이러한 북한의 전적 때문에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이 있는가하면 한편에서는 핵 무력이 완성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하기도 한다. 지난해 11월 29일 김 위원장은 신형 ICBM급 화성-15형 시험발사 장면을 지켜본 뒤 “국가 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 로켓 강국 위업이 실현된 뜻 깊은 날”이라고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북 소식통도 “북한의 핵·탄도미사일은 대기권 재진입과 핵탄두 소형화 여부 등 기술적 과제는 남아있지만 내부적으로 핵무력 완성에 대한 자신감 확보라는 측면에서는 충분하다”면서 “김 위원장이 안보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되면서 외부와의 본격적인 협상에 나섰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그동안의 북한의 전력과 지난해 김정은 위원장의 행보를 비춰봤을 때 앞으로 있을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다는 의견에 좀 더 무게가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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