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박경희 기자] 중국이 2일부터 미국산 수입품 128개 품목에 대해 최대 25%의 고율관세를 부과했다. 그러자 미국은 3일(현지시간) 중국산 수입품 가운데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할 약 500억 달러(약 54조원) 상당의 1천300백 개 품목을 발표했다. 이에 중국 상무부도 지지 않고 미 무역대표부(USTR)가 관세부과 품목을 발표한 지 한 시간 만에 즉각 보복 조치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중국이 보복관세 조치를 취하자 “글로벌 시장을 왜곡하는 관행을 중단하라”고 비난하고 있다. 자국을 보호하기 위해 전방위적인 관세부과에 나선 미국은 속된 말로 ‘내로남불’식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 그래픽_황규성 그래픽 전문기자

◆ 서로 주고받는 펀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8일 국가 안보 침해를 이유로 중국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 1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조치에 서명하고, 미국의 지식재산권 침탈을 빌미로 추가로 600억 달러에 달하는 관세 부과를 예고했었다. 이에 중국은 미국산 돼지고기와 과일 등 128개 품목에 최대 25%의 관세를 부과했고, USTR은 3일 관세 부과 품목을 추가로 발표했다. 미국이 이날 발표한 품목은 고성능 의료기기, 바이오 신약 기술 및 제약 원료 물질, 산업 로봇, 통신 장비, 첨단 화학제품, 항공우주, 해양 엔지니어링, 전기차, 발광 다이오드, 반도체 등으로 중국의 10대 핵심산업 육성 프로젝트인 ‘중국제조 2025’에 들어있는 분야를 겨냥한 것이다.

그러자 중국은 즉각 보복 관세 조치를 취하겠다고 발표했다. 구체적인 품목이 밝혀지진 않았지만 대체로 대두(콩), 자동차, 항공 분야가 언급되고 있다. 당초 중국은 대두를 보복 관세 품목에 처음부터 넣지 않겠느냐 하는 관측이 나왔지만 2일 부과한 품목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중국은 미국산 농산물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수입하는 국가로, 대두의 경우 전체 생산량의 3분의 1일 수입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특히 중국의 미국산 대두 수입규모는 지난해 139억 달러에 달하며 주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주에서 생산되는 만큼 보복관세의 강력한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다. 러우지웨이 전 중국 재정부장도 지난주 미국산 대두와 자동차, 비행기를 표적으로 한 더욱 고통스러운 조치가 뒤따를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럼에도 중국이 2일 발표한 관세 품목에 대두를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미국의 조치에 맞대응 하지만, 타협의 여지를 남긴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실제로 중국의 언론 환구시보는 “미국의 이유없는 관세 부과에 대등하게 보복하겠다는 결심을 보여줬다”며 “우리는 무역전쟁을 원하지 않아 후발적으로 타격하고 있으며 무역전쟁을 두려워하지 않아 상대가 때리는 만큼 당하게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 희비 엇갈리는 국가들

미국발 무역전쟁에 피해가 예상되는 나라들은 이에 적극 대응하고 있는 모습이다. 러시아는 미국의 수입산 철강·알루미늄 관세부과 조치로 최소 30억 달러의 피해가 예상되면서 이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EU도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 철강 관세를 면제 받자마자 철강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조사에 나섰다. 우리의 경우 미국으로부터 철강 관세를 면제를 받으면서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EU가 세이프가드 조사에 나서면서 또다시 긴장해야 하는 상황이다. EU는 지난달 26일 수입 철강 제품을 대상으로 세이프가드 조사를 통해 그 결과에 따라 관세를 부과하거나 물량을 제한하는 쿼터(수입할당)를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철강 관세 여파로 제3국의 철강 제품이 EU로 몰려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알려졌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EU의 역외 철강 수입액은 571억 2천만 유로이며, 이 가운데 조사하기로 한 26개 품목에 대한 수입액은 212억 유로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 가운데 11.3%에 해당하는 23억9천만 유로로 달러로 환산하면 약 29억 4천만 달러이며, 무역확장법 232조 관세 대상 금액인 27억9천만 달러 보다 많다. 그 만큼 큰 시장이라 EU의 철강 세이프가드 조사에 긴장할 수밖에 없다.

우리 뿐 아니라 호주와 일본도 대표적인 피해 지역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 달 28일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미중 무역 갈등 심화가 이들 국가와 전세계적 공급망으로 얽혀 있는 아시아 국가들을 위태로운 상황으로 몰고 갈 수 있다며 호주와 일본을 지목한 바 있다.

호주는 수출품 중에서도 철광석 등 원자재 수출이 매해 7억 메트릭톤에 달하고 있어 미국이 철강에 부과하기로 한 25% 관세는 치명적이다. 일본은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중국의 무역관행 개선이 필요하다며 한 목소리를 내왔다. 그런데 최근 무역전쟁으로 인해 안전자산으로 돈이 몰리면서 엔화가치가 상승해 일본의 전자부품 수출업체들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다국적기업들이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중국 생산을 줄이고 동남아 생산을 늘리게 되면 일부 동남아 경제는 호재를 맞는다. 특히 중국내 아이폰 생산기지가 영향을 받을 경우 삼성전자 휴대폰의 주요 기지인 베트남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또한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농산물 수입을 줄이면, 인도네시아로부터 수입을 늘릴 수 있어 이 지역 또한 좋은 기회가 된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농산물에서는 이익이 될 수 있지만 미국이 중국산 가전제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게 되면, 전자제품 공급체인에 말레이시아가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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