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박경희 기자] 서로에게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며 전면적으로 치닫던 미중 무역전쟁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지난 10일 보아오포럼 기조연설에서 시진핑 중국 주석은 자유무역 및 개방 정책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시 주석의 발언에 “고맙게 생각한다”고 밝히면서 무역갈등 완화 양상을 보이는 듯 했다. 그러나 중국 측은 “미중 무역 갈등을 해결하려면 미국이 먼저 협상에 대한 성의를 보이라‘고 촉구하고 있고, 미국은 최근 중국 견제용으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재가입을 검토하는 등 미중 간의 무역갈등은 여전히 팽팽하다.

▲ 그래픽_황규성 그래픽 디자인 담당

◆ 시진핑 주석 ‘무역개방 확대’ 언급

지난 10일 시 주석은 중국 하이난성에서 열린 보아오포럼 개막식 기조연설에서 대외개방과 규제완화를 선언했다. 우선 외국인의 금융투자 진입 장벽을 낮추겠다며 보험 산업 개방을 확대하고 외국인 금융 분야 규제를 완화해 중국과 외국 시장의 협력을 증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제조업 분야에 대해서는 자동차와 선박, 항공분야 등에서 제한을 풀겠다고 말했다. 특히 “차량 수입 관세를 크게 낮추고 일부 품목에 대해서도 관세를 인하할 것이며, 국민들에게 필요하고 경쟁력 있는 제품들을 더 많이 수입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미국이 줄곧 요구해온 자동차 수입 확대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며, 지적재산권 부분도 개선을 약속하면서 시 주석이 미국에 먼저 화해의 악수를 내민 것처럼 비쳐졌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관세와 자동차 무역 장벽에 관한 시진핑 중국 주석의 사려 깊은 발언에 대해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함께 큰 진전을 이룰 것”이라고 응답하면서 미중 무역 갈등이 봉합 국면에 접어드는 것이 아니냐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 중국, WTO에 미국 제소 동시에 ‘협상에 성의보이라’ 압박

미중이 서로 화해하는 듯한 제스처는 취했지만 무역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수 싸움은 치열한 모습이다.

중국은 우선 세계무역기구(WTO)에 미국을 제소했다. 시진핑 주석이 보아오포럼에서 개방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하던 10일, 중국산 철강, 알루미늄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미국의 조치에 대해 WTO에 양자협의를 요청한 것이다. 양자협의는 WTO의 분쟁개입 전 당사국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중국은 양자협의 요청서를 WTO 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제출한 것인데, 양자협의 요청서 제출 자체가 WTO 제소의 시작이다.

동시에 시진핑 주석의 발언에 화답하라고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가오펑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11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현재 미국은 협상을 위한 어떠한 성의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관영 매체인 환구시보도 “중국의 개방 확대 조치가 미국에는 상당한 압박이 될 것이다. 이제 중국의 대외 개방 결심에 화답할지 아니면 무역전쟁을 이어갈지 선택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트럼프 대통령, TPP 재가입 검토 지시..중국 견제용

미국은 중국의 요구에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고 있다. 다만 12일 트럼프 대통령은 스스로 탈퇴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으로의 복귀를 검토해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미국의 여러 언론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열린 주지사 및 의원들과의 회의에서 이같이 지시했다는 것이다. 자리에 함께 했던 인사들이 “중국의 이목을 끌기 위한 방법의 하나가 중국의 역내 경쟁국들과 거래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대표와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위원장에게 “TPP에 재가입하는 문제를 한번 살펴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TPP는 아시아태평양지역의 경제적 통합을 목적으로 2005년 6월 뉴질랜드, 싱가포르, 칠레, 브루나이 4개국에 의해 출범한 다자간 무역협정이다. 기술장벽, 서비스 부문, 지적재산권, 정부조달 및 경쟁정책 등 모든 분야의 무역 장벽을 없애고 예외없는 관세철폐를 추구하면서 포괄적 자유를 목표로 하고 있다. 여기에 2008년 미국이 참여하면서 협상이 본격화 됐고 2010년 협상 개시 선언 6년 만에 타결됐다. 2013년에는 캐나다, 호주, 베트남, 멕시코, 말레시아, 페루 등이 참여했으며, 일본이 뒤늦게 합류하면서 12개국이 참여하고 있었다.

미국의 오바마 전 대통령은 TPP에 대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제통합에 있어 가장 강력한 수단이며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지역과 미국을 연결해주는 고리하고 평가한 바 있다. 그러나 보호무역주의를 선호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TPP에 대해 ‘우리나라를 겁탈하려는 특정 이해관계자들에 의해 자행된 또 하나의 재앙’이라고 규정했고, 취임 초인 2017년 1월 탈퇴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TPP 재가입을 검토하는 것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TPP는 정부 주도의 경제 정책을 펼치는 중국에게는 가입이 어려운 구도이기 때문에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국가들과 함께 중국을 견제하고자 하는 것이다. 비록 시진핑 주석이 최근 자유 무역 및 시장 개방 정책을 확대한다고는 했지만 얼마큼 확대할 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기에 당장 TPP 가입은 어렵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TPP 재가입을 통해 미국이 노리는 것은 “중국과의 무역전쟁에서 농업부문의 피해를 줄이고 이로 인한 중간선거로의 파급효과”이다.

이로써 미중간 무역전쟁은 현재는 끝도없이 치닫던 전면전에서 지금은 숨을 고르며 상대의 약점을 살펴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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