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박경희 기자] 지난 주말 미국 재무부가 발표한 환율보고서에서 한국은 환율관찰대상국에 지정됐다. 환율조작국에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한국정부에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를 요구하는 내용을 포함시키면서 환율 주권 침해 우려가 제기됐다.

‘외환시장 개입 공개’가 원·달러 환율 하락(원화가치 상승)과 수출기업 가격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우리에겐 불리하지만 미국의 압박이 거세기 때문에 마냥 미룰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 문제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오는 19일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부 장관과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를 만나 면담을 한 후, 최종적으로 공개여부와 범위를 결론 낸다는 방침이다.

▲ 그래픽_황규성 뉴스워커 그래픽 담당

◆ 韓, 5회 연속 환율관찰대상국에 포함돼

미국 재무부는 13일(현지시간) 발표한 환율보고서에서 한국을 환율관찰대상국에 포함시킴으로써 지난 2016년 2월 미국 교역촉진법 발효 이후 다섯 차례 연속 관찰대상국 리스트에 오르게 됐다.

미국이 정한 교역촉진법 기준에 따라 △ 현저한 대미 무역수지 흑자(200억 달러 초과) △상당한 경상수지 흑자(GDP 대비 3% 초과) △ 환율시장의 한 방향 개입 여부(GDP 대비 순매수 2% 초과) 등 세 가지 요건이 모두 포함되면 환율조작국인 심층분석대상국이 되고, 두 가지가 포함되면 환율관찰대상국이 된다. 기획재정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대미무역 흑자 규모가 230억 달러이고, GDP대비 경상흑자 규모가 5.1%이다.

하지만 대미 흑자 부분의 경우 2015년 283달러, 2016년 276달러에서 점차 흑자 규모가 줄어든 것이다. 이는 100%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셰일 가스 중 그간 카타르, 호주, 오만 등에서만 수입했던 것을 연간 25억 달러 규모를 미국산으로 대체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국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던 것인데, 시장개입 규모는 GDP 대비 0.6%여서 환율조작국 지정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환율보고서는 한국에 대한 정책 권고 사항으로 “외환시장 개입은 무질서한 시장 환경 등 예외적인 경우로 제한돼야 하고, 외환 시장 개입을 투명하게 조속히 공표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 외환시장 개입 공개 요구, 왜?

미국 재무부는 13일 공개한 ‘교역 상대국의 환율정책 보고서’에서 한국 정부가 지난해 원화 가치가 올라가는 속도를 늦추려고 인위적으로 시장에 개입한 정황이 있다고 밝혔다. 또한 국제통화기금(IMF)의 분석을 인용해 원화가치가 2010년 이후 1~12% 저평가 됐다고 지적하면서 이는 인위적인 시장 개입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한국이 수출제품 가격을 떨어뜨려 미국 시장을 잠식해 미국 기업이 한국에 수출한 제품의 가격이 비싸지는 결과가 있었다면서 외환시장 개입 내용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외환시장 개입은 원화가치가 급등락 할 때 정부가 시장에서 달러를 사거나 팔아 시장 안정화 작업에 나서는 것을 뜻한다. 이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원칙적으로 금기지만 일부 ‘미세조정’을 하기도 한다. 따라서 그 내역이 공개되는 것은 결코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많은 나라들이 대외 신인도를 위해 개입 내역을 공개하고 있다.

한국은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유일하게 개입 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있고, G20(주요 20개국) 가운데는 한국, 중국, 인도만 공개하지 않고 있다. 우리의 경우 수출의존도가 높아 환율에 민감하기 때문에 개입 내역을 공개할 경우 타격이 우려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도 지속적으로 권고하고 있는데다, 이제는 한국 경제 수준을 고려할 때 공개해야 한다는 쪽으로 무게가 실리고 있다.

◆ 공개 여부와 공개 범위는 다음 주 결론 날 듯

결국은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공개하되, 공개 주기와 방식이 과제로 남았다. 대체로 영국, 캐나다, 호주, 일본 등은 직전 한 달 개입 내역을 한 달 후에 공개하고 있고, 유럽중앙은행(ECB)과 홍콩은 하루 단위로 장 마감 후에, 미국은 분기별로, 스위스는 1년 치를 매년 2월에 알리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2015년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 부속으로 작성된 TPP 회원국의 거시경제정책당국 공동선언문에서 회원국들은 외환시장의 분기별 개입 내역을 1분기 이내의 시차를 두고 공개하기로 약속했다. TPP 회원국 중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의 경우는 6개월 단위로 6개월 시차를 공개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방식이어야 할까. 미국은 일본, 영국처럼 한 달 내역을 공개하라고 압박하며 환율 주권에 개입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그러나 이는 우리의 현실을 비춰봤을 때 무리라는 지적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일본 등 국제통화를 가진 나라는 한 달 내역을 공개해도 화폐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 문제가 없지만, 원화는 환투기 세력에 노출되거나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어 “3월, 6개월 또는 1년 뒤에 공개하거나, 공개범위도 총 개입량(순매수 총액)을 공개하는 쪽이어야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 재정부 장관은 16일 “환율 주권은 우리에게 있다”며 “어떤 의사 결정을 해도 정부의 환율 주권을 지키며 외국의 요구가 아니라 우리의 필요에 따라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종적으로는 다음 주쯤 결론날 듯 보인다. 김 부총리는 오는 19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G20 재무장관회의에서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부 장관,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와 면담을 갖고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주기와 방식을 결정한다는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뉴스워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