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박경희 기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를 다음 달 파기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유럽이 미국과 활발하게 논의하면서 파기를 막을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이란은 “핵 합의를 파기하면 후회할 것”이라며 경고하고 나서면서 이란이 중동의 새로운 격전지로 떠올랐다.

◆ 미국이 이란의 핵합의를 문제 삼는 속내는?

지난 2015년 7월 이란과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와 독일이 함께 이란 핵 문제 해결에 합의하고 이란의 핵 개발 중단과 서방의 대(對) 이란 제재 해제를 골자로 한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을 채택한 바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의심스러운 핵시설에 대한 사찰권한을 갖게 되었으며, 3개월마다 이란의 이행 실태를 확인하고 보고서를 내왔다. 지금까지 모두 10차례 낸 분기 보고서에 IAEA는 이란이 합의 내용을 모두 준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 그래픽_황규성 뉴스워커 디자인 담당

이러한 결과 때문에 이란 핵합의는 국제사회가 최근에 맺은 가장 성공적인 합의로 꼽히고 있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유세 때부터 이란 핵 합의를 미국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 ‘최악의 합의’로 비판하면서 ‘이란에 대한 항복이자 미국의 수치’라며 재협상을 주장해왔다.

그리고는 지난 1월 5월 12일까지 핵합의 내용에 탄도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을 감시하는 내용을 추가하고, 핵 개발 프로그램을 일정 기간 동안만 제한하는 일몰조항을 없애라고 이란에 요구했다. 만약 이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다시 경제 제재에 나서겠다고 협박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이란은 “핵 합의를 절대 수정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또한 IAEA에 따르면 이란 정부가 서한을 통해 해군 핵추진체를 장래에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이란은 2016년 미국이 핵 합의를 파기할 때 대응 조처로 핵추진체를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었는데, 당시에는 핵 추진체가 해상 운송에 쓰일 수 있다고만 언급했지만 이번에는 ‘해군’이라는 표현을 넣어 핵잠수함 개발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다.

더 나아가 핵협상 실무에 직접 참여한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차관은 이란도 핵합의를 파기할 수 있다고 강경한 자세를 보였었다. 또한 “트럼프는 기업들이 이란과 일하는 데 독과 같은 불확실한 상황을 조성했다”고 비판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최후통첩이 지나가고 제재 유예가 연장되더라도 이런 식으로는 핵합의가 살아남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서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아락치 이란 외무차관의 말을 주목해보면 ‘경제와 무역’ 측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합의를 문제 삼을 때도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웠던 것처럼 ‘미국의 국익에 부합되지 않는 최악의 합의’라고 지칭했고, 이란 외무차관도 “트럼프는 기업들이 이란과 일하는 데 불확실한 상황을 조성했다”고 불만을 제기한 것이다.

트럼프와 공화당은 핵합의가 이란의 경제 성장을 돕고 장기적으로 핵무기 개발도 막지 못해 중동에서 이란이 자신들에 도전할 힘을 키워준다고 여기고 있다. 따라서 ‘핵합의 파기’ 운운하며 다시 경제 재재 압박을 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 이란에 투자하는 기업까지 겨냥하고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가 이란에 강력한 제재를 부과한다면 많은 기업들이 투자 계획을 철회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 화학무기 사용한 시리아 공습도 이란에 대한 경고?

이란은 지난 14일 미국, 영국, 프랑스가 시리아를 동반 공습한 것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영·프의 동반공습이 표면적으로는 시리아 정부가 비인도적인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이유를 들고 있지만, 이란 측에서는 사실상 이란이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라는 경고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시리아 공습 직후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는 이례적으로 직접 나서서 3개국 정상을 범죄자들이라고 규정하는 성명을 신속하게 낸 것이다.

중동 내에서 이란과 적국인 사우디아라비아도 미국과 궤를 같이하면서 지난 한달 동안 미·영· 프를 연쇄 방문하여 수십조 원대의 무기구매와 합작 투자 계약을 맺기도 했다. 이렇게 미국을 비롯해 프랑스, 영국, 사우디아라비아가 함께 하고 전통적으로 미국편인 이스라엘까지 합세하면서 이란은 입지적으로 어려워지고 있다. 한편 이란은 러시아, 중국과 함께 긴밀하게 이 문제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 이란 핵합의 파기 되면 유가 급등할 듯

이란 핵합의가 파기되면 국제유가 시장은 충격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이 전문가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이란의 원유 수출이 제한되면 전 세계 원유 공급량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CNBC는 자문 전략가 말을 인용하며 트럼프 행정부가 핵합의를 파기하고 이란에 경제 재재를 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미국 에너지 컨설팅 그룹인 ‘팩트 글러벌 에너지(FGE)의 페레이던 페사라키 회장은 “트럼프 행정부가 핵 합의를 파기할 가능성은 90%”라고 말했다. 이어 “배럴당 80달러(현재 WTI 원유 약 68달러)는 앞으로 한두 달 안에 닥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를 노리고 있다. 이란과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재가 국제유가 상승 압박을 더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유럽연합(EU)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 핵합의 파기를 막을 방법을 마련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보도했다. 또 한편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이 핵합의 파기를 선언하기 전에 이란이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에 맞게 내용을 수정하도록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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