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정치] 북한이 오는 23~25일 풍계리 핵실험장을 갱도 폭발로 폐쇄한다고 지난 12일 밝혔다. 미국의 마이크 폼페이오 국방장관이 두 차례에 거쳐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난 후 ‘만족할만한 합의’를 했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러한 북한의 핵실험장 갱도 폐쇄는 실제적인 비핵화를 보여주는 제스처로 보인다.

▲ 그래픽_황성환 뉴스워커 그래픽 담당

◆ 靑, “북한이 비핵화 의지 보여준 것”

북한 외무성은 12일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공지하면서 “핵시험장을 폐기하는 의식은 5월 23일부터 25일 사이에 일기조건을 고려하면서 진행하는 것으로 예정돼 있다”며 “핵시험장 폐기는 핵실험장의 모든 갱도들을 폭발의 방법으로 붕락시키고 입구들을 완전히 폐쇄한 다음 지상에 있는 모든 관측설비들과 연구소들, 경비구분대들의 구조물들을 철거하는 순차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밝혔다. 이어 “핵시험장 폐기와 동시에 경비인원들과 연구사들을 철수시키며 핵시험장 주변을 완전 폐쇄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북부시험장 폐기를 투명성 있게 보여주기 위하여 국내언론기관들은 물론 국제기자단의 현지취재활동을 허용할 용의가 있다”며 “핵시험장이 협소한 점을 고려하여 국제기자단을 중국, 러시아, 미국, 영국, 남조선에서 오는 기자들로 한정시킨다”고 밝혔다.

북한의 이러한 발표에 대해 우리 청와대에서는 “풍계리 4개 갱도를 모두 폭파하고 막아버린 뒤 인력을 다 철수 시킨다는 것은 최소한 미래핵을 개발하지 않겠다는 의지”라고 설명했다. 또한 “사실상 북한에서 핵실험을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소가 풍계리”라며 “이에 대해 평가절하하는 발언들이 나오는데, 결코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 비핵화 관련해 북미가 접점 찾은 것으로 평가 돼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일정을 공개하자 북한과 미국이 비핵화와 관련해 상당히 진척된 접점을 찾은 게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동안 “비핵화 전 제재 해제는 없다”는 입장을 보여왔는데,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이 12일 전한 내용에 따르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두 차례 만나 새로운 대안을 찾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고 전했다. 여기서 새로운 대안의 핵심은 북미 양측이 과거에 추진했던 단계별 비핵화와 보상 패키지의 순서를 뒤바꾸는 포괄적인 접근 방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도 설명했다. 즉 과거에는 북한의 핵실험·탄도미사일 발사 중단, 핵·미사일 개발 동결, 핵·미사일 시설 해체, 핵·미사일 해외 반출 등의 순서로 비핵화를 추진했지만 이번에는 이러한 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곧바로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핵탄두, 핵물질,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상당 부분을 조기에 해외로 반출할 것을 요구했고, 북한이 이를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대신 미국은 북한에 ‘평화와 번영’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11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워싱턴 국무부 청사에서 만난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올바른 길을 선택한다면 북한과 주민들에게 평화와 번영으로 가득한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또한 “북한이 빠르게 비핵화를 하는 과감한 행동을 취한다면 미국은 북한이 한국 친구들과 같은 수준의 번영을 달성하도록 도울 준비가 돼 있다”고도 말했다. 도움의 부분에 대해서는 13일 <폭스뉴스>에 출연해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즉 미국의 민간 분야가 북한에 엄청난 전기가 필요한 에너지망을 건설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고, 미국 기업들이 북한의 기반 시설과 농업 투자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고 말한 것이다.

◆ 비핵화 방법으로 ‘카자흐스탄식 혹은 리비아 모델’ 논의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북한의 비핵화 방법으로 미국은 핵탄두, 핵물질,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상당 부분을 해외로 이전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우리 정부 소식통도 이 부분에 대해서 “미 본토나 주일미군 괌 기지를 타격할 수 있는 핵탄두와 ICBM 중 일부를 북미 정상회담 직후 이른 시일 내 국외로 이전하는 것”이라고 13일에 설명했다.

사실 핵무기 국외 이전은 ‘완전 비핵화(CIVD)’를 위해 반드시 밟아야 할 조치로 꼽혀 왔는데,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11일(현지시간) 만나 북한에 적용할 모델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강 장관은 ‘카자흐스탄 모델’을, 볼턴 보좌관은 ‘리비아 모델’이 언급했다. 강 장관이 제시한 ‘카자흐스탄 모델’은, 1991년 구소련이 붕괴하면서 카자흐스탄은 우크라이나·벨라루스와 함께 갑작스럽게 핵무기를 물려받게 됐다. 그러자 미국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등의 압박을 받게 됐고, 경제 지원 및 체제 보장의 대가로 1992년부터 1995년까지 핵무기 1000여기와 전략 폭격기 등을 러시아에 넘겼던 사례이다. 북한도 이러한 카자흐스탄 모델을 적용해 핵무기와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등을 국외로 반출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볼턴이 제시한 ‘리비아식 핵 해법’은 리비아가 2003년에 단행했던 것 같이 자진해서 먼저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고 나중에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는 방식과 더불어 리비아의 카디피 정권은 그대로 그 지위를 유지하게 된 사례이다. 리비아는 2003년 12월 자진해서 핵 등 대량살상무기 포기 선언을 내놓고 모든 관련 시설을 국제사찰단에 공개한 것은 물론이고 그 관련 장비를 모두 미국으로 보낸 바 있다. 이에 대해서 미국은 2004년 봄 리비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대부분 해제했으며, 6월에는 리비아와 외교관계 정상화를 선언했다.

카자흐스탄 모델이든 리비아 모델이든 북한이 자진해서 풍계리 핵실험장 갱도를 공개적으로 폐쇄하고 나선 만큼 미국과는 비핵화와 경제와의 빅딜이 성사된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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