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박경희 기자] 북한은 오늘(16일)로 예정돼 있던 남북 고위급 회담을 돌연 무기한 연기했다. 남북고위급회담 중지 이유로 오는 25일까지 열리는 한미연합훈련을 문제 삼았다. 즉, 맥스선더 훈련을 이유로 무기한 연기한다고 알려왔는데, 일부에서는 남북관계는 물론 내달 12일로 예정된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기싸움을 벌이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당혹스러운 행보로 북미정상회담은 물론 향후 남북관계도 또 다시 오리무중 상태가 됐다.

▲ 그래픽_황성환 뉴스워커 그래픽 담당

◆ 한미연합훈련인 ‘맥스선더 훈련’ 문제 삼아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은 16일 0시 30분께 고위급회담 북측 대표단 단장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명의의 통지문을 보내 맥스선더 훈련을 이유로 고위급회담을 무기한 연기했다.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서 “맥스선터 훈련이 판문점 선언에 대한 도전이며 한반도 정세의 흐름에 역행하는 군사도발이라며 이날 개최키로 한 남북고위급회담을 중지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전했다.

이에 우리 정부와 미국 정부는 즉각적인 입장 표명은 유보한 채 북한의 정확한 의도 파악에 들어갔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에 따르면 “청와대 안보실 관계자들이 통일부·외교부·국방부 등 관련 부처와 긴밀히 전화통화를 하고서 논의를 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백악관에서도 국가안보회의(NSC), 국방부 등 유관부처 관계자들을 소집한 가운데 긴급 대책회의를 가졌다고 CNN 방송이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다음 달 12일 싱가포르에서 개최될 북미정상회담에 대해서도 북한이 취소 가능성을 언급한 것을 두고 촉각을 곤두세우며 예의주시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해 “미국도 남조선 당국과 함께 벌리고 있는 도발적인 군사적 소동 국면을 놓고 일정에 오른 조미(북미) 수뇌상봉의 운명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물론 미국도 지난 11일 시작된 ‘맥스선더 훈련’을 문제삼아 회담 중지를 통보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분위기이다. 특히 로버트 매닝 국방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한국과 미국의 군대는 현재 ‘2108 독수리(FE) 훈련’과 ‘2018 맥스선더 훈련’을 포함한 연례순환 한미 춘계 훈련을 하고 있다”며 “이런 방어훈련은 한미동맹의 정례적 일상의 한 부분으로, 군사 준비태세의 기초를 유지하기 위한 연례 훈련 프로그램”이라고 밝혔다. 또한 “연합훈련의 방어적 본질은 수십 년간 매우 분명했고, 변하지 않았다”고도 설명했다.

◆ 북한의 의도는?

각국 외신들은 북한의 남북고위급회담 중지 소식을 전하면서 북미 정상회담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북미정상회담의 운명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와 비슷한 견해로 명분상 군사 훈련에 대한 반발이지만, 실상은 미국의 압박에 대한 반발이라는 분석도 있다.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북한 핵무기를 폐기해 가져가야 한다"며, "보상 이전에 비핵화 절차가 완전하게 진행되는 것을 보기를 원한다"고 언론을 통해 언급한 데 대한 반발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16일 조선중앙통신과의 담화를 통해 "핵 포기만 강요하려 든다면 대화에 흥미를 가지지 않을 것"이라며 “북미 정상회담도 재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북한, ‘태영호 전 공사’에 대해서도 공개 비난

북한은 ‘맥스선더 훈련’을 문제 삼은 데 이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에 대해서도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남조선 당국은 우리와 함께 조선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해 노력하자고 약속하고서도 그에 배치되는 온당치 못한 행위에 매달리고 있으며 천하의 인간쓰레기들까지 국회 마당에 내세워 우리의 최고 존엄과 체제를 헐뜯고 판문점 선언을 비방 중상하는 놀음도 버젓이 감행하게 방치해놓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여기서 말한 인물은 태영호 전 공사를 겨냥한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이다.

태영호 전 공사가 14일 국회 강연과 자신의 저서 출판 기념 간담회를 통해 ‘반 김정일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태 전 공사는 “김정은이 원하는 체제 안전 보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CVID(완전한 비핵화)로는 달성할 수 없다”며 “북미 정상회담까지 한 달 정도 남았는데 섣불리 예단할 것은 아니지만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로는 완전한 비핵화가 아니라 북핵 위협 감축, 감소 정도인 SVID(충분한 비핵화)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CVID를 하려면 사찰단의 무작위 접근이 허용돼야 하지만 북한은 이를 절대 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본다”며 “핵은 북한에게 체제 유지의 원천이자 창과 방패 역할을 한다, 설령 북미 정상회담에서 CVID에 합의한다 해도 이행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태 전 공사가 밝힌 것처럼,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정확한 의도를 파악해 향후 남북관계는 개선을 위한 노력의 방향 설정은 물론 북미정상회담도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과제를 던져줬다고 볼 수 있다.

저작권자 © 뉴스워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