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박경희 기자] 무역전쟁으로 살얼음판을 걷던 미국과 중국이 갈등을 봉합했다. 중국이 대미 무역 흑자폭을 대폭 줄이고 지적재산권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법을 개정하기로 하는 등 중국이 한발 물러서는 형국을 보였지만 미·중 양국이 내놓은 합의문에서는 구체성이 결여되는 모습을 보이면서 무역갈등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또한 중국이 북한에 끼치는 영향력을 감안해 원만한 북미정상회담을 위해 양국이 서둘러 합의한 것 아니냐는 평가다.

▲ 그래픽 뉴스워커 황성환 그래픽 담당

◆ 미·중 합의문에 어떤 내용이 담겼나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과 류허 국무원 부총리가 각각 이끄는 미·중 협상 대표단은 워싱턴DC에서 17~18일(현지시간) 이틀간 2차 무역협상을 벌이고, 19일 합의 내용을 발표했다. 양국은 연간 3750억 달러 (약406조원·지난해 미국 측 통계 기준)에 이르는 대중 무역적자를 상당 폭 줄이고,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를 막기 위한 제도적 정비를 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수출 확대 품목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기반이 되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비롯해 자동차와 에너지 제품이 명시됐으며, 차후 미국 실무팀이 중국을 방문해 세부사항을 논의한다는 계획이다.

미·중의 합의문 발표 직후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과 류허 중 국무원 부총리는 각각 언론 인터뷰를 통해 “미·중 무역전쟁을 하지 않고 상호 관세부과를 중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 무역전쟁 재발 가능성 높다는 평가 나와

미·중이 발표한 합의사항만 보면 중국이 한발 물러난 모양새이지만 미국이 당초 의도한 바에 비하면 너무 쉽게 합의한 느낌이다.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불균형을 문제 삼으며 철강 등의 분야에서 고율의 관세폭탄을 선언했다.

그리고는 지난 달 500억 달러(약54조원) 상당의 1천300개 중국산과 첨단기술 품목에 고율의 관세를 매겼고, 중국도 이에 질세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표밭이라 할 수 있는 지역의 농산물과 자동차 등 106개 품목에 고율의 관세를 선포하며 무역전쟁 위기가 고조됐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중국의 통신장비업체 ZTE에 대한 규제에 나섰고, 중국은 미국이 제조2025 육성을 침해한다며 맞섰다. 이렇게 G2간의 무역 전쟁이 고조되면서 이달 초에 열린 1차 장관급 무역협상에서도 중국이 시장개방안과 수입촉진책을 제시했지만 양국 사이에 설전만 있었을 뿐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번 2차 협상에서 합의사항을 보면 그동안 미국이 위협카드로 써 온 관세와 ZTE 등 주요 현안은 내용에 포함돼 있지 않다. 그리고 미국이 무역흑자 감축 규모를 구체적으로 명시할 것을 요구했으나 중국이 강하게 반발해 넣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은 중국 당국의 ‘중국 제조2025’ 지원을 중단하라고 압박해 왔지만 중국은 일체 양보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은 “양측은 전날 심야까지 공동성명 내용을 놓고 논쟁을 벌였다”면서 “미국은 성명에 구체적으로 ‘2000억 달러’ 감축을 반영하자고 요구했지만 중국은 어떤 금액도 명시하는 것을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사실 미국이 중국을 대상으로 무역전쟁을 벌이는 속내는 무역불균형보다는 차세대 산업의 기술을 놓고 벌이는 패권 경쟁에서 기술력의 역전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싸움이라는 평가가 있다. 중국의 통신장비업체 ZTE에 대한 규제나 중국은 제조2025 육성 지원 중단 압박이 그것이다.

중국이 실시하고 있는 ‘제조2025 육성’은 중진국 함정을 벗어나기 위해 제조업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정책이다. 이 결과로 미국 내로 수입되는 중국의 하이테크 제품 수출 점유율이 2000년 9.4%에서 2014년 43.7%까지 급등한 반면 일본은 25.5%에서 7.7%로 축소 됐다. 그러자 미국 정계와 행정부가 중국을 경계하며 무역전쟁을 벌이기 시작한 것인데, 정작 이 내용을 합의문에 포함하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미국이 원하는 것을 합의문에 충분히 포함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무역전쟁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평가다.

◆ 북미정상회담 때문에 서둘러 합의?

월스트리트저널은 미·중 간 무역합의에 대해 보도하면서 “관세와 ZTE 등과 같은 핵심 이슈는 협상 테이블에 오르지도 않았다”면서 “미·중 대표단 모두 내달 12일 북미정상회담 이후로 핵심 현안을 미뤄두면서 일단 생산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미니 딜’에 주력했다”고 평가했다.

이 보도를 보면 팽팽하게 진행되던 미중 무역전쟁이 북미정상회담 때문에 갈등을 일단락 한 것처럼 보인다. 강하게 중국을 압박하던 미국이 중국의 양보없는 강경자세에도 서둘러 봉합한 것인데,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첫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무역 문제라는 단일 사안을 놓고 중국과 지속적인 대립각을 세우기에는 부담이 작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을 했다.

또한 최근 북한이 북미정상회담 무산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태도를 돌변한 것을 두고 중국이 영향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해서는 중국의 도움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평가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7일(현지시간) 북한의 태도 변화에 ‘시진핑 배후론’을 거론한 바 있다. 그만큼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중국 역할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다.

환구망 등 중국의 언론들도 북미정상회담에 중국이 미친 영향을 언급했다. 북한의 최근 대미 강경 자세 돌변에 대해 중국이 중미 무역전쟁에 대한 불만 때문에 고의로 북미간 협력을 방해하는 것도 있다는 보도를 한 것이다.

무역과 북한 문제를 두고 미국과 중국이 팽팽하게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지금의 모양새가 향후 글로벌 무역과 한반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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