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커_박경희 기자] 국제유가가 27일(현지시각) 2014년 이후 최고치로 올랐다. 뉴욕상업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미국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72.76 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다음 달부터 원유 생산량을 늘리기로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원유 재고 감소와 이란에 대한 제재 압박에 들어가면서 유가가 급등세를 보인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향후 유가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 트럼프 대통령, 이란으로부터 석유 금지 압박

27일 국제유가에 결정적 영향을 준 것은 미국의 발언 때문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26일 미국무부 고위 관리가 이란의 원유를 수입하고 있는 나라들에 대해 오는 11월 4일까지 이란의 원유 수입을 ‘0’으로 낮출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어떤 경우에도 면제는 없으며, 중국과 인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는 것이다.

▲ 그래픽_뉴스워커 황성환 그래픽 담당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달 8일 이란 핵합의(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 탈퇴를 선언하면서 이란에 대한 제재를 부활한다고 한 바 있다. 여기에는 이란과 거래하는 국가와 기업에 대한 세컨더리보이콧이 포함돼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이란과의 거래량을 줄이라고 압박했다. 그리고는 귀금속·항공기 거래의 경우 90일, 에너지 거래에는 180일의 유예 기간을 줬다. 미 국무부 고위 관리가 말한 오는 11월 4일은 바로 유예기간이 만료되는 시점이다.

사실 2주 전만해도 “거래량을 크게 줄이는 나라에 대해 개별적으로 제재를 면제해 줄 수 있다”고 앤드류 픽 미국무부 부차관보가 말했다. 그러나 지난 21일 폼페이오 장관은 이란에 12가지 요구조건을 제시하며 수용하지 않을 경우 ‘역사상 최강 제재’를 가하겠다고 경고했고, 이에 충격을 받아 당일 뉴욕 원유선물시장에서 WTI는 전날보다 2.45 달러 오른 배럴당 70.53 달러로 거래가 됐다. 미국이 이란 핵합의 탈퇴를 선언했던 지난 5월 이후 최고치를 보였는데, 미국이 또 다시 ‘예외없는 이란 원유 수입 금지’ 압박을 가하면서 국제 유가가 출렁거리고 있다.

◆ 유가 너무 높다고 OPEC 압박했던 트럼프

OPEC 회원국과 비회원 산유국들은 원유 공급 제한을 위해 생산량을 하루 180만 배럴 감축하는 데 합의하고 지난해 1월부터 실행해 왔다. 이로 인해 원유 공급량이 줄어 국제유가가 상승세를 보여 왔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OPEC이 유가를 올리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하루 100만 배럴 증산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미국 의원들도 OPEC의 감산 결정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며 비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이란 제재 부활 압박과 베네수엘라의 정치적 위기로 원유공급량이 줄면서 국제유가가 배럴당 80달러를 넘어서고 100달러 돌파 전망까지 제시되자, 지난달 사우디와 러시아가 감산 정책 완화를 제시했다. 그러나 세계 3위 산유국인 이란은 미국 제재 재개로 수출 감소를 우려하며 증산에 반대했다. 이에 사우디가 설득에 나섰고, 지난 22일 열린 정례회의에서 원유 생산량을 하루에 100만 배럴 증산하는 방안에 원칙적으로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70달러를 돌파했던 WTI 가격이 60달러 선으로 내려오면서 국제 유가는 안정을 찾는 듯 했으나, 미국이 이란에 대해 본격 제재 의지를 밝히면서 다시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있는 상황이다.

◆ 이란 제재가 국내에 미칠 영향은

미국이 이란에 대해 제재 부활에 나서자 이란 원유 수출량의 3분의 1을 사들이는 유럽국가들은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이라크 등에서 대체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이달 기준 이란의 하루 평균 원유 생산량은 전달보다 50만 배럴 감소한 220만 배럴에 그쳤다. 그러면서도 유럽국가들은 미국의 강력한 제재 때문에 이란이 다시 핵개발에 나설지 모른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유럽의 한 고위 관리는 “에너지 수입 같은 민감한 사안까지 강요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란 제재가 개시되더라도 이란산 원유를 수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미국과 협상을 해오던 우리 정부는 미국이 ‘예외 없는 이란산 원유 수입 전면 중단’ 발언에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라며 당황스럽다는 분위기다. 미국이 일본에는 양 정부 국장급 회의를 통해 이란산 원유 수입을 중단할 것은 공식 요구했지만 우리나라에는 공식 요구가 없었던 만큼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미국과 계속 협의하겠다고 밝히고는 있다. 그러나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

만일 예외로 인정되지 않는다면 이란으로부터 원유 수입량이 전체 13.2% 정도여서 대체 가능하지만 국제 유가 상승에 따른 석유화학업계의 피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은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더 큰 문제는 원유 이외에도 다른 상품에도 이란과의 거래 중단을 압박할 경우 우리나라의 수출은 차질을 빚게 된다. 우리나라의 대이란 수출은 지난해 40억2100만 달러로 주로 자동차, 합성수지, 철강판, 종이제품, 냉장고, 디스플레이 등이다. 게다가 한국산 가전제품의 이란 시장 점유율은 60%에 이른다.

지금 당장은 글로벌 원유 수급 감소로 인한 국제 유가 상승이 문제인데, 미국의 포브스지는 “지금은 비록 이란 제재 등으로 유가가 오르고 있지만 향후 OPEC 등이 증산에 나설 경우 유가는 다시 배럴당 60달러 선으로 내려갈 수도 있다”고 낙관적인 전망을 했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만 본다면 유가 전망은 안갯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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